-카파도키아
맑고 밝은 날 다음의 흐린 날은 아마도 내 터키여행의 테마였던가보다. 첫날 쨍쨍 맑았다 다음날부터 연속 삼일 동안 비가 내렸던 이스탄불처럼 카파도키아의 둘째날 부터 계속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날이 추웠다.
아침 일찍 떠오르는 기구를 보려했지만, 내가 카파도키아를 떠날 때까지 바람불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 카파도키아의 기구는 반쯤 잠이 들어 몽롱한 상태에서 저 멀리 날아오르던 기억이 전부다. 아, 다음에 다시 가야하나...
웬만하면 투어에 들어가지 않고 혼자 걸어다니려고 했지만 운전도 못 하고, 대중교통도 거의 없는 그 곳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내가 결정했던 그린투어는 파노라마 포인트, 우흘랄라계곡 트레킹, 지하도시, 셀리메 수도원을 도는 코스. 각각 차를 타고 삼십분씩, 한씨간씩 걸리는 거리이다 보니 걸어다니기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린투어는 걸어다니기는 힘든 코스를 차로 다니며 하루 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바람불고 비올 듯한 날씨에 이날 차타고 다니는 투어를 신청하기 잘 했다며 그닥 큰 기대는 없이 들어갔다.
제일 먼저 우리 숙소에 들러 나를 태운 차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은 싣기 시작했다. 점차 채워지는 구성원은 일본인 하나, 한류에 관심이 많았던 말레이시아 가족 넷, 멕시코인 사진가 하나. 그렇게 투어는 시작되었다.
첫코스로 들른 파노라마포인트. 눈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는 곳이며 아침이면 수많은 기구들이 떠오르는 포인트라고 했다. 하지만 이 기구들은 기상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아 날씨가 나쁘면 그날의 비행을 일제히 취소하곤 한단다. 그리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바람불고 비가 와 그 당시 카파도키아의 기구는 모두 취소됐다.
두 번째 목적지는 지하도시였다.
괴레메의 야외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지하에 바위를 파고 숨기 시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곳이었다.
뭐 땅굴정도 쯤이야 하고 들어갔지만 이곳은 상상이상으로 거대했다. 몇 개의 층으로 이뤄진 곳에서 먹고사는 것 뿐만 아니라 상층과 하층이 소리통로로 소통을 하고 교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짐승까지 키우는 말 그대로의 도시였던 것.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투어였지만 우리 팀 구성원은 나름 재미있었다. 차타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한 나와 왠지 껄렁+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며 홀로 떨어져 앉아있는 일본인, 사진가답게 적절한 타이밍에 프로의 분위기를 풍기며 적절한 만큼의 사진을 찍는 멕시코인과 카파도키아의 모든 것이 궁금한 말레이시아 가족 중 아빠와, 카파도키아보다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에 더 관심이 많은 순둥이처럼 생긴 엄마와 아들 딸로 구성된 팀.
궁금한 것이 많은 말레이시아 아저씨는 여기는 뭘 해먹고 사냐, 여기는 뭐냐, 하며 꼬치꼬치 물었고 우리 가이드는 적절히 농담을 섞어 대꾸해줬다.
설명을 할 때도 그런 식이었다.
“여기 이 자국이 보이죠? 이건 여기서 불을 밝혔던 자국이랍니다. 000 원료(잊어먹었음)를 써서 불을 붙여 이런 색의 자국이 남아있죠. 여기는 식수가 흐르도록 장치했던 곳이고 여기는 뭐고, 뭐고, 그리고 이 뒤의 이 네모난 자국은 플라즈마 TV를 걸어놨던 곳이죠.”
여기 살던 사람들의 화장실은 어디인가요?라고 물으면 ‘왜요? 화장실 가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는 식으로. 그렇게 농담을 섞어 설명해주던 가이드는 결국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이 많은 팀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우흘랄라 계곡. 이곳에서 4Km 쯤 트레킹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그동안 눈으로 보기만 했던 계곡을 따라 걷는 코스였다.
겨우 4Km쯤이야 라며 신나서 걷는데 바람불고 흐리던 하늘에서는 비가 몇방울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나는 걷기 하나만큼은 잘했던 걸까. 다른 사람들이 뒤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말레이시아 가족은 힘에 부쳐 보였다.
그렇게 비가 오다말다를 반복하는 계곡을 무사히 걸어 점심밥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셀리메 수도원에 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곳으로, 이곳에 가기 위해 그린투어를 신청했던 것이기도 했다.
수도원이라는 곳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고딕양식의 건물과 잘 가꾸어진 정원, 그 안에 검은 옷을 입고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수도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돌에 굴 파서 살던 사람들이, 그 땅에 굴을 파서 도시를 건설하던 사람들이 수도원이라고 평지에 고딕양식 건물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았을 리가 없었다.
카파도키아의 유적들처럼 여기도 돌기둥에 굴을 파 그 안에서 수도사들이 살고 예배당도 만들어놓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은 수도원은 스타워즈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도원까지 보고 역시나 투어프로그램의 묘미답게 로컬 마켓보다 딱 봐도 비싼 쇼핑몰도 한 번 구경해주고 나니 하루 일정이 끝나고 해가 저물었다.
처음 모였던 괴레메 마을로 돌아가 다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내일은 또 어떤 신기한 걸 보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