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막 도착한 카파도키아는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날씨였다. 마치 첫날 아침의 이스탄불이 그랬듯이.
터미널에서 내려 작은 봉고로 갈아타고 괴레메 마을로 들어갈 떄도, 마을에 들어가 다시 픽업나온 숙소 차량을 타고 들어갈 때도, 숙소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곤 했다.
나는 그동안 늘 그렇듯이 날씨, 주변 풍경의 마음에 드는 정도, 처음 만난 사람들의 친절도 같은 사소한 것으로 이 지역이 나를 환영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곤 했었다. 그 기준에 의하면 아침나절 아주 잠깐 본 카파도키아의 첫인상은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터키와 내가 잘 맞는지도 모른다며, 여기서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닐까 섣부르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 상상은 내가 잘 도미토리를 소개받고, 근처를 돌아보는 약간의 할 일만으로 금세 집중력을 잃고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린투어, 레드투어, 로즈밸리투어, 벌룬투어, ATV투어 등등 카파도키아의 모든 활동은 투어상품으로 구성돼 있었다. 넓고 돌덩어리들이 이곳 저곳에 늘어서 있는 이 곳에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면 당연히 투어상품을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이 투어상품들은 나름 마을 차원에서 관리가 되고 있는 건지 어디에 가면 바가지를 쓰고, 어디에 가면 파격적으로 할인하는 곳도 없었다. 다들 '정가'의 개념으로 투어를 모집하고, 거기에 참여하면 한발짝도 허투루 걷지 않게 이곳저곳에서 외딴 숙소까지 차가 와, 데려가곤 했다.
그래선지 숙소에서도 수속을 마치고는 가장 먼저 예약한 투어가 있는지를 묻고, 다음 수순으로 여러가지 투어를 권했다.
그러나 첫날이니, 그것도 나를 몹시도 환영하는 듯 싶은 날씨니 괜찮았다. 오늘은 혼자 걷겠다며 짐을 꾸려나왔다.
첫 목적지는 괴레메 야외박물관.
야외박물관은 카파도키아의 바위를 이용한 집과 교회가 몰려있는 곳이다. 옛날 로마와 이슬람의 핍박을 피해 척박한 땅으로 피해 들어온 기독교도들은 지천에 널려있는 바위를 뚫어 집도 만들고 교회도 만들고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만든 집과 교회들이 이제는 야외박물관으로 남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카파도키아의 버섯바위나 야외박물관의 구멍뚫린 바위는 알고 있는 것처럼 이곳의 명물은 역시 그 돌들이기에 숙소도 동굴을 흉내낸 경우가 많았다. 내가 묵는 호스텔도 그런 곳이었다. 인공적으로 동굴모양을 만들어 벽을 파고, 그 칸마다 침대를 마련해 두는 곳. 보진 못했지만, 진짜 동굴을 호텔로 꾸며놓은 곳도 있단다. 굴같이 만들어 놨기 때문에 약간 어둡고 축축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원래가 어딘가에 틀어박혀있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라 일부러 동굴모양 호스텔을 고르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야외박물관을 향해 걸으며 나는 인포메이션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투어를 따라다닐 생각이 없으니 하루종일 돌아다니려면 지도를 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숙소에서도 박물관 옆에서도 지도라고는 여행사에서 투어설명용으로 만든 손바닥 반만한 카파도키아 약도같은게 전부였다. 지도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은 자꾸 투어설명을 해주고 식당을 소개시켜줬다. 투어상품이 너무 발달해 있는 동네란 이런 식이구나 하며 발 닿는대로 걷기로 했다. 이 사람 저사람이 붙어 권하는 투어상품을 거절하며 힘들게 오르는 오르막 옆으로 투어버스가 부럽도록 쌩하며 지나갔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계속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야외박물관은 일단 컸다. 하긴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니까 이렇게 클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침일찍 도착한 숙소에서 주인아저씨가 오늘은 날씨가 좋다며 넌 참 행운이라고 했던 것이, 숙소에서 만나 잠깐 대화한 청년이 요 며칠 이 곳은 춥고 눈오고 바람불어 날씨가 완전 거지같았다는 말이 사실이었나보다.
오늘이 아니면 날이 없다는 듯이, 다들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여유를 갖고 천천히 구경하는건 불가능했다. 거기에 돌 유적들은 한 사람 정도가 여유있게 돌아다닐 것 같은 좁은 통로가 특징이었다. 나는 어느새 사람들에 밀려 이곳 저곳으로 떠밀려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훑어보긴 했지만 돌덩이 하나마다(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교회였던, 집이었던 용도에 따라 성화가 그려져 있다거나 부엌으로 사용했을 것 같은 흠이 있다거나 했다.
참 그런걸 보면 인간의 살고자 하는 욕구는 대단한 것 같다. 사방을 봐도 땅보다 돌이 더 많아 보이는 이 곳에서 살아남겠다고 돌을 파서 집을 만들고 교회를 만들고 살았다니.
게다가 이곳은 이스탄불보다 더 추웠다. 난방이나 제대로 하고 살았을지 다 걱정이 됐다. 아, 뭐, 물론 다들 그러고 잘 살았으니 이렇게 거대한 유적도 남아있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에 밀려 나와보니 생각보다 금방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뭐든 해야할 차례.
지도도 뭣도 없는 나는 잠시 멘붕상태에 빠졌다가 일단 숙소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또 어떤 터키아저씨가 집적거리면서 달라붙기에 나는 그냥 혼자 걷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길을 알려달라고 요구해 얻은 정보대로 샛길로 빠졌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저씨가 말하길 트레킹하기에 좋다고 했다.
역시 땅보다 돌이 더 많은 카파도키아는 살짝 찻길을 벗어나니 돌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지도는 구할 수 없었지만 표지판 정도는 서있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혼자 걸어다닐 수 있었다.
오랜만에 좀 오래 걷겠구나 싶기는 했지만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한달도 걸었던 사람, 이쯤이야 문제없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가득차 길을 나섰다.
좁은 산길에는 사람이 없었고 풍경은 카메라 렌즈에 다 담기지도 않을 만큼 옆으로 넓게 펼쳐졌다.
햇볕은 따뜻한데 기온은 쌀쌀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데 어라, 저 옆에 보이는 건 사진으로 봤던 로즈밸리인가?하며 점점 신났다.
그렇다. 내가 생각했던 카파도키아는 이런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고, 황량하지만 기묘하게 생긴 돌이 시야 가득히 펼쳐져 있는 광경.
유적이 어떻고, 이곳은 어떤 의미가 있고, 이 동네에선 어떤 활동을 해야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고 하는 정보들은 그순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걷고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하는 것, 그 사실만으로 즐거울 따름이었다. 마치 까미노 둘째날이나 셋째날쯤의 내가 그저 걷는 것만으로 신났던 것처럼.
그렇게 4~5시간 정도 걷는 동안 나는, 사람하나 없는 벌판에서 유일하게
근처 여행사에서 열기구 파일럿을 하고 오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다닌다는 아흐멧을 두 번 만나고 두 번 모두 뒷자리에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으며,
좁은 길을 타고 내려와보니 반대방향에서 시작했다면 절대 찾아 들어갈 수도 없는 샛길로 나와 지나가던 외국인이 넌 대체 어디서 나온거냐며 신기해했고,
그렇게 걷다 계획에도 없었던, 바위를 파 산 전체를 마을로 만든 차부신이라는 곳에 도착했으나,
투어팀이 모두 지나갔는지 관광객도 근처 가게를 지키는 상인도 하나 없어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이것은 좋은 기회라며 꼭대기까지 돌을 타고 올라갔으며,
그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고, 다시 돌을 타고 내려왔으며,
또 아무 생각없이 길 거리의 괴레메라는 표지판만 보며 걸어오다
스머프 마을의 배경이 되었다는 버섯바위가 늘어선 파샤바라는 곳을 구경했으며,
숙소에 돌아와 선셋포인트를 찾아 가겠다며 다시 길을 떠났으나 결국 찾지못했고,
하지만 해가 지는 것을 보며 그냥 이곳을 내 나름대로의 선셋포인트로 삼겠다며 만족하고 돌아왔고,
즐거운 기분에 사람이 많은 집 음식은 맛있다며 꽤 비싸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예상대로 비싼 음식에 살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피데를 시켜먹고 돌아왔다.
전날 잠을 설친데다 오랜만의 트레킹에 지쳤는지 씻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