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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Feb 15. 2017

#73터키-카파도키아에 갑니다

-이스탄불-카파도키아

여행의 사전준비 정도를 지수로 나눠본다면, 아마도 나는 하위권의 어디쯤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 혼자 가는 여행이고, 배낭여행이다보니 사전준비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정말 필수적인 것, 그러니까 항공편이나 첫번째 숙소, 공항에서 숙소가는 길과 주요 대중교통 정도만 알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곳에 대한 몇 개의 이미지만 가지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서커스, 피겨스케이팅, 크렘린, 핀란드는 자일리톨과 자작나무, 디자인 같은 것들 같은 미디어에서 접했던 것들이 주로 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졌던 터키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단 한가지, 카파도키아였다.  

 버섯처럼 생긴 기묘한 돌들과 그 사이로 날아오르는 기구.   

물론 처음에 한국 돌아오는 표를 알아볼 때는 카이로-인천보다 이스탄불-인천의 편도 비행기표가 삼십만원 가량 더 싸서 망설임없이 예매하긴 했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돌이라면 여행의 마지막을 기념하기엔 적절할거라 끼워맞춰 애써 만족했다. 

 

그랬던 처음의 생각보다 이스탄불에서의 체류는 길어지고 있었다. 중증의 이스탄불 사랑에 빠져버렸던 나는 이제 어디 가지말고 여기에 계속 있을까를 고민하다가도 가끔 여행사에 들러 버스편을 알아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터키에 왔으니 카파도키아 정도는 가봐야지.  

얼른 가서 얼른 보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 시간을 오래 보내야지. 


며칠전부터 구도심의 곳곳에 있는 여행사를 볼 때마다 ‘아, 카파도키아에 가야하는데’를 중얼거리곤 했었다. 그 중얼거림을 몇번이나 들은(그러나 정작 여행사 안으론 들어가지 않는걸 본) K가 물었다.  

‘거기 뭐가 있는데?’  

나는 굉장히 오래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뒤 대답했다.  

‘음, 돌덩어리들?’  

마치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올라가야 한다는 식의 지식도 뭣도 없는 이 막무가내식 목적이란.



그렇게 며칠의 숙박연장 끝에 드디어 카파도키아로 향하게 됐다. 카파도키아행 버스를 예매하고 일사천리로 숙소를 예약한 후 버스를 기다리며 남는 시간에 가이드북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카파도키아는 카파도키아 중 괴레메라는 마을의 야외박물관이었다. 

카파도키아는 워낙 넓은 지형이고 대중교통편이 편리하게 돼있지 않아 대부분의 관광객은 괴레메 마을에서 지내며 이곳에서 기구도 타고, 투어상품도 이용한다고 했다. 

로즈밸리와 바위교회 등을 둘러보는 로즈밸리투어, 카파도키아의 관광명소를 돈다는 레드투어, 지하도시 우흘랄라 계곡 셀리메 수도원을 도는 그린투어와, 그 유명한 열기구 투어가 대표적 상품이었다. 이 상품들은 이스탄불의 여행사에서 버스표를 살 때 같이 구입할 수도 있고 현지 숙소나 여행사에서 예약할 수도 있다. 가보니 기구투어를 제외한 나머지 상품의 가격차는 거의 없어 그냥 숙소에서 예약하는 것이 제일 편한 듯 싶었다.


지난번 교통편 때문에 룩소르의 투어에 들어갔다 유물보다 기념품가게를 구경하는 시간이 길었던 나는 되도록 투어상품을 빼고 혼자 걸어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굳이 하게 된다면 거리가 멀어 차로 이동해야 하는 그린투어 정도? 



잠깐 얘기하자면 터키에서의 장거리 이동은 주로 버스로 하게 된다. 터키의 고속버스는 회사별로 운행시간도 다르고 가격차도 아주 약간 있다. 터미널에 가면 회사별로 부스가 갖춰져 있는데 그곳에서 비교하고 구입하면 되는 것.  

이스탄불에서는 구도심과 터미널 사이 거리가 꽤 있어 트램을 타고 다녀와야 했다. 나는 왔다갔다 하는 비용과 시간 대비 저렴하다는 이유로 (사실은 귀찮아서) 도심 곳곳에 있는 여행사를 두어개 둘러보고 버스표를 예매했었다.  

고속버스는 아마도 과도한 경쟁의 결과인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일단은 여행객이 편한 장소까지 픽업나오고 목적지에서도 마을별로 꽤 구석까지 데려다 준다.  

차 안엔 각 자리마다 TV가 설치되어 있고 때가 되면 버스 안 승무원 청년이 과자며 차 같은 것을 나눠준다. 자리엔 USB로 충전도 가능하고 와이파이가 되는 차량도 있었다.    

아, 이스탄불 떠나기 싫어 하며 버스에 오른 나는 이 훌륭한 버스에 오르자마자 승무원 청년이 준 과자를 씹으며 터키어로밖에 나오지 않는 TV채널을 돌리며 새 환경에 쉽게 적응해 버렸다. TV도 틀었다가 게임도 했다 라디오도 듣고 하다가 다시 TV채널로 돌려 터키어로 더빙된 나홀로 집에를 보기 시작했다. 

그 때는 12월 초중반. 이곳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엔 나홀로 집에를 보는구나, 역시 케빈은 만국 만인의 크리스마스 친구지 하며 영화를 끝까지 보고는 졸다깨다 하며 갔다.  


꽤 오랜시간의 버스여행 중 뒷자리의 애기는 가끔 버스가 떠나가라 울고 애엄마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고,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가끔 터미널에 들러 휴식시간을 갖기도 하며 차는 달려 새벽의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잠을 설쳐 퀭한 눈으로 괴레메에 진입하는데 반대편 창문 옆으로 기구가 솟아올랐다. 멍한 머리로 솟아오르는 기구를 바라보고 있으니 꿈인 것 같기도, 상상인 것 같기도 했다.  

기구가 조용히 떠오르는 순간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사방은 놀랍도록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떠오르는 기구를 보며 나는, 오랜 로망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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