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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Feb 10. 2017

#72터키-그건 너의 우주니까

-이스탄불

삼개월의 길이는 어느 만큼일까. 

여행을 마음에 둘 때도, 여행길에 올라서도 내게 삼개월은 여전히 짧은 기간이었다. 삼개월 정도에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냥 살짝 빠져나와 주변을 구경하고 다시 원래의 곳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리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원래 있던 곳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삼개월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시간이었던듯 싶었다. 


당시 내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삼개월의 여행을 극히 반대했으나 결국엔 언제가도 갈 것 아니냐며 그럴거면 시간있을 때 다녀오라고 했었던, 여행중에 보냈던 소포를 내 기대만큼 기뻐하지 않아 하루를 깊은 우울의 늪에서 걷게했던.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처음에 비하면 점점 간격이 뜸해지기는 했지만, 와이파이가 되는 데선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며 꼬박 삼개월을 다 채워가는 그 때까지도 잘 지내오고 있었다. 아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스탄불이 집 같았던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행기 연장하고 여기서 계속 있을까?’를 말했을 때 헛소리 하지말라는 식으로 비웃으며 ‘맘대로 하든가’라고 했을 때도, 아주 잠깐 저 아이가 그동안 저런 말투로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 기준에서 삼개월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그에게 좋지않은 일이 생겼다. 그동안 꽤 오래 준비했던 일이 실패했던 것. 그 상황은 그가 실력이 부족했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겠지만, 운이 나빴던 것이 70%정도의 원인이었다. 여덟시간 시차만큼 떨어져 있는 내가 위로를 하기 위해 말을 시작했다.  

너 정말 운이 없었구나.

다음 말로 ‘괜찮아 잘 될거야’가 나오기 전에 남자친구는 화를 버럭 냈다. 이건 단지 운이 없다는 말로 넘길 상황이 아니라고. 니가 그동안 실패해왔던 것과 지금 상황을 같은 것이 아니라고.  

운이 없는걸 운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면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지, 싶었던 나는 그래 미안해 정도로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전화를 하고있는 도중, 부엌에 저녁을 차려 놓고 T가 함께 먹자며 사람을 불러모았다.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전화를 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리에 끼어들어 시덥지않은 농담을 하며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음 한구석은 얹힌 듯 답답했지만 혼자 우울해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헤어져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다시 문자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것치곤 꽤 덤덤하게 잠이 들어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올라가며 하늘을 보니 오랜만에 쾌청한 날씨였다. 이미 부엌에 와 자리를 잡고 있던 K를 만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꺅꺅대며 오늘은 드디어 유람선을 탈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바닷가로 걷는 내내 날씨는 내 이스탄불 첫날처럼 맑고 따뜻했다. 이런 날이라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날씨였다.  

며칠동안 '내일 맑으면 같이 배타러 가자'가 굿나잇 인사였던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아침 하늘을 보자마자 행복지수가 최대로 상승했던 둘은 가는 내내 계속 이런 날씨는 정말 행운이라며, 배를 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얘기를 반복했다. 몇번씩이나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하는데도 처음 말할 때처럼 즐거운 걸 보면 그동안 우리는 맑은 날씨를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사람들이 싸다고 추천해준 유람선까지 거의 뛰다시피 걸어가 배에 올랐다. 우리가 배에 올라타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사람들을 가득가득 태우고 드디어 유람선은 출발했다.  

 

보스포루스 유람선은 갈라타다리에서 시작하여 신도심이 있는 지역을 배를 타고 올라갔다가 돌아오며 아시아쪽을 관람하는 코스였다.  

예전 여행을 떠나기 전 오르한 파묵이 쓴 ‘이스탄불’ 이라는 회고록을 읽었는데 거기엔 오르한 파묵이 어릴적 부모님과 함께 놀러가던 얘기가 나왔다. 옷을 차려입고 설레서 보스포루스에 나들이 갔던. 

나들이=보스포루스였던 꼬맹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봤던 데다 이스탄불에서 본 기념품의 이미지에는 아야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와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것이 보스포루스 해협과 갈라타타워였기에 여기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코스이기도 했다.    

배는 특별한 설명없이 한시간 남짓 바다를 떠돌았다.  

배를 꽉꽉 채운 사람들은 배가 이동하자마자 난간에 몰려서서 사진을 찍기 바빴고,  그 옆에서 가만히 바다와 그 옆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주 가끔 사진을 찍었다. 그런 나와 달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잠시 아래에 내려갔다 오겠다던 K가 저 멀리서 나를 불렀다. 아래로 내려오면 더 한적하게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단다. 그 말을 듣고 따라갔더니 과연, 2층에 있을 때보다 더 풍경이 좋았다.   

게다가 사람들은 모두 2층에 몰려있어 한적했다.  

이 친구 수다떨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줄만 알았는데 흥정을 할 떄도 그렇고, 의외로 이런 곳에 재주가 있었다. 여행다니기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구나. 



여러모로 만족한 뱃놀이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는데 시간이 너무 일렀다. 유람선은 기껏해야 한시간 남짓 도는 게 전부인데, 우리는 신나서 아침일찍 탔으니 말이다. 오늘의 목표는 보스포루스 유람선 타기, 단 하나였는데 오전 중에 모든 일정은 끝났고,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습관처럼 이집션바자르로 들어가 물건을 구경하고 나왔다. 이제는 익숙해져 지도없이도 걸어갈 수 있는 블루모스크에도 갔다. 내친김에 다시 한 번 모스크도 구경하고 그 옆의 무덤도 보고 나왔는데도 역시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이제 더이상은 갈 곳이 없어진 둘은 그제서야 이스탄불 지도를 살펴보며 다음 여정을 탐색하는데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슐레마니예자미’  

블루모스크 모형을 사려는 K에게 가게 아저씨가 뭔가를 설명해주면서 말했었다. 블루모스크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고 슐레마니예자미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모스크라고.  

특별히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모스크에 가면 나는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 써야하는게 귀찮았지만 (여자들은 회당안으로 들어갈 때 히잡 대용으로 머리에 스카프같은 것을 둘러야한다. 관광객을 위해 입구에선 스카프를 빌려준다) 일단은 근처고, 시간도 남으니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뭐,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모스크라니 봐두면 좋을지도.   


아무래도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슬람교가 익숙하지 않고, 교인들을 본 적도 없기도 해서 이집트와 터키를 오기 전까지는 모스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다.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미)가 유명하다보니 아마 이스탄불에선 그런 모스크가 세네개쯤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유명한 모스크 외에도 곳곳에 모스크가 많았다.  

마치 한국 여기저기에 대형교회가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일본을 돌아다니다보면 이동네 저동네 조그마한 신사가 잔뜩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처음 K와 돌아다닐 때 갈라타다리 앞의 모스크도, 그랜드바자르 앞의 모스크도 구경하자며 데려가는 K에게 물었다.  

근데 여긴 이름이 뭐야? 

마치 아는 곳마냥 나를 인도해갔던 K는 해맑게 ‘모르겠는데’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모르는 데라며 왜 가는 거야? 싶었지만 그 이후 걷다보면 시선 끝에 잔뜩한 모스크들을 보며 이 것들의 이름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싶어 더 이상은 묻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심미안따위는 없는 여행객이 보기에 각 모스크는 다들 크고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그렇게 도착한 가장 큰 모스크라는 슐레마니예자미는 크고 예뻤다.  

블루모스크가 고풍스럽고 정교하다면 여기는 그런 느낌은 덜 했지만 근처의 정원도 아름다웠고, 건물의 곳곳에서 풍기는 새것같은 느낌도, 관광객이 적어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것도 좋았다. 

모스크를 구경하고 더 걷다보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무리한 관광을 한 둘은 지쳐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걷는 도중 그제서야 떠올랐다.  

어젯밤 그렇게 통화를 마쳤는데도 오늘 아침부터 한 번도 그 대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심지어 굉장히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는 걸. 

그리고 또 생각했다. 예전에 누군가가 그랬었다. '한 사람은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고. 

상황과 안 맞는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죽을병보다 내 눈 속의 티끌이 더 아픈 건 '내' 우주가 흔들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뾰족하게 반응했던 건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일 거다. 내가 그걸 마음 넓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역시 지나간 내 실패를 하찮게 여기는 듯한 말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어땠는지 바로 옆에서 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 

삼개월 동안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였던 우주는, 아무 일 없던 듯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생각보다 그 시간은 길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K가 말을 걸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또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어쨌든, 그건 너의 우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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