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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ug 06. 2024

조율

앙(仰) 이목구심서Ⅱ-49

조율



육십 초반의 조율사다.

작은 키지만 경험과 실력이 밴 몸집은 다부지다.


피아노 덮개를 벗겨내고 안을 들여다본다.

건반 하나하나의 소리를 확인한다.

조이고, 풀고, 닦고, 본드칠도 한다.

그리고 다시 소리를 듣는다.


피아노의 속살을 처음으로 자세히 본다.

많은 나무조각들과 철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피아노는 관계의 사물이다.

관계가 소리를 만들음악을 만든다.


한때 사용하타자기를 생각한다.

자판을 두드리면 낱글자가 찍혀 나오듯, 피아노도 건반을 두드리면 허공이라는 백지 위에 소리가 발화한다.

글자 대신 각기 다른 소리가 허공에 찍히는 것이다.

곧 소리는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듣기 좋은 글자인 다.


피아노는 모양이 다른 커다란 타자기다.

아니, 말이 잘못됐다.

건반의 역사가 더 오래이므로 타자기는 피아노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피아노를 모방하여 소리대신 글자가 표현되므로 글자는 보이는 옷을 입은 소리다.


이 피아노는 1995년 생의 삼익피아노다.

결혼 후 아내에게 선물했던 것으로 그 후로 27년이란 세월을 함께 지내고 있다.

쇳소리를 내거나 건반이 내려가 올라오지 않던 것이 고쳐지고 점차 본래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역시 전문가는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조율사의 손놀림에 피아노는 건강을 회복해 간다.

음 하나하나를 살피니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건반 하나가 여러 개의 나무조각과 철선으로 연결되어 이 철선을 두드리면 진동과 함께 소리가 는 구조다.

철선의 고통이 꽃으로 피어나 향기로운 소리가 된다.

통증이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현장이다.


저음은 줄이 굵고 길지만, 고음으로 갈수록 가늘고 길이는 짧아진다.

오른쪽 끝의 가장 짧은 줄인 '도'음은  센티미터 정도로 보인다.

음의 고저를 줄의 굵기와 길이가 직조해내고 있다.

낱개의 물방울이 강을 이뤄 흐르듯 독립적이던 소리가 어울려 화음과 리듬을 만들어 감동을 주는 음악이 된다.


자연이 끊임없이 진화를 해 온 것처럼 조율은 우리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병원에 가고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는 것도 모두 조율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도 조율이다.

우리 삶 전체가 조율의 과정이다.

잠깐 연주를 멈추고 정기적으로 조율하는 삶은 건강하다.

조율은 첫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조율사가 두 시간 정도 피아노의 몸을 다듬었다.

그러자 피아노는 맑고 경쾌한 소리로 기쁨을 표현한다.

이 기쁨의 값으로 15만 원을 말한다.

새 삶을 살게 되는 피아노를 생각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다.

나는 기쁘게 돈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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