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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21. 2023

운명을 믿으시나요? (※도를 아십니까 아님 주의)

최근에 1994년작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어요. 이 명작을 왜 이제야 본 걸까요? 이 영화는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혹시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일글레는 영화를 먼저 보시고 읽으시길 추천드려요. 스포가 있그등요.


'포레스트 검프' 역을 맡은 젊은 날의 톰 행크스


인생은 어떤 초콜릿을 고르게 될지 모르는 초콜릿 상자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라고 하셨어요. 어떤 초콜릿을 먹게 될지 모르니까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불편한 몸에 남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지능을 갖고 태어난 '포레스트 검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또래 친구들은 다리에 보조 장치를 끼고 걷는 포레스트를 따돌렸죠. 돌을 던지는 친구들을 피해 달리던 포레스트는 우연히 자신이 달리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후부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뛰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군에 들어가 무공훈장을 수여받는 등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게 되죠.                      


미식축구 룰을 잘 모르는 포레스트는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만 합니다.

 
네가 내 운명을 갈취한 거야!


또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포레스트는 자신이 달리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다리에 보조장치를 끼고 살아갔을 겁니다. 사실 포레스트의 몸이 불편했던 건 다리가 아니라 굽은 등뼈 때문이었는데, 애먼 다리에 보조 장치를 끼고 있으니 다리가 불편한 줄 알았던 거죠.


또, 조금 떨어지는 지능을 갖고 태어난 덕분에 남들에게는 지옥 같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군 생활이 포레스트에게는 제격이었죠. 어느 날,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포레스트가 베트남 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해 수많은 동료들을 잃게 되는데요. 포레스트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댄 중위를 어깨에 들처 메고 겨우 살아 돌아오지만, 두 다리를 잃은 댄 중위는 병원에서 포레스트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잘 들어, 사람에겐 운명이란 게 있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어. 모두 예정된 일의 일부지. 난 소대원들과 전장에서 죽었어야 했어! 네가 내 운명을 갈취한 거야!"            


전장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지키고 있는 포레스트


우리, 운명일까?


여러분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만나고 있는 사람이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반은 그런 것 같고, 반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2016년, 출판사 경력밖에 없었던 제가 IT기업의 PR 담당자로 전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그렇게 큰 대기업인 줄 몰랐던 곳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탈락하고 말았죠. 그런데 한 달 뒤, 다시 면접을 볼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어요. 고민하다가 재면접을 봤고, 저는 그때부터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를 펼쳤습니다. 이후 알고 보니 한 달 앞서 합격했던 사람이 IT 분야에는 능하나, 그 자리에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그 자리를 떠났지만, 저는 남았죠. 만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저에게는 1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성인이 되어서는 친구가 셋만 되어도 많은 거라고 하던데, 그 기준에 비하면 저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10년 지기 친구들이 있죠. 희한하게도 저는 이 친구들의 첫인상을 모두 기억해요. 당시에는 잘 모르던 사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쟤랑 친구가 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던 거죠. 한번 사람을 사귀면 오래도록 사귀는 것 같지만, 사실 저에게는 끊어낸 인연도 많아요. 어떠한 부분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버틸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꽤 단칼에 인연을 잘라내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제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 역시 일부는 운명적이었고, 일부는 스스로 개척한 인연인 거죠. 


자네한테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군.
-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댄 중위 대사 중 



댄 중위는 전장에서 두 다리를 잃었지만, 이후 포레스트와 함께 새우잡이 사업에 성공해 제2의 삶을 살게 돼요. 그는 포레스트에게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두 팔로 자유롭게 헤엄을 칩니다. 절반은 운명, 절반은 내 몫. 여러분의 초콜릿 상자에는 어떤 초콜릿이 들어 있었나요? 그 초콜릿은 여러분의 직업과 인연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요?


일글레 발행인 유수진 드림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 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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