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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Dec 02. 2023

올해도 훅 갔어

일글러, 한 주간 잘 지냈어요?


저는 지난주 난생처음으로 대상포진에 걸렸지 뭐예요.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몸에 잠복해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피부로 내려와 염증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염증이 전신으로 퍼질 수도 있는 질병이에요. 최근 평소보다 더 심한 피곤함을 느끼긴 했지만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고 다녀서 그런 거겠니 하고 며칠을 넘겼죠. 게을러지려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파워워킹으로 등산까지 하며...(으이그)


샤워를 하면서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온 걸 발견했어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에 가보니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고, 어떡해요. 대상포진 맞네요. 어떤 분들은 칼에 찔리는 느낌이 든다고도 하더라고요. 당분간 푹 쉬셔야 해요"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결국 회사에 휴가를 내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어요.


'슨생님, 저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데 푹 쉬라니요. 2023년도 얼마 안 남았단 말이에욧!'                                                                                                                                                                                                                 

조제되는 건 나였다(?)

 

올해도 훅 갔어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지? 올해도 훅 갔어."


매년 12월이 될 때마다 빠짐없이 하는 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지는 건 왜 그런 걸까요? 어렸을 때에 비해 새로움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나이가 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죠. 어른이 되기 전에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서는 젊음이 더 오래 유지되기를 원하니까요.  


친구와 전화로 '올해도 훅 갔어'라고 푸념을 늘어놓고 끊은 뒤 왠지 모르게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기가 힘들었어요. 분명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남은 게 없는 것 같은지, 정말 최선을 다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죠. 특히 저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남들보다 몸이 약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언제부턴가 그 생각이 체화되어 제 몸이 알아서 저의 철학대로 움직여온 것 같아요. 언니는 그런 저에게 말했어요.


"너 보면 정신없어.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더 열심히, 더 많이 움직이면 시간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더디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이리저리 구르고 다닌 결과는 결국 대상포진이었죠.


주간 일기 쓰기


다행인 건 제가 올해 5월부터 '주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서른이 넘은 후부터 일주일만 지나도 내가 지난주에 뭘 했는지 아니, 어제 뭘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요. 매일 일기를 쓰는 건 자신 없으니 딱 일주일에 한 번,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을 적어보기로 했죠. (저는 엑셀에 일기를 씁니다. 공책에 직접 글씨를 쓰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잘 맞지 않더라고요.)


한 행 한 행, 일주일씩 거슬러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제가 한 일들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5월에는 오랜만에 큰 행복을 느꼈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6월에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출판사에 투고를 함과 동시에 기고 활동을 했고, 7월에는 생일을 맞아 부산 여행을 다녀왔고, 8월에는 회사 동료들과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했고, 9월에는 일글레를 시작했고, 10월에는 영어 공부를 시작해 회사에 스터디까지 만들었죠.


이 모든 것들을 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일상과 동시에 해낸 나 자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정말 올해도 훅 갔어?"


더 열심히,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어요. 저에겐 하고 싶은 일도, 꿈도 많으니까요. 다만 전략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 마음만큼 몸도 따라주면 좋겠지만 무조건 더 열심히, 더 많이 움직이기에 제 몸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대상포진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조금 더 침대에 누워 내년의 전략을 짜보려고 해요. 올해는 '훅'이 아닌, '잘' 가고 있습니다. 


일글레 발행인 유수진 드림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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