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Jul 06. 2024

오직 한 사람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오직 한 사람>   - 황화자 

유방암 진단 받은 나한테
남편이 울면서 하는 말
"5년만 더 살어"

그러던 남편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갔다

손주 결혼식에서 울었다
아들이 동태찜 사도 눈물이 났다
며느리가 메이커 잠바를 사줄 때도 울었다

오직 한 사람 남편이 없어서


전남 완도군에서 혼자 사시는 황화자(84) 할머니의 '오직 한 사람'이라는 시를 읽고 한동안 이 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할머니는 그 시절 여성이 그렇듯 '국민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고, 부모님을 도와 밭일과 김 양식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2013년, 마을 할머니의 권유로 한글을 가르치는 고금비전한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70년 만에 처음 일기를 써보게 되었습니다. 


한 자 한 자 한글을 깨치는 동안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은 바로 남편. "초등학교 6년을 다녀도 한글 모르는 사람은 모른디 자네는 잘한 사람이네"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던 남편은 201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오직 한 사람'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죠. (관련 기사)

출처 : 2023년 1월 3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그 어떤 즐거운 일이 있어도, 늘 내 옆을 지켜주던 남편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일까. 인생의 즐거운 순간들마다 슬픔을 배로 느껴야 했을 황화자 할머니의 마음이 시 한 편에서 온전히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좋은 날에 왜 울어'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그날, 할머니가 한 자 한 자 시를 써내려갔을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어요.


종종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 자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대체로 '이 마음을 글로 꺼내기까지 홀로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었을까' 싶은 글을 읽었을 때였던 것 같아요. 글로 마음을 꺼내본 사람들은 압니다. 무심히 '툭'하고 꺼내놓은 것처럼 보여도, 무수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 거라는 걸.


마음을 꺼내어 글을 쓰는 일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이자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처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건,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마음을 꺼내고 싶어서였어요. 처음엔 10%, 다음 날엔 20%, 그 다음 날엔 30%... 그렇게 조금씩 제 마음을 꺼내다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죠.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제 글을 읽은 독자 분들이 '나도 그렇다'며 공감을 해주신 겁니다. 우리는 서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감동을 주는 글은 어떻게 쓸까요? 저는 솔직하게 쓰는 거라고 답합니다. 얼마 전, 한 유명 마케터가 쓴 에세이 책을 들고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어요. 7년 전, 한 마케팅 강의에서 처음 그 마케터를 알게된 후로 꾸준히 SNS나 책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접해와서인지, 그녀에게 내적 친분감을 느끼고 있는데요. 이번에도 마케팅 관련 인사이트를 담은 책이겠거니 하고 미용실에 들고 갔죠. 그런데 책을 읽던 중, 저는 한 지점에 멈춰 미용실에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느껴온 어머니의 빈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제가 눈물을 흘린 건, 단순히 슬픈 이야기여서가 아니었어요. 그녀가 책에 말하기를, 어디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7년간 그녀의 콘텐츠를 샅샅이 읽어왔기에 저 역시 그 말이 사실이란 걸 알고 있어요. 그만큼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었다는 것.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감동을 느꼈어요. '이 사람, 참으로 큰 용기를 내었구나' 싶어서요. 


고백하건대 저는 에세이를 쓴 7년 동안 단 한 번도 제 마음을 100% 솔직하게 다 꺼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태생이 소심한 저에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전히 조금씩 100%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너도 그랬구나'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독자들을 생각하면, 황화자 할머니의 말씀처럼 내 마음 고스란히 써 내릴 용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이전 26화 일글레는 내 멱살을 잡고 글을 쓰게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