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만큼이나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이 있으니 바로 달고나 커피다. 커피 가루로 쫀득한 거품을 만들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을 휘저어야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오히려 집에 오래 머무는 요즘엔 일종의 놀이로 승화됐다. 해외 곳곳의 식탁에서 한 잔의 음료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 유튜브 인기 영상을 휩쓸었다.
되살아난 추억
달고나는 설탕으로 만든 일종의 과자다. “(맛이) 달구나”라는 한국어 표현이 이름으로 굳어졌다. 설탕 생산량이 증가해 가격이 싸진 1960년대부터 설탕으로 직접 만든 달고나가 국민 간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요즘에야 과자 종류가 워낙 다양하지만, 그때는 과자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과자로 알려진 새우깡도 1971년에서야 첫선을 보였다.) 녹인 설탕에 소다를 첨가해 크기를 부풀린 달고나의 부드러운 달콤함은 당시 어떤 과자와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학교 앞 문구점에서 달고나를 직접 만들어 먹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몇백 원만 내면 어른 손톱만 한 설탕 덩어리 혹은 스틱 형태로 포장된 설탕 가루, 국자, 나무젓가락, 그리고 소다를 줬다. 불 앞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설탕을 녹이면서 소다를 언제/얼마큼 넣을지 소란스럽다가도달고나가 완성되면 (입에 넣은 채라) 조용해졌다. 특별한 재료나 딱히 제조법이랄 게 없어 집에서도 만들어 먹었다. 엄마 몰래 국자를 새까맣게 그을리고 혼난 일도 부지기수인 만큼, 달고나는 40~50대를 넘긴 어른들에겐 아련한 추억일 것이다. 이 달고나가 요즘엔 음료로 되살아났다.
수고로움의 맛
달고나 커피의 재료도 달고나처럼 단출하다.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그리고 뜨거운 물을 1:1:1 비율로 섞어주기만 하면 출발은 완벽하다. 혹시나 커피믹스밖에 없다면 체로 설탕은 빼고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만 걸러 써도 된다. 볶은 원두를 갈아낸 그라운드 커피로는 거품이 나지 않는다. 물이 많아도 쫀득한 거품을 낼 수 없다. 기호에 따라 설탕의 비율을 좀 더 늘리는 것은 괜찮다.
ⓒ Studio Kenn
제조 방법이 간단하지만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얼마나 거품을 잘 만드느냐가 관건인데, 크게 두 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손을 이용하거나 전기의 힘을 이용하거나. 두말할 것 없이 전동거품기를 쓰는 편이 편리하다. 하지만 이 음료의 매력은 ‘쉽고 빠르게’가 아니라 ‘손수’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다. 수많은 셀럽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 정도는 손으로 거품을 만들어 봐야 한다. 그들도 ‘나만 고생할 순 없다’는 심정으로 영상을 올렸을 테다.
커피와 설탕이 녹은 흑갈색의 진득한 액체는 저으면 저을수록 공기와 섞이면서 색이 밝아진다. 쫀득쫀득한 폼 형태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적당한 단계에서 멈춰도 최종적인 맛에 큰 차이는 없다. 완성된 달고나 거품을 우유 위에 잘 덜어내 얹으면 된다. 설탕이 두 배가 되겠지만, 달고나를 잘게 부숴 토핑으로 올린 달고나 달고나 커피도 맛있다.
ⓒ Studio Kenn
위에 얹은 크림을 살살 저어 녹이면 우유의 흰색이 점차 갈색으로 변하며 풍미를 더한다. 직접 노력해서 뭔가를 만들었다는 뿌듯함, 커피의 쌉싸름함, 설탕의 달콤함이 입안을 채운다. 쉴 새 없이 팔을 움직인 사람만 맛볼 수 있는 수고로움의 맛이다.
새로운 트렌드
영화 ‘기생충’(2019, 봉준호 작)의 짜파구리가 그러했듯, ‘모디파이(modify)’와 ‘컨슈머(consumer)’를 합친 ‘모디슈머(modisumer)’ 트렌드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일상에 전에 없이 깊게 스며들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브이라이브(V live, 온라인 생방송)에서 달고나 커피의 유행 소식을 전하며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벌서 수백만 뷰를 훌쩍 넘겼다.
해외 네티즌들의 달고나 커피 제조 영상이 각국 유튜브를 휩쓸기도 했다. 흔한 재료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점, 무료함을 달래기에 차고도 넘치는 노동력이 들어간다는 점 모두 이 음료의 인기 이유로 꼽히고 있다. 400번 언저리에 거품을 잘 만들어낸 사람도 있는가 하면, 4000번을 저어 겨우 완성했다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포기하지 않고 끝내 저마다의 달고나 커피를 완성했다는 게 중요하다. 세계인의 도전 의식을 이렇게나 자극한 음료가 또 있었을까?
인스턴트 커피 대신 코코아 가루나 마차 가루 등을 넣은 새로운 메뉴도 파생되고 있는데, 달고나라는 명칭이 고유명사처럼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코코아 파우더 상표인 ‘마일로’로 거품을 낸 음료는 달고나 마일로라고 불리는 식이다.
뉴욕타임스와 BBC 등 해외 유수 언론에서는 이 커피를 한국 최신 트렌드로 소개했고,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달고나 커피가 세계 각지로 전해지며 서로의 심심함을 달래고 격리 생활을 공감•응원하는 '마법의 레시피'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늘 코로나19에 맞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달고나 커피 한 잔만큼의 여유로움, 그리고 그 나머지만큼의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