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너 하지만 난
그러나 처음 보는 이 친구를 덜컥 믿어도 되는 걸까? 그날부터 애디슨은 나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어머니와 남매들 이외에는 누군가와 함께 지내본 적이 없던 나는 몹시 곤란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애디슨은 조심스러워 보였다. 함부로 이렇게 저렇게 참견하거나 섣불리 훈수를 두는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길로 가야 할지 저 길로 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묵묵히 뒤에서 내가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들개의 흔적들을 발견한 날에는 내게 더 안전한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말없이 먹을거리를 찾아주었고. 무엇보다 후각이 발달한 그를 따라 트럭의 자취를 찾아갈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애디슨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간 홀로 떠나온 길에 지칠 때로 지친 나였지만 늘 무언가에 공격을 당하기라도 할까 푹 잠들지 못하던 나. 애디슨과 떠나는 길에 익숙해지니, 길을 떠나온 뒤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잘 아는 애디슨을 보니 나보다 더 긴 시간 길을 헤매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그. 나는 그를 조금만 믿어보기로 했다.
“애디슨 그런데 전부터 너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어.”
“그래? 내가 답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대체 이마의 그 상처는 어떻게 생긴 거야?”
“.....”
“같이 지내던 식구는 없었어?”
점점 애디슨에 대해 궁금해졌다. 도통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그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무심한 듯 그의 과거를 묻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물으면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애디슨. 쉽게 털어놀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언젠가는 너의 이야기, 말해줄 거지?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애디슨. 처음부터 상처를 이마에 달고 태어난 건 아니라고만 할 뿐이었다. 사람에 대해 해박한 고양이. 다만 나는 애디슨이 나와 같은 길냥이가 아니란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어느 날, 쥐를 사냥해 보겠다며 호기롭게 애디슨의 경고를 무시하고 숲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결국 나는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려 버렸다. 입과 다리에서 피를 줄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걸린 소리에 한 사람이 덫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애디슨 살려줘!”
다급하게 외쳤지만 지금까지의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애디슨이 벌벌 떨고 있다. 멀리서 원래 잡으려던 동물이 아닌 들고양이가 잡힌 것 같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애디슨 제발 정신 차려!"
곧 정신을 차린 애디슨은 내게로 다가와 덫을 찢기 시작했다. 꼬리가 말린 채 분명 떨고 있는 모습인 애디슨의 모습에 나 또한 죽을힘을 다해 덫에 걸린 몸을 조금씩 빼냈다.
겨우 덫에서 풀려난 나. 주저앉은 애디슨을 이끌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급히 도망쳤다. 밤이 되어서야 겨우 떨림이 잦아든 애디슨이 걱정되었다.
“애디슨 이제 괜찮은 거야?”
"이제 내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때가 되었다고 느낀 것인지 애디슨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역시 애디슨은 길냥이가 아니었다. 그는 오랜 시간 한 소녀의 품에서 길러졌다. 정을 나누며 가족처럼 지내던 애디슨과 소녀. 그러나 소녀가 성장하여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다고 했다.
소녀의 남편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고, 더욱이 고양이 알레르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동안은 소녀의 남편도 함께 노력해보겠다며 알레르기 약까지 복용했다고 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소녀 부부는 남편의 지인에게 애디슨을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날 애디슨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돌보아준 소녀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불안함이 밀려왔다고도 한다.
애디슨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새로운 주인은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남자로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소녀의 남편에게 돈을 받고 억지로 애디슨을 떠맡은 듯했다.
입양이 된 날부터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고양이 털이 날린 다며 온몸에 털을 다 밀어버리려고 하는 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시간들,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며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손과 발.
가끔 새로운 주인의 집에 방문하던 소녀 부부도 임신 소식이 들려온 후부터는 발길을 끊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주인이 던진 그릇에 맞아 커다란 흉터를 가지게 된 그 어느 날, 애디슨은 그곳을 탈출하기로 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일까. 애디슨은 사람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을 학대했던 주인과 같은 사람이었다. 마르고 키 큰 남자 사람이라도 보는 날에는 하루 종일 구석에 쳐 박혀 몸을 벌벌 떨었다고 한다.
"원래 너의 주인을 원망하지는 않았니?"
"원망했지. 하지만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어."
“나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애디슨”
“너를 살리려고 애쓰며 나는 한 가지 결심했어.”
“어떤 결심?”
“이제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 보려고. 언제까지나 그 기억에만 갇혀서 이런 숲 속에서까지 사람들이 무서워 도망가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야.”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읊조리듯 내게 이야기했다. 그도 숲 속으로 오기 전 나와 같은 길냥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길냥이의 수명은 길어야 고작 3년 정도라고 한다. 턱없이 짧다.
어제 반갑게 인사한 고양이가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어 죽어버리는 일. 음식을 먹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친구들. 애디슨은 다른 고양이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했다.
하루하루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하는 일,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공포가 심해지자 애디슨은 홀로 이런 숲 속으로 떠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나를 만난 것이라 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니, 처음 길냥이의 삶에 접어들었을 때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볼 때부터 나를 돌보아 주어야겠다는 확신을 했다.
애디슨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른이 다 되어가는 애디슨의 모습이 멋졌다. 나는 여전히 나는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애디슨이 구해준 음식만 먹어왔는데. 그는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집을 떠나온 후로부터 지금까지 제자리를 걷는 것 같다.
답답함이 밀려오며,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해버렸다. 애디슨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바다로 가겠다는 이 꿈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상처 때문인지 무엇인지 식욕도 잃고, 의욕도 잃기 시작한다.
애꿎은 애디슨에게 신경질만 내는 일이 잦아졌다. 사정을 모르는 그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야, 민들레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야?”
나는 막막해졌고, 우리의 여정에 적신호가 켜졌다. 여기서 이제 포기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