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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이 Oct 31. 2017

나를 지지해줄 그 누군가

어쩐지 마음에 드는 낭만이라는 단어

트럭이 뿜어내는 작은 물줄기의 짠 내를 따라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방향을 잡고 트럭을 따라 길을 나서니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아파트가 빽빽하던 도심에서 벗어난 모양. 나는 길고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 위를 질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쥐라도 사냥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 몇 번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도리어 내가 쥐에게 겁에 질려 도망가기를 수차례.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 나는 수풀 속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꿈을 꾸었다. 어머니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지켜보는 오빠와 막내의 모습도 보인다. 식구들의 모습을 보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운 너무도 그리운 가족이었다.          


 “어머니, 저 아버지를 만나러 바다에 가고 있어요.”     


 “그래, 우리 둘째 정말 대단하구나.”     


 “제가 잘 하고 있는 걸까요? 이제 조금씩 포기하고 싶어 져요.”     


 “엄마는 네가 정말 잘 해내리라 믿는단다.”     


 “바다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겠죠?”     


 “그럼, 아버지는 너를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어머니는 말없이 나에게 다가와 내 몸 구석구석을 핥아주었다. 잠시 새끼 고양이 때로 돌아간 듯 어머니에게 응석을 맘껏 부려보았다. 오빠와 막내도 다가와 내게 말해주었다. 그 좁은 주택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바다로 가는 이 길에서 약해지지 말고 꼭 살아남아달라고. 어머니는 내게 부탁했고, 식구들의 모습은 조금씩 흐려졌다.


 “어머니! 오빠! 막내야!!”     


 “이것 봐. 정신 좀 차려.”     


 “.....”     


 “죽은 건가?”          


 나를 깨우는 낮은 목소리.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잠시 멍한 내게 이렇게 있으면 정말 죽게 된다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2배 정도 되는 몸집과 날렵한 꼬리를 가진, 특히 이마의 커다란 흉터가 눈길을 끌었다. 빤히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자신의 애디슨이라고 소개한다. 곧 나의 이름을 묻는다.           


 “나는 애디슨이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니?”     


 “나는 이름이 없어.”     


 “이름이 없다니, 다른 고양이 들은 너를 뭐라고 불렀는데?”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나를 ‘둘째’라고 불렀지.”     


 “둘째? 그게 너의 이름이냐?”     


 “나와 같은 길냥이들에 이름이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니?”          


  한동안 깔깔거리던 그는 새로 만난 기념으로 내게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한다. 내가 발견된 곳은 민들레가 만

발한 수풀 근처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민들레’라고 하기로 했단다. 처음 내게 생긴 이름이었다.           


 “민들레, 어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길냥이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 아냐?”          


  그동안 많이 보아온 흔한 들꽃이었지만 어쩐지 나와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지는 터였다. 약한 바람에도 흩날리는 씨앗을 통해 여기저기 뿌리내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민들레. 정말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너는 어딜 가고 있었던 거야?”      


 “잠깐 길을 잃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그렇구나. 그런데 일단 너의 꼴이 정말 엉망이다. 이것부터 좀 먹어.”          


  허겁지겁 그가 준 음식들을 먹고 나니, 조금씩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에게 바다로 떠나게 된 사연을 털어놓게 되었다.      


 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자라온 순간, 사라진 가족, 소라껍데기를 발견하고 바다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의 일들. 한 번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였다. 묵묵히 나의 사연을 들어주던 그는 내게 말했다.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간다라.”     


 “너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아니, 정말 낭만적인 것 같아!”     


 “낭만? 그게 무슨 뜻이야?”     


 “평범한 고양이들은 꿈꾸지 못하는 걸 너는 하고 있잖아? 그게 바로 낭만이지!”     


 “일단 좋은 의미인 건 맞는 거지?”     


 “그럼, 민들레! 나도 너와 함께 바다로 가도 될까?.”     


 “바다로 가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쉬운지 어려운지 알 수 없어. 괜찮다면 우리 한번 같이 해보자!” 


 바다로 떠나려는 나의 말에 이제껏 다른 고양이들의 의아한 반응과는 달랐다. 그는 나의 이 무모한 행동이 정말 낭만적이라 한다. ‘낭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어쩐지 그가 지어준 이름처럼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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