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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휴양지 타오르미나

시칠리아 여행기 14 : 타오르미나

by 이지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기차역

타오르미나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와 기차역까지 걸었다.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로 가까웠다. 하늘을 완전히 가렸던 구름이 깨끗하게 걷히고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시라쿠사에서 맞는 첫 햇빛이었다. 우중충한 날씨로 시라쿠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곧 나를 포함해 형과 친구는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창 밖을 한 번 휙 보고 스마트폰 속의 지도를 확인했다. 아직도 타오르미나로 향하는 길이었다.


2시간 정도 동쪽 해안가의 기찻길을 따라 달려 타오르미나에 도착했다. 입구 옆에 둔 캐리어를 챙겨 급하게 기차에서 내렸다. 곧 기차가 떠나고 나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차역 앞으로는 에메랄드 빛의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반대편 높은 산 위에는 건물들이 보였다. 타오르미나는 500m 높이의 구릉에 위치한 도시이다. 높은 곳에 요새처럼 지어져 있어 침략을 대비하기에 용이했다.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 도시가 세워진 것이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지중해

기차역에서 타오르미나 구시가지까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택시를 타기 위해 기차역을 빠져 나왔다. 기차역 앞에는 넓은 주차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었다.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택시기사님들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택시 앞쪽에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멘 우리를 발견한 택시기사 중 한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혹시나 사기를 당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경계하며 택시 기사를 바라봤다. 평소 하듯이 요금을 흥정하기 위해 친구와 눈을 맞추며 신호를 주고 받았다. 택시 기사는 뒤쪽에 있는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택시비는 15유로예요.”

타오르미나 기차역의 택시는 정액제였다. 기차역에서 타오르미나 구시가지까지 오르는데 15유로로 별도로 가격을 흥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가지는 안 쓰겠네.' 안심이 됐다. 기사님과 우린 3개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타오르미나로 출발했다. 택시는 구릉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꽤나 높고 가파른 길이었다. '15유로는 저렴한 것 같은데?' 형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문 위에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가파른 길을 20분 넘게 달려 타오르미나의 남쪽 광장에 도착했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북쪽 아치문

광장에서 바라본 풍경은 우리를 압도했다. 높은 곳에 위치한 타오르미나 광장에서는 서쪽 멀리 눈에 뒤덮인 에트나 화산이 마치 뒷산인 것처럼 가깝게 보였다. 동쪽 언덕 아래로는 푸른 바닷가가 펼쳐져 있었다. 북쪽으로는 아치형의 작은 문이 있었고 그 뒤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작은 아치문을 지나 타오르미나의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마치 비밀의 문을 넘어서는 것만 같았다. 문 뒤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고, 작은 길은 길게 쭉 뻗어 있었다. 예쁜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과 레스토랑, 카페를 지나 구시가지의 가운데 위치한 광장에 도착했다. 여느 유럽의 도시처럼 광장에는 큰 교회가 있었고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숙소 예약은 신중하게


온수와 난방이 잘 되지 않았던 시라쿠사의 숙소에서 고생을 했던 탓에 타오르미나의 숙소를 고르는 것은 신중했다. 너무 신중했던 탓에 타오르미나에 도착한 당일까지도 숙소를 예약 하지 못하고 말았다. 숙소 예약을 위해 잠시 앉을 곳을 찾았다. 큰 교회가 있는 광장 근처에 카페 몇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작지만 빵과 케이크를 판매하는 제법 그럴 듯 한 카페였다. 아란치노와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란치노는 시칠리아의 대표 간식으로 맛은 한국의 야채 코로케와 비슷했다. 빵 안에 야채와 고기 그리고 밥알을 가득 넣어 튀긴 음식으로 간식이라기보다는 한 끼 식사에 가까웠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카페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며 오늘 묵을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타오르미나는 숙소가 굉장히 많았고 가격은 비싼 편이었지만 시설은 대부분 훌륭해 보였다.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며 신중하게 고른 숙소를 예약하고 길을 나섰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방금 예약했죠? 우리 숙소는 오늘 손님을 받을 수 없어요. 취소할게요.”

방금 예약한 숙소의 주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숙소

갑작스러운 당일 예약이었고, 호텔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숙소여서 주인의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거리에 서서 핸드폰을 붙잡고 새로운 2번째로 괜찮았던 숙소를 급하게 예약했다. 그리고 바로 전화가 왔다.

“방금 예약했죠? 나는 숙소 매니저예요. 지금 입실해요? 숙소까지 20분 정도 걸리니 숙소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5분 정도 걸어 숙소 앞에 도착하여 매니저를 기다렸다. 곧 매니저가 도착했고, 안내를 받아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는 생각보다 좋았다. 2층 구조의 숙소로 1층에는 거실과 부엌이 있었고 한층 내려가면 방 2개와 화장실이 있었다. 거실과 부엌 방 모두 넓었지만 온풍기와 라디에이터를 켜자 숙소는 금방 따뜻해졌다.


시칠리아 대표 간식, 아란치노


유럽인들의 관광지 타오르미나

이탈리아 시칠리아, 피스타치오 젤라토

타오르미나는 이탈리아인들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동쪽에 있는 해변가에서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구시가지는 그리스 원형극장 등 볼거리가 많았다. 또한 에트나 화산 투어 등 다양한 놀거리가 있는 도시이다.


구릉에 세워진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메인 거리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고, 남쪽 끝과 북쪽 끝에는 아치형 문을 통해 마을을 드나들 수 있었으며 남문에서 북문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로 매우 작은 마을이었다.


시칠리아는 유럽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4계절 내내 따뜻한 날씨를 유지한다. 1월의 시칠리아는 티셔츠에 재킷 하나만 걸쳐도 춥지 않았다. 이런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경치 때문인지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는 유명한 휴양지가 되었다.


짐을 풀고 숙소에서 나와 한적한 길을 걸었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 않았고 몇몇의 관광객과 주민들만 볼 수 있었다. 마트와 기념품샵에 들려 시칠리아에서 꼭 사야 한다는 트러플 오일과 피스타치오 잼을 구입했다. 또 관광 안내소에 들려 에트나 화산 투어를 예약했다. 1월은 여행 비수로 평소 가격의 절반 정도에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쇼핑과 투어 예약을 마치자 슬슬 배가 고팠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알란 노르마


어디에서 밥을 먹을지 고민하며 레스토랑을 찾았다. 골목길 구석구석을 걸으며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았다. 메인 길에 위치한 레스토랑 앞에 하얗고 긴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가 손님을 붙잡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우리 레스토랑 훌륭해요. 들어와 봐요."

결국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을 찾지 못하고 계속 마주쳤던 할아버지에게 이끌려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들과 나는 시라쿠사에서 푹 쉬었던 탓에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또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지 않고 식당에서 밥을 먹어 여유로웠다. 기분 좋게 식당에 앉아 메뉴판을 보았다. 시칠리아 레스토랑에는 알란 노르마 파스타 메뉴가 꼭 있었다. 알란 노르마는 토마토소스 위에 하얀 치즈가 뿌려져 있었다. 빨간 토마토소스는 용암, 그 위의 치즈는 하얀 눈으로 그 모양이 에트나 화산을 닮아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알란 노르마와 몇 개의 음식을 더 주문했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밤거리

할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가격은 비쌌고 음식은 맛이 없었다. 시칠리아에서의 식사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했으며, 심지어 맛도 없어 화가 날 정도였다. 타오르미나는 도시 전체가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식당 물가가 굉장히 비쌌고 맛은 별로였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신시가지에 괜찮은 식당들이 많았고 구시가지의 레스토랑은 대체로 비싸고 맛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오니 이미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노란 조명들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오래되어 낡은 건물들이 노란 조명에 반짝거렸다.





산 꼭대기의 도시 카스텔 몰라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카스텔 몰라

다음날 아침 일어나 산책을 하다 타오르미나 뒤쪽으로 높게 솟은 산 위의 마을을 발견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카스텔 몰라'라는 마을이었다. 오토바이를 빌려 카스텔 몰라에 오르기로 했지만 비수기여서인지 렌트 업체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오토바이를 포기하고 길을 걷는데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가요? 택시로 가는 게 편할 텐데요."

산을 가리키며 카스텔 몰라에 가고 싶다고 말하니 택시기사는 바로 투어를 제안했다.

"2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어요. 50유로예요."

흥정에 성공한 우린 30유로에 카스텔 몰라에 가기로 했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카스텔 몰라

택시는 타오르미나보다 높고 굽이진 길을 통해 30분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카스텔 몰라는 높은 산 꼭대기에 위치해 타오르미나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에트나 화산도 타오르미나 보다 더 가깝게 보였다. 높은 산 위의 성 안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았다. 조용한 마을을 구경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멀리 보이는 에트나 화산은 장관이었다. 성곽에 앉에 에트나 화산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1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우린 다시 택시를 타고 다시 타오르미나로 돌아왔다.



고기와 2유로짜리 와인이 여행과 함께 한다면


일정을 마치고 주민들이 이용하는 작은 마트에 들렀다. 타오르미나에 있는 동안 비싸고 맛없는 레스토랑은 이용하지 않고 숙소에서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이었다. 5유로 어치의 노란 종이에 싸인 돼지고기와 2유로짜리 와인을 샀다. 집에 돌아와 야채를 씻고 고기를 구웠다. 파스타면을 삶아 올리브 오일과 마늘을 넣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었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코르티나 담페초는 기대도 안 했는데 트레킹 한 게 너무 기억에 남아.”

“아그리젠토에서 발견한 맛집은 평생 못 잊을 거 같아.”

"카타니아에서 먹었던 와인 한잔과 화덕피자는 진짜 맛있었어.”

“자전거 타고 몬델로 갈 때 넘어질까 진짜 무서웠어요.”

“맞아, 너 브레이크 잡는 분주한 손이 생생하다.”

며칠 전의 일을 몇 년은 된 것처럼 떠들어 댔다.


여행을 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추억이 쌓이며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의 여행도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평상시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가 버린다. 종종 여행은 시간의 유한함을 상기시켰다. 행복한 이 시간을 붙잡기 위해 머리를 굴리곤 한다. 잡힐 듯 말 듯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이 시간이 속도 모르고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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