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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역사를 품은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칠리아 여행기 13 : 시라쿠사

by 이지
시칠리아 카타니아, 숙소 엘리베이터

시라쿠사로 이동하는 날이었기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캐리어를 호텔 로비에 맡기고 길을 나섰다. 호텔 앞에 있는 카페에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카푸치노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아침 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주말이었던 아침에는 어제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을 챙겨 먹고 호텔로 돌아와 캐리어를 챙겨 길을 나섰다. 100년은 된 듯한 엘리베이터는 문을 손으로 직접 열어야 했다.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는 무사히 1층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의 기차역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기차역 입구 옆에 마련된 티켓 매표기에서 시라쿠사행 기차 티켓을 구매했다. 기차 한 구석에 짐을 풀고 자리에 앉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기차는 동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1시간 반을 달려 시라쿠사에 도착했다. 잠에서 겨우 깬 우린 짐을 챙겨 예약한 숙소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어플로 예약한 숙소를 한 시간 동안 찾았지만 결국 숙소를 찾지 못했다. 어플에 표시되는 숙소는 다른 곳이었다. 결국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길을 찾지 못하는 우리를 숙소 주인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 30분 후 숙소 주인은 와인 한 병을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주인을 따라 이동한 숙소는 어플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숙소를 찾느라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지쳐버렸지만 반갑게 인사하며 와인을 건네는 주인의 호의에 마음이 풀렸다. 숙소는 넓은 거실에 방이 2개인 숙소였다. 2박 3일 이곳에서 머물 예정이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예쁜 곳이었다. 짐을 풀고 바로 길을 나서 구시가지로 향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 맑고 햇살이 가득했던 시칠리아의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바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시라쿠사의 저녁


시라쿠사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그 당시의 많은 유적들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신시가지에는 그리스 원형극장이, 구시가지에는 그리스 신전의 터가 보존되어 있었다. 많은 상점들이 모여있는 구시가지는 신시가지에서 다리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었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답게 구시가지 내에는 많은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 유명한 식당 체인이 있을 정도로 번화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구시가지를 산책하려 했지만 바닷 바람과 조금씩 내리는 비 때문에 관광을 포기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어야했지만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기 힘들었다. 휴가 기간에 늦은 저녁 시간이어서 인지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기 힘들었다. 결국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신시가지에 위치한 숙소 근처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큰 마트가 있었다. 다양한 식자재와 공산품을 판매하고 있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마트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에스프레소가 들어 있는 초콜릿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또 삼겹살을 구워 먹기 위해 두꺼운 베이컨, 마늘, 양파, 배추를 구입했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파스타면을 구입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저녁식사

숙소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다. B는 부엌을 정리하고 재료를 준비했다. A형은 냄비에 밥을 올리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나는 파스타 면을 삶고 재료를 손질했다. 마늘과 페퍼로치노를 손질해 잔뜩 올리고 올리브 오일 뿌려 노릇해질 때까지 볶았다. 9분 동안 익힌 파스타 면을 구운 마늘과 페퍼로치노 위에 올려 함께 볶았다. 냄비에 얹혀 놓은 흰 밥과 고기를 그릇에 담고 A형이 준비해온 김치와 함께 먹었다. 숙소 주인이 선물해준 와인을 따서 식사와 함께 했다. 추운 날씨에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니 몸이 스르르 녹아 내렸다.


그리스 원형극장과 디오니소스의 귀


시칠리아 시라쿠사, 원형극장

평소 따뜻한 날씨의 시칠리아는 난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 숙소는 다른 숙소들과 마찬가지로 온풍기를 틀어 방의 온도를 높여야 했다. 온수는 화장실 안의 전기보일러에서 물을 데워야 뜨거운 물이 나오는 구조였다. 전력이 약했던 탓이었는지 온풍기를 켜고 전기보일러를 사용하면 전기가 나가버렸다. 2개의 방과 거실이 있는 구조에 2개의 온풍기로는 집을 따뜻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샤워는 찬물로 해야 했고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주인에게 현재의 상황을 전달했다. 주인은 너무 추운 날씨 탓에 그런것 같다고 사과하며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제대로 씻지도 잠을 푹 자지도 못한 상태로 아침에 일어났다. 주인아저씨가 준 티켓을 가지고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커피에 크루아상을 먹고 길을 나섰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찬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다.


원형극장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원형극장에 들어갔다.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자 극장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큰 모습에 놀랐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볼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하지만 2000년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많은 곳이 무너져 있었고 낡아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 앉아 극장을 내려다보았다. 극장 뒤로는 멀리 바다가 보였다. 그리스인들은 원형극장에 앉아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타오르미나에 위치한 원형극장 또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디오니소스의 귀

원형극장 바로 옆에 위치한 '디오니소스의 귀'로 이동했다. 아쉽게도 어제 내린 비로 동굴에 물이 차서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디오니소스의 귀' 동굴은 석회암을 채석하다 만들어진 인공 동굴이다. 높이 23m의 동굴로 실제로 입구가 귀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굴 안에서 노래를 부르면 신비한 울림이 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추운 날씨에 A형과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괜찮아지면 다시 관광을 시작할 요량으로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잠시 잠이 들었고 잠을 깨니 몸살감기로 온몸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다. 여전히 온풍기나 커피포트를 작동시키면 전기가 차단됐다. 숙소 건물 밖은 여전히 바람이 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 중에 아플 때가 있다. 몇 년 전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다. 몸이 약해진 상태로 마드리드에 도착했고 게스트 하우스에 1주일 정도 누워 쉬기만 했다. 여행을 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직접 정성스럽게 저녁을 만들어 주곤 했다. 군대에서 장교생활을 마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스페인으로 온 사장님은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쾌적하고 따뜻한 숙소에서 쉬며 사장님이 만들어 주는 밥을 먹고 몸을 회복했었다. 그날처럼 정성스러운 음식과 쾌적하고 따뜻한 숙소가 필요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다음날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조금은 괜찮아졌고 다시 길을 나섰다. 비는 그쳤지만 찬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다. 항구에는 작은 배들이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시라쿠사는 조명으로 노랗게 빛났고 따뜻해진 날씨에 숙소를 나서 길을 나서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돌았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라쿠사는 여행 전부터 가장 기대가 컸던 도시였다. 하지만 날씨와 컨디션 때문에 시라쿠사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없었다.


계획대로 되는 완벽한 여행은 없다. 1박만 머물며 잠깐 들리려 했던 아그리젠토는 2박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도시였고, 가장 기대했던 시라쿠사는 춥고 아팠던 곳으로 남아버렸다. 여행도 인생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가득하다. 항상 행복할 수 없으며, 기대했던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일어나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버티고 견디다 보면 다시 즐겁고 행복한 일이 찾아온다. 여행과 인생은 비슷했다. 다시 용기 내어 한 발짝 디딘다면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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