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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Jul 08. 2021

승마 투어와 앙콘 비치

쿠바 여행기 10 : 트리니다드

트리니다드


트리니다드의 길은 여기저기 파여 있었고 건물들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비가 내린 날은 길에 물이 넘쳐 흘렀고 하수구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리를 조금만 걸으면 느낄 수 있는 도시의 허름함은 트리니다드의 주변 경관과 나름 잘 어울렸기에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먹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 아름다운 하늘과 그 아래로 알록달록하고 낡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낡은 레스토랑과 카페 안은 쿠바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으며, 언제나 살사 음악이 흘러나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눈과 귀가 즐거웠다.


까사의 조식을 챙겨 먹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트리니다드 정중앙에 위치한 마요르 광장은 로마의 '스페인 광장'과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트리니다드에 방문한 관광객들이 모두 이곳에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수다를 떨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광장 위로 높이 뻗은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고 계단 옆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트리니다드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마요르 광장을 지나 길을 따라 더 걸어보기로 했다. 광장 근처에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을 끝과 끝이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여서 트리니다드를 둘러보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쿠바 트리니다드, 승마 투어

숙소로 돌아와 요리를 하고 있는 차매로에게 트리니다드에서 할 수 있는 투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었다. 

"승마도 할 수 있고 악기도 배울 수 있어. 그리고 앙콘 비치에서 뭐든지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저씨의 말대로 트리니다드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승마 투어, 살사 악기 레슨, 살사 댄스 레슨, 기차 여행, 앙콘 비치의 수상레저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쿠바는 여행자들의 천국이었다. 우리는 우선 승마 투어를 하기로 하고 차매로를 통해 투어를 예약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차매로에게 추천받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화려한 조명이 레스토랑 앞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레스토랑 안에서는 살사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전통의상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먹었다. 아바나의 음식과 다르게 간이 잘 되어 있어 맛이 좋았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트리니다드 레스토랑의 음식은 대부분 괜찮은 맛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근처 마트를 찾았다. 마트에는 아바나의 여느 마트처럼 같은 물건들 몇 개가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반 하나를 가득 채워 알록달록하게 진열된 아바나 클럽 럼주 한 병을 샀다. 숙소에 돌아와 '차매로' 까사 옥상에 자리 잡고 앉았다. 노을이 내려 붉게 빛나는 트리니다드를 바라보며, 아바나 클럽 럼주에 쿠바산 콜라를 부어 만든 우리만의 칵테일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쿠바 트리니다드

승마 투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1층에 내려가 차매로가 직접 만들어준 조식을 먹었다. 과일과 계란 프라이를 먹고 모카포트로 찐하게 내린 커피를 한잔 마셨다. 아침을 다 먹었을 때 가이드가 마차를 끌고 문 앞에 도착했다. 우린 급히 짐을 챙겨 마차에 올랐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구정물이 고여 있어 마차가 달릴 때마다 사방으로 구정물이 튀었다. 덜컹 거리는 작은 마차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많은 말들이 있었고 관광객들은 말을 타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들은 관광객들을 태우고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걸었다. 말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말에 올랐다. 승마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스러웠지만 순한 말은 나를 태우고 차분히 걸었다. 가끔씩 가이드가 말을 재촉하면 가볍게 뛰기도 했다.


쿠바 트리니다드

말을 타고 1시간 정도 달려 작은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다이빙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사람들을 따라 다이빙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C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에 뛰어들어 갔다. 

"형, 너무 좋아요. 얼른 들어오세요."

C의 말에 친구 B가 바로 폭포로 뛰어들었다. B는 깊은 물에 당황했는지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친구가 물속에서 허우적 대는 소리에 폭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친구를 바라봤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 준비를 했고 우린 놀라 정신없이 친구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러는 사이 친구는 스스로 물에서 빠져나왔고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매점을 운영하는 아저씨는 우리에게 와서 다이빙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폭포 아래로 내려왔다.


쿠바 트리니다드, 앙콘 비치

폭포 아래에서 우리 셋이 물놀이를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말을 타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목을 축였다.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가이드님, 말들과 함께 셀카를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투어를 마치고 나자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배가 고팠던 우린 식당을 찾았다. 한산한 골목을 걷다 피자 가게 간판을 발견했다. 작은 간판 옆의 문 안을 들여다보니 가정집인 듯했다. 반신반의하며 피자를 주문했다. 주인은 집에 있는 프라이팬을 이용해 피자를 만들었다. 두꺼운 종이에 싸인 피자 바닥은 프라이팬 열에 탔는지 거뭇거뭇했고 토마토소스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우린 그 집의 거실에 둥글게 앉아 피자를 먹었다. 프라이팬 피자는 나름 맛있는 쿠바 다운 피자였다. 


식당을 나와 길을 걷다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났다. 얼마 전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는 그들은 다른 숙소에서 묵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난 반가움에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신이 나 떠들다 우리는 앙콘 비치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내일 앙콘 비치에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저희도 내일 뭐할지 고민이었거든요."

다음날 아침 차매로 까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앙콘 비치


앙콘 비치는 트리니다드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해변가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만난 우리는 앙콘 비치에 가기 위해 택시 2대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오자 새파란 하늘 아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넓은 들판에는 말이 한적하게 풀을 뜯고 농부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드넓은 들판은 바닷가까지 이어졌다. 들판 옆의 2차선 길을 달려 15분 만에 앙콘 비치 주차장에 도착했다.


쿠바 트리니다드, 앙콘 비치 레스토랑

앙콘 비치의 해변가에는 레스토랑과 바가 늘어서 있었고 5성급 올인클루시브 호텔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수영복을 입고 해변가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바와 레스토랑에도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해변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건물도 많지 않았고 해변가의 바와 레스토랑은 나무판자로 아름답게 지어져 있었다. 해변가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아기자기했다. 듬성듬성 앉아 해수욕이나 썬텐 즐기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호텔 앞의 해변가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넋이 나가 바라보았다. 앙콘 비치를 즐기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이 꼭 한 장의 그림 같았다. 우리도 그림 속의 풍경이 되어 보기로 했다.


모래사장에 '스노클링, 보트'라고 적혀 있는 나무판자에 서서 직원을 기다렸다. 멀리 있던 직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제트보트, 스노클링 관심 있어요?"

"스노클링을 하고 싶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

바로 요금을 지불하고 장비를 챙겨 보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 쿠바의 아름다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물속에 머리를 담그자 귀에 물이 들어가며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알록달록한 색의 예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해변가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해변가를 걸었다.


해변가의 호텔 앞에는 비치 발리볼을 할 수 있는 네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호텔에 들어가 공을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호텔 직원은 흔쾌히 공을 내어주었고 우린 해변가에서 비치 발리볼을 했다. 운동을 하고 맥주를 한 잔 더 마셨다.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스노클링, 비치발리볼, 식사까지 앙콘 비치에서의 완벽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도시였다. 시간이 멈춰 버린 트리니다드는 조금은 불편했지만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고 악기 강습, 살사 댄스 강습, 해양레저, 승마체험 등 즐길거리가 많았다. 모두 즐기기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는 여유 넘치는 이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 트리니다드는 진정 여행자들의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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