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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r 08. 2022

잃어버린 모자

쿠바 여행기 11 : 트리니다드

C는 아침부터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형, 오늘 아바나에서 A형 만나면 트리니다드로 보내고 공항으로 갈게요."

C는 다음날 새벽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A형은 저녁에 아바나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고마워, C. 형 만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C는 뉴욕 여행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다음날 아무 일정 없이 B와 함께 차매로 아저씨 집에서 A형을 기다렸다. 우리가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던 시간쯤 A형도 도착할 거라 생각하고 형을 기다렸다. 30분, 1시간 시간이 지나도 형은 도착하지 않았다. 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또 다른 한국 여행자들을 만났다. 2시간, 3시간이 지나자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 언제 오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혹여나 엇갈릴까 숙소 앞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기다렸고 택시가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앞에 끼익 하고 멈춰 섰다. 차에서 키가 큰 남자 2명이 내렸다. A형과 아바나에서 우연히 만난 일행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린 차매로 아저씨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곳에서 만난 석이와 함께 광장으로 길을 나섰다. 토요일 저녁, 트리니다드 광장에는 많은 쿠바인들이 있었다. 한 손에는 콜라나 맥주를 들고 있는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그들 사이에 껴서 마트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C는 A형이 아바나에 도착할 시간에 까삐톨리오 앞에 앉아 형을 기다렸다. 우리는 A형에게 택시를 타고 까삐톨리오 앞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기에 당연히 그곳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형은 공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요반나 까사로 바로 이동했다. 형은 요반나 숙소 2층에 누워 C를 기다렸다. 그렇게 엇갈린 그 둘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만났다고 한다.

 

A형과 함께 트리니다드에 도착한 다영이 형은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었고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쿠바는 3시간 정도의 거리로 캐나다에서 여행을 오기가 편했다. 석이는 세계 여행 중이었다. 쿠바에서는 20대의 대학생이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었다. 석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멕시코로 넘어가기 전에 쿠바를 여행하고 있었다. 우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다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나른한 아침이었다. 친구 B와 나는 늦잠을 잤고 A형, 다영이 형, 석이는 아침 일찍부터 트리니다드 광장 위의 송전탑에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돌아오며 기차 티켓을 5장 구입했다. 그날 오후 우린 기차를 타고 트리니다드 근처에 위치한 폭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늦게 일어난 B와 나는 나갈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나에게는 항상 여행 때마다 함께 했던 베이지색 모자가 함께였다. 점심을 먹고 호텔에 있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쿠바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위해서는 5성급 호텔 안에 위치한 카페에 가야 한다. 커피 가격은 4~5 쿡 (한화 5~6,000원) 정도로 일반 카페보다 2~3배 비쌌지만 얼음 음료를 마시기 위해 자주 방문했다.


커피를 마시고 우린 기차를 타기 위해 타오르미나 남쪽에 위치한 작은 역을 향해 걸었다. 역이랄 것도 없이 그냥 기차 플랫폼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기차역에 도착하고 짐을 챙기는데 그 순간 모자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항상 목에 걸려 있어야 할 모자가 온데간데없었다. 기차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있어 모자를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갔던 곳에서 모자를 찾을 수 없었다. 모자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참을 뛰었던 탓에 기차역까지 뛸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기차역까지는 5분 정도 거리였고 대충 기차 시간에 맞을 듯했다. 기찻길을 따라 기차역에 정차해 있는 기차를 보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고개를 들어 기차를 바라보니 갑자기 A형과 B가 기차에서 내려 광장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잡기 위해 얼른 뛰었다. 기차에 도착하자 석이는 나에게 소리쳤다.

"형 찾으러 광장으로 갔어요. 얼른 데리고 오세요."

기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오지 않자. 나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다. 그 순간 기차는 경적 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떠나는 기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석이에게 인사를 하고 형과 친구를 찾으러 뛰었다. 우리는 계속 엇갈렸고 결국 숙소에서 1시간 만에 만날 수 있었다.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쿠바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A형과 B는 내가 오지 않자 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우린 허탈하게 웃으며 숙소로 들어갔다. 까사 거실 테이블에 앉아 숙소의 주인아주머니께 오늘의 일을 얘기했다.

"모자를 잃어버려서 속상했어요. 게다가 저 때문에 기차도 놓쳐버렸어요."

속상한 마음이 가득해 풀이 죽어있던 나는 힘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때 숙소의 아주머니는 갑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방에서 밀짚모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속상해하고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밀짚모자를 선물로 주었다.

"이거 써. 그리고 속상해하지 마. 모자와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 

    

아주머니의 위로와 선물에 눈물이 날뻔했다. 트리니다드에 있는 일주일 동안 아주머니는 우리의 엄마였다. 아침과 저녁을 챙겨 주시고 항상 우리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이메일을 보내라며 쥐어주던 아주머니의 이메일 주소는 쿠바 여행 동안 지갑에 자리 잡아 여행을 함께 했다. 트리니다드를 떠나 까요 산타 마리아로 향하는 날 아침 우린 아주머니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나와 친구는 눈물을 흘렸다. 트리니다드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 아름다운 앙콘 비치와 한가로운 마을, 그리고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다.

쿠바 트리니다드의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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