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기 09 : 트리니다드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을 했던 모두는 각자의 일정에 따라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멕시코 칸쿤, 비냘레스의 말 투어, 바라데로의 5성급 리조트로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배웅했다.
“내일은 어디로 가?”
“말 투어 하러 비냘레스에 가요. 아침 10시에 요반나 앞으로 택시가 오기로 했어요.”
“그럼 10시에 배웅하러 올게. 내일 아침에 보자.”
각자의 숙소로 가기 전에 의례 내일의 일정을 묻는 것이 우리의 인사였다. 택시를 타고 떠나는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언제 볼지 모르는 서로를 배웅하고 나서 조금은 힘 빠진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아바나에서 4일 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배웅했다. 그들과의 여행 이후 우린 다음의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C는 쿠바 일정이 7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여행지로 이동해야 했다. C는 트리니다드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형, 트리니다드가 정말 좋대요. 우리 같이 가요."
이틀 후 A형이 오기로 되어 있어 아바나에 있어야 했지만 C를 혼자 트리니다드에 보낼 수 없었다. A형에게 양해를 구하고 친구 B, C와 함께 다음날 트리니다드로 떠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조식을 챙겨 먹었다. 택시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어 친구에게 물었다.
"C야,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하러 갈까?"
"형, 쿠바에는 아이스커피 없지 않아요?"
"아니야. 반드시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어."
고민 끝에 우린 아바나 오비스포 거리에 위치한 호텔에 가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에 방문했을 때 묵었던 호텔이라고 했다. 높은 문을 지나 호텔 로비 옆의 계단을 통해 2층에 위치한 카페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메뉴판에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그봐!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3잔 주세요."
5성급 호텔 안에 있는 카페에서는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다.
어제 '요반나' 까사에서 트리니다드행 택시를 미리 예약했다. 트리니다드는 아바나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비아술이라는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편하게 가기 위해 택시를 예약했다. 시간에 맞춰 요반나 앞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10분이 지났을까 20년은 되어 보이는 낡고 오래된 차가 우리 앞에 섰다. '이 차는 아니겠지?' 트렁크에 캐리어가 모두 들어가지 않아 한 개의 트렁크는 뒷좌석에 우리와 함께 타야 했다. 우린 택시를 타고 트리니다드로 바로 출발했다.
트리니다드는 아바나만큼이나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지역이며, 쿠바 여행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쿠바 여행을 온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작고 아름다운 이 도시는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했다.
오래된 차의 에어컨 바람은 미지근했고 매연이 차 안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고속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차는 계속 덜컹거렸다. 3시간 정도 달렸을까 어느 휴게소에 도착했다. 시골 장이 열린듯한 휴게소를 둘러보았다.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버스와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화장실에 들린 후 간식을 샀다. 휴게소에서 다시 1시간 정도 달려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길에는 나무 한그루와 건물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기사님을 따라 내린 우린 스트레칭을 하며 낡은 건물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우리를 내려놓고 기사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던 찰나 아저씨는 어디선가 2리터 정도 되는 페트병 몇 개를 들고 와 차 주유구에 냅다 붓기 시작했다.
"페트병으로 차에 기름을 넣네."
주유를 하는 모습도 쿠바답다 싶었다.
오후 무렵에야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트리니다드의 북쪽 방향에는 높은 산이 있었고 그 위에는 철탑이 세워져 있었다. 산 아래로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그 광장 아래로 2층짜리 건물들이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어 건물들이 잘 정렬되어 있었다. 다만 길은 흙길이 많아 택시가 지나가면 차 뒤로 흙먼지가 날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차매로라는 이름의 아저씨가 운영하는 까사였다. 트리니다드의 차매로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차매로가 운영하는 까사의 저녁 식사는 10 쿡(한화 1만 원) 정도로 랑고스타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며 친절하기로 유명했다.
택시 기사님은 창문을 내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매로의 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차매로가 누구인지 아는 듯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 주었고 택시는 금방 차매로 까사 앞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에 차매로는 유명인사였다. 평범하고 작은 주택 앞에 택시가 멈춰 섰고 짐을 챙겨 내렸다. 작은 문이 열려 있었고 2층 지붕 위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정말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인가 보네?"
먼 타국에서 태극기를 보자 묘하게 안정감이 들었다.
점차 내려오는 태양 빛이 작은 창문 안을 비췄다. 그 옆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차매로 아저씨가 한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매로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인가 만들었다. 그것은 시원한 얼음을 넣은 칵테일이었다. 큰 얼음잔에 '아바나 클럽' 럼주와 '스프라이트'를 붓고 거기에 레몬 한 조각과 꿀을 조금 넣은 칵테일이었다. 칵테일을 한 번에 들이켰다.
"칵테일이 너무 맛있어요. 이름이 뭐예요?"
"칵테일 이름은 깐찬차라예요. 다이끼리와 모히또만큼이나 맛있어요. 더 원해요?"
간절한 눈빛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칵테일을 한 잔씩 더 만들어 주었다.
차매로 아저씨의 넉넉한 웃음처럼 트리니다드는 아바나와 180도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는 도시였다. 아바나는 유럽식의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고 넓은 도로에 50년이 넘는 올드카들이 매연을 내뿜는 곳이었다. 아바나는 큰 도시의 느낌이 드는 반면 트리니다드는 한적한 시골 마을 같았다. 1~2층짜리 건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좁은 골목마다 마차와 오토바이가 지나다녔다. 또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작고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가 굉장히 많은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문 앞에는 사람들이 서서 시간을 보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거리에는 마차가 타닥타닥 정겨운 소리를 냈다. 낡고 오래된 도시였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 것만 같은 시골 마을에 마음이 갔다. 깐찬차라와 함께 맞이한 트리니다드에서 행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