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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r 30. 2021

체 게바라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쿠바 여행기 07 : 아바나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 체 게바라


혁명광장은 블로그와 책에서 많이 보았던 곳이었기에 공항 택시 안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얼핏 지나가며 봐도 인상 깊었던 이곳은 건물벽 전체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갈리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음날 일정이 있었다. B와 C, 그리고 막내 D는 우리와 함께 혁명광장에 가기로 했다. 늦은 시간까지 요반나 까사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눈 우린 다음날 아침 9시 '요반나 까사'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쿠바에서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정해야 했다. 


다음날 30분 정도 일찍 숙소에서 출발했다. 요반나 까사는 호이끼나 까사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로 굉장히 가까웠다. 1층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친구들을 만나러 왔어요."

"안녕하세요. 들어와요."

'요반나 까사'는 쿠바인 자매가 운영하는 곳으로 호이끼나와 함께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까사였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묵는 곳으로 약속 장소로 이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어색함 없이 우린 거실 테이블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렸다. 두 자매는 조식을 마친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등이 푹 꺼진 침대의 불편한 잠자리 탓에 허리가 아팠던 우린 이왕 이곳에 온 김에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혹시, 남는 자리 있나요?" 

다행히 10층에 빈 방이 있었고 친구 B와 다음날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곧 C와 막내 D가 요반나 까사에 도착했고 바로 혁명광장으로 길을 나섰다. 


쿠바 산타클라라, 체 게바라가 탈취한 기차가 전시되어 있다.


체 게바라


근처 차이나 타운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사이에 껴서 버스에 겨우 올라탈 수 있었다. 버스로 15분 정도 이동하자 막내 D가 내리자는 신호를 했다. 우린 넓은 공터에 내려 길을 따라 걸었다. 한 달간 쿠바에 살았던 막내는 아바나의 길에 빠삭했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야구복을 입고 야구를 하고 있었다. 잠시 서서 우린 아이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야구를 하던 아이들도 우리를 봤는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길을 따라 조금 걷자 넓은 광장이 보였다. 광장 가운데에는 호세 마르티 기념관이 높게 서 있었다. 광장 앞의 하얀 건물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영원한 승리가 올 때까지'라는 문구가 체 게바라의 얼굴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건물은 쿠바 행정부 건물이다. 쿠바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체 게바라와 까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얼굴이 나란히 건물 벽에 새겨져 있었다. 산타 클라라에서 정부군의 기차를 탈취하여 무기를 확보한 체 게바라는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를 통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은 혁명에 성공한다. 원래 호세 마르티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기념탑이 있는 광장은 혁명이 성공한 뒤 '혁명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혁명광장은 쿠바의 수많은 행진과 연설, 시위가 있었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체 게바라는 쿠바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었다.


혁명 광장 구경을 마치고 오비스포 거리까지 걷기로 했다. 해변까지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걸으면 되었고 골목과 그곳의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건물들은 대부분 3~4층 정도였고 스페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었다. 오래된 건물은 하얀색이나 파란색 등의 원색으로 칠이 되어 있었고 그 사이를 알록달록한  오래된 차들이 매캐한 매연을 뿜으며 달리고 있었다. 파란 하늘은 흰색과 파란색 물감을 칠한 듯 아름다웠다. 이 모든 아름다움은 쿠바스러움에서 나오는 듯했다. 아바나는 오래되어 낡았지만 낯선 매력을 갖고 있었다.


쿠바 아바나, 암보스 문도스 호텔

거리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또 어떤 젊은이들은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평일 오전의 아바나는 평화로웠다. 30분 정도 걷자 오비스포 거리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항구에서 아바나의 중심 까삐톨리오까지 이어지는 긴 거리가 오비스포 거리이다. 좁은 길에는 레스토랑과 바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비스포 거리에는 까사도 굉장히 많았다. 이 거리의 까사는 특히 서양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이 묵고 있었다. 오비스포 거리의 까사는 저렴하고 시설이 깔끔하여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쿠바 일주를 마치고 다시 아바나에 돌아왔을 때는 오비스포 거리의 까사에서 머물렀다. (호이끼나와 요반나 보다 훨씬 시설이 좋지만 가격은 비슷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비스포 거리에는 핑크빛의 예쁜 건물이 하나 있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고 관리가 잘되어 보이는 이 건물은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다. 쿠바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인물이 이곳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서 오랜 기간 머물렀다고 한다. 그 사람은 바로 '노인과 바다'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이다. 그는 미국 출생으로 쿠바에서 살며 많은 역작을 남겼다.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는 쿠바인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쿠바에서 살았다. 하지만 쿠바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혁명이 일어나며 미국인이었던 헤밍웨이는 쫓기듯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금방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 헤밍웨이는 가족들은 물론 자신이 쓰던 타지기, 옷, 가방, 그림 등 모든 것들을 쿠바에 남겨 놓는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헤밍웨이는 쿠바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는 평생 동안 쿠바,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감한다.


쿠바 아바나, 암보스 문도스 호텔, 어니스트 헤밍웨이 타자기

오비스포 거리에 위치한 암보스 문도스 호텔로 들어갔다. 핑크색의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오는 아름다운 호텔이었다. 5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호텔 직원이 수동으로 문을 열고 닫아 주었다. 아슬아슬한 위험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했다. 안내 표지판을 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묵던 객실로 이동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객실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객실에는 생전에 헤밍웨이가 사용하던 모든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으며, 그때 당시의 객실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헤밍웨이가 글을 쓰던 타자기는 테이블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고, 즐겨 입었던 명품 옷들과 가방이 옷장 안에 걸려 있었다.


헤밍웨이가 다이끼리를 마시기 위해 매일 들렸던 바

헤밍웨이는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여 많은 그림들을 수집했다. 그가 수집한 작품들이 벽에 가득 걸려 있었다. 헤밍웨이가 미국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들은 호텔로 들이닥쳐 그림들을 모두 떼어 갔다. 헤밍웨이가 생전에 수집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은 가족들에게 유산이 되었다. 현재 호텔 객실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헤밍웨이가 소유하고 있던 그림들의 모작이었다.


객실은 작지만 포근했다. 예쁜 패턴의 노란 바닥과 다홍색 커버를 씌운 침대는 퍽 잘 어울렸다. 창문을 활짝 열자 멀리 말레콘과 바다가 보였고 오비스포 거리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창문으로 들어왔다. 멀리 말레콘에 넘실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앞에 앉아 타자를 치며 글을 쓰는 헤밍웨이. 바에 들려 생전에 가장 좋아한 다이끼리를 마시는 헤밍웨이. 쿠바를 배경으로 한 '노인과 바다'를 완성하고 기뻐하는 모습의 헤밍웨이가 눈에 선했다.


'체 게바라'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쿠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쿠바를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체 게바라는 목숨을 건 혁명 끝에 장관으로서 쿠바의 발전을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는 쿠바와 비슷한 처지였던 나라의 혁명을 위해 가족과 집을 뒤로하고 떠나지만 결국 그곳에서 전투 끝에 사망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가족을 만들고 이곳에서 생활하며 많은 작품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혁명으로 인해 쿠바에서 쫓겨난 그는 쿠바를 그리워하다 결국 먼 타지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들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쿠바를 그리워하다 죽어간 그 둘은 영원히 함께 이곳에서 기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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