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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행자의 천국, 쿠바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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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r 16. 2022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좋은 사람들

쿠바 여행기 06 : 아바나

아침을 챙겨 먹고 산책을 위해 길을 나섰다.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 거리를 달리는 빨간색의 올드카가 태양빛에 반짝거렸다. 어젯밤에 느꼈던 무서웠던 감정이 따뜻한 햇살 하나로 스르르 녹아내렸다. 낯설지만 따뜻한 거리를 한참 걸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오비스포 거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챙겨 먹었다. 관광지에 있는 레스토랑이어서 그런지 가격은 꽤 비싼 편이었지만 맛이 형편없었다. 그나마 맥주와 함께 먹으니 안주로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밥알이 푸석거려 부서졌고 고기는 쥐꼬리만큼 들어있었다. 야채도 많지 않아 아쉬웠다. 쿠바는 식재료, 특히 향신료나 소스가 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레스토랑 음식이 이렇게 맛이 없었다.

쿠바 아바나, 오비스포 거리의 레스토랑

점심을 먹고 오비스포 거리 근처에 위치한 국립 미술관을 찾았다. 언제나 여행을 하면 꼭 그 도시에 위치한 미술관에 들렸다. 그 도시의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오래된 대도시에 들리면 미술관은 필수 코스였다. 쿠바의 국립 미술관은 고야의 작품 등 스페인 화가들의 작품들이 있는 곳으로 쿠바의 현대 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5 쿡의 저렴한 입장료로 스페인 화가였던 고야의 작품은 물론 쿠바의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다만, 사람이 많지 않아 미술관을 대관한 듯 조용히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1층에는 작은 카페와 기념품 샵이 있어 여느 나라의 국립 미술관과 비슷했다. 미술관만큼은 쿠바의 거리보다 세련된 곳이었다.

쿠바 아바나, 국립 미술관

시차 적응이 덜 된 탓에 피곤했고 막상 길을 나서니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잠시 쉴 겸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로 들어가자 덩치가 큰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호이끼나' 까사에 있는 정보북을 보고 있는 듯했다. '호이끼나'와 '요반나' 숙소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여행 후기나 정보를 손글씨로 정성껏 적어놓은 책자가 있었다.

“정보북 보세요?”

“네, 다른 까사에서 묵고 있는데 정보북 보러 왔어요. 어제 쿠바에 도착했거든요.”

“그래요? 저희도 어제 도착했는데 혹시 오늘 여행 같이 다닐래요?”

그 남자는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저는 C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C는 키도 크고 듬직했다. 우연하게 만난 그 친구와 아바나 여행을 시작했다. C는 우리보다 쿠바에 대해서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친구 B, C와 함께 쿠바 여행을 시작했다.

쿠바 아바나, 갈리 카페

C와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저녁을 먹기 위해 C가 가고 싶다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랍스터 요리를 7 쿡 (한화 8,000원)에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한국 방송에도 소개가 되었던 '갈리 카페'라는 곳이었다. 다른 쿠바 식당과는 다르게 모던한 인테리어의 식당으로 식당 직원들은 모두 공무원이라고 했다. 유명한 식당이어서 그런지 입장을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때 갑자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서로를 알아본 우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네, 기다리고 있어요.”

마침 우리 뒤로 줄을 선 사람이 없어 자연스럽게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테이블 2개를 붙여 9명이 모두 앉았다. 사람도 많고 저렴한 가격에 거의 모든 메뉴를 양껏 주문했다. 맥주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년은 알고 지낸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쿠바 아바나

쿠바를 한 달째 여행 중이었던 21살 막내는 어제 막 쿠바에 도착한 5명과 함께 여행을 한 후에 저녁을 먹기 위해 ‘갈리 카페’에 온 것이다. 아직 대학생이었던 막내는 가장 어렸지만 쿠바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전문가였다. 갈리 카페에서 식사를 마치고 막내를 따라 근처 광장 앞에 있는 마트로 이동했다.

전날 밤 피자를 샀던 길에 있는 마트였다. 마트는 쇠창살로 뒤덮여 있었고 직원에게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건네주는 방식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막내는 능숙하게 아바나 클럽 럼주 2병과 탄산음료 몇 개를 주문했다. 우린 숙소로 돌아와 거실에서 아바나 클럽을 마시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음날 다시 만나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쿠바 아바나

쿠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가 느낀 낯선 감정과 두려움은 물론 사기를 당한 것도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낯설고 무서웠던 감정들을 공유했고 쿠바를 매개 삼아 공감대를 형성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다 달랐지만 우린 그렇게 친해졌다. 형이 되었고 오빠가 되었고 동생이 되었다. 쿠바는 사람이 귀한 곳이어서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여행지였다.

이날 우연히 만난 우리는 쿠바 여정 동안 함께 하게 된다. 아바나에서 헤어진 후 트리니다드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트리니다드에서 헤어져 다시 아바나에서 만나기도 했다. 낯설고 두려웠던 첫날부터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까지 우린 여행을 함께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인연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연이 겹쳤고,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만들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름답고 낯선 여행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추억보다 깊고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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