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기 04 : 아바나
거실의 소파는 스프링이 꺼졌는지 허리가 아프고 불편해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오랜 비행과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허리가 쑤셨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사람들이 거실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랜 비행과 자정이 넘어서 잠이 들었던 탓에 피곤하여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로 더이상 누워있을 수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침구를 정리했다. 부엌에서는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는 사람들의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식당으로 가니 빈 테이블 위에 미리 준비된 식사가 올려져 있었다.
조식은 작은 샌드위치와 과일, 수박 주스와 커피 우유였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맛이었지만 배가 많이 고팠던 탓에 금세 다 먹어버렸다. 커피는 모카포트로 내려 굉장히 진했다. 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울렁거리는 속이 잠잠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2개뿐인 화장실은 아침을 준비하는 여행자들로 붐비었다. 잠시 기다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려 변기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분명 자기 전엔 달려있던 변기 커버가 사라진 것이다. 주인 할머니가 변기 커버를 분리하여 치워 놓은 듯했다. 쿠바에서는 변기 커버도 귀한 물건이었다. '볼일은 어떻게 보지?' 첫날 아침부터 순탄치 않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서려던 찰나 함께 묵은 한국인이 말을 걸었다.
"궁금한 거 있으세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인터넷은 어떻게 해야 해요?", "위험하진 않나요? 어젯밤에 너무 무서웠어서..."
한국 여행객의 도움 덕분에 정보를 얻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쿠바에서의 첫 아침이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로 나섰다. 올드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자 매연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따뜻한 햇살에 매연은 덤이었다. 다만 어제 느꼈던 스산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숙소 앞의 우뚝 솟아있는 까삐톨리오는 쿠바를 대표하는 건축물 답게 아름다웠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을 출발한 이후로 인터넷 없이 20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기에 카톡을 확인하고 쿠바 관광지에 대한 정보도 찾고 싶었다. 쿠바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에텍사 Etecsa' 국영 통신회사에서 와이파이 WI-FI 카드를 구입하여 와이파이 공원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다.
오비스포 거리는 까삐톨리오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로 매우 가까웠다. 아바나 관광의 중심지인 이곳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에텍사 앞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줄을 서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유머글을 보던 습관 탓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카드 몇 장 사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니까 말이야. 힘들다. 힘들어."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에텍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천장이 높고 넓은 곳이었다. 쿠바의 건축 양식 자체가 그런 듯했다. 천고가 매우 높아 내부는 휑한 느낌이들었다. 넓은 공간에 원목 책상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 넓은 공간에 카드를 판매하는 직원은 달랑 3명뿐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
책상에 앉아 직원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냐는 시선을 보냈다.
"와이파이 카드 주세요."
직원은 와이파이 카드 3장을 내밀며 말했다.
"여권 주세요."
"더 많이 사고 싶은데요. 10장 주세요."
"안돼요. 오직 3장만 살 수 있어요."
와이파이 카드는 1인당 하루 3장만 구매할 수 있었다. 와이파이 카드는 한 장에 1 쿡(한화 1,200원)으로 딱 1시간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카드였다.
"한 시간이 넘게 줄을 섰는데 3장밖에 살 수 없다고요?"
"네, 그게 여기 규칙이에요."
우린 와이파이 카드 3장을 들고 에텍사를 빠져나왔다. 3장이 전부였고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근처 와이파이 공원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와이파이 공원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유심히 보고 있거나 동전으로 카드를 긁고 있다면 그곳은 와이파이 공원이 틀림없었다. 쿠바의 어느 도시를 가나 이렇게 쉽게 와이파이 공원을 찾을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ETECSA_ WIFI에 접속하자 보안카드 입력 창이 떴다. 와이파이 카드를 동전으로 긁어 확인한 보안 번호를 입력했다.
한 시간은 금방 흘렀다.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하고 사진 몇 장을 백업한 후에 쿠바 여행에 대해 검색했다. 1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와이파이 카드의 보안번호를 입력하여 다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다. 와이파이가 원활하지도 않아 접속이 끊기기 일수였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다. 쿠바 여행 동안 인터넷을 위해 항상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숙소를 나서 도시에 1~2개뿐인 와이파이 공원까지 걸어가야 했고 와이파이 카드를 동전으로 긁어 보안 코드를 확인해야 했다. 접속이 실패하거나 인터넷이 끊기기라도 하면 10자리가 넘는 보안 코드를 몇 번이고 다시 입력해야 했다.
2시간 정도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를 확인한 후 맛집을 찾았다. 오비스포 거리 근처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이 있었다. 배가 고팠던 우린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일식당으로 이동했다. 일본인 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쌀밥 위에 돈가스를 얹은 덮밥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름 먹을만했다. 점심을 챙겨 먹고 오비스포 거리를 걸었다.
대부분의 맛집과 관광지가 오비스포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상가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호이끼나' 까사로 돌아와 한국인들이 한 장 한 장 적어놓은 정보북을 읽기 시작했다. 쿠바에서는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행지를 알아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또 제대로 된 지도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쿠바에는 꽤 많은 한국 여행객이 방문했고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호이끼나'와 '요반나'까사에서 머물렀다. 자신이 떠난 후 뒤이어 올 한국인에게 여행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책자에 여행 정보를 남겼다. 추천 코스, 맛집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여행자들은 이 책자를 보고 또 새로운 정보를 남겼다. 한국 여행객들이 손수 적어 만들어진 책자는 정보북이라고 불렀다. 정보북은 두꺼운 책 한 권 정도 되었고 잘 정리하면 책으로 출간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와 양이었다.
쿠바 아바나 거리에서 신호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장실에는 변기 커버가 없는 곳도 많았다. 하수구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비가 오면 거리는 물에 잠겼고 쓰레기가 길거리 곳곳에 쌓였다. 인터넷도 되지 않았으며 와이파이를 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세상에 쿠바만큼 불편하고 여행하기 힘든 도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보북의 글에는 쿠바를 찬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글이 넘쳐났다.
'쿠바가 매력적이라고?'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며칠이 지나자 나도 그들처럼 쿠바의 매력에 점점 빠지고 있었다. 변기 커버 없이도 볼일을 보는 노하우를 찾았고, 샤워를 하다 물이 나오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게 되었으며, 정보북을 통해 여행정보를 얻었다. 오히려 이 불편함으로 인해 나는 온전히 나와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 동안 주변을 관찰하고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다른 여행객들처럼 정보북에 글을 남겼다. 내가 겪었던 그리고 좋았던 경험들을 정보북에 남기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났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글이 많은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했다. 이곳에 내 흔적과 감정을 남기며 이 불편한 여행이 주는 매력에 빠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