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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Sep 07. 2021

팔색조 매력의 말레콘

쿠바 여행기 08 : 아바나

쿠바 아바나, 말레콘 근처 놀이터

쿠바에서 가장 좋았던 곳 중 하나는 말레콘이다. 말레콘은 방파제와 도로로 얼핏 보기엔 평범한 곳이다. 아바나 북쪽에 위치한 해안가에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고 바로 옆으로는 6차선의 넓은 도로가 있다. 일반적인 방파제와는 달리 거센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도로 위로 쏟아진다. 말레콘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방파제에 부딪혀 올라오는 파도에 옷이 젖기도 한다.


말레콘은 구시가지인 오비스포 거리 근처에 위치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50년이 넘은 올드카들은 6차선의 넓은 도로 위에 매캐한 매연을 잔뜩 뿜으며 달리고, 해안가를 따라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바다를 마주 보고 있다. 방파제 담장 위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는 사람,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 직접 만든 머리끈을 보자기 위에 올려놓고 파는 사람, 해안가를 따라 러닝을 하는 사람 등 많은 쿠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쿠바 사람들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말레콘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쿠바 아바나, 말레콘

말레콘을 따라 걷다 보면 크루즈 선을 볼 수 있다. 쿠바에 방문한 크루즈 선에선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바나의 오래된 도시와 세련된 크루즈는 뭔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크루즈선을 지나 해변가를 따라 걸으면 수공예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큰 시장이 위치한다. 시장은 바닷가 위에 설치된 2층짜리 건물로 그림, 조각, 사진, 시가 담배 등 관광객들이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시장을 둘러보는데 한나절이 걸릴 만큼 큰 시장이었다. 시장을 구경하는 것이 여행의 재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우리는 시장에 몇 번이고 방문했다. 


가방을 메고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뒤에서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가방이 뒤에 있던 목각을 건드려 넘어진 것이다. 당황한 나는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그 목각 인형 2개를 구입했다.

"죄송해요. 제가 이거 살게요."

"신경 쓰지 마요. 괜찮아요."

친절한 주인 할머니는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사게 된 목각인형이었지만 한국에선 어디서도 구하지 못할 특별한 기념품이 되었다. 


2층의 그림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쿠바 출신 캐나다 작가의 작품 2장을 구입하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시장 앞에서 멀리 한국인으로 보이는 노부부 3쌍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한국인이 맞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죠?"

할아버지 한 분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여행 중이에요. 여행 중이신 거예요?"

"네, 그래요. 젊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은퇴 후 크루즈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할아버지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들었다.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이분들도 쿠바에 도착하여 사기를 당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사기를 조심하라며 신신당부를 하시며 말했다.

"사기당하지 않게 항상 조심해야 해. 또 어제 배값으로 1인당 1 쿡을 줬는데 모네다(현지인 화폐)로는 1 모네다만 주면 되더라고. 명심해!"


쿠바 아바나, 말레콘

말레콘 건너편 언덕 위에는 작은 성과 예수상이 있다. 이 성은 '모로 요새'로 쿠바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당시에 지어진 것이었다. 수도 아바나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성으로 성곽에는 당시 사용했던 대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고 남미에서 3번째로 크다는 예수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바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예수상은 아바나의 구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쿠바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탓에 야경이나 전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 모로 요새이기도 했다. 


쿠바 아바나, 모로 요새의 예수상

전날 '갈리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이 모로 요새에 가기로 했다. 각자 여행을 마치고 저녁쯤에 만나 모로 요새에 올라 맥주 한 잔을 하며 아바나의 야경을 보기로 한 것이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근처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생각보다 일정이 늦어져 약속한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사실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약속한 시간에 한쪽이 나타나지 않으면 각자 여행을 하고 숙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상태였다.

"기다리다 야경 보러 갔겠지? 혹시 모르니까 우리도 뒤따라 가보자."

서둘러 항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형! 여기에요!!”

친구들은 한 시간이나 항구 앞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늦게 도착한 미안함과 우리와 함께 가려고 기다려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쿠바 아바나, 모로 요새에서 내려다본 아바나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쿠바를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다. 8명 모두가 막내 D를 따라 배에 올랐다. 티켓의 가격은 관광 화폐는 1 쿡(1,200원), 현지인 화폐로는 1 모네다(120원)였다.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를 가지고 있던 막내는 우리 9명의 요금을 모네다로 지불했다. 쿠바에서 한 달 넘게 있었던 D의 노하우 덕에 우린 현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으쓱했다. 


작은 통통배 안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았다. 의자도 없는 작은 배로 모두 서서 반대편 선착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동네 주민들이 바다를 건너거나 관광객들이 가끔 이용하는 작은 배였다. 자전거에 과자를 가득 실은 아저씨가 바로 옆에 있어 달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1 쿡(1,200원) 어치 주시겠어요?"

아저씨는 큰 비닐봉지에 과자를 가득 담아 주었다. 9명이서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었고 심지어 맛도 좋았다. 그날 이후로 이 과자를 먹기 위해 많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어디를 가도 같은 과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곧 배가 작은 선착장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배에서 내려 이곳저곳의 골목길로 사라졌다. 우린 텅 빈 선착장 앞에 모였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거리에는 얼음 바구니에 병맥주를 가득 담아 놓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맥주를 팔고 있었다. 1 쿡에 1병인 병맥주를 하나씩 샀다. 언덕길의 성곽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자 예수상이 나왔고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다. 노란 노을이 금세 사라지고 보랏빛의 하늘이 아바나 위에 내려앉았다. 말레콘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 선이 노란빛을 내며 반짝거렸고 말레콘에는 파도가 치며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예수상 아래 자리 잡고 앉아 아바나를 바라봤다. 어느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말없이 아름다운 아바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쿠바의 말레콘은 단연 최고의 경치였다. 아바나의 야경과 말레콘을 보는 것만으로도 쿠바 여행을 온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행운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랏빛 하늘 아래 아름다운 아바나의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쿠바 아바나, 모로 요새에서 바라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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