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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쿠 Jun 27. 2021

03_주변의 반응

사서교육원 이야기

회사를 그만두고 사서가 되는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첫번째 반응 -  멋지다, 잘어울린다. 

 주로 오래된 친구들이나 자주 어울려 놀았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회사 때문에 힘들어 하던 모습을 자주 봤던 사람들은 '드디어 결심했구나'라고 말해줬고 오래된 고등학교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라는 반응이었다. 안정적인 여건에서 뛰쳐나와 불안정적인 상태로 도전한다는 것을 높이 사주는 이들도 있었다.  


두번째 반응 -  정말이야? 왜?

 그저 단순히 '왜 그랬을까'를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반응이다. 부서 담당임원님께서는 꽤나 적극적으로 만류하셨고 회사에서 마지막 굿바이 인사를 하는 도중에서도 이런 반응이 심심치 않았다. 또 한 친구는 '잘 다니던 회사 왜 그만두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하려고 하냐' 라고도 했었다.  

 

 첫번째 반응을 보이며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기뻤고 힘도 많이 얻었다. 그 중 누군가는 내가 선택한 삶의 가치에 동의하며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는 사람도 있을테고, 어쩌면 누군가는 내 일에 전혀 관심이 없기에 의례적인 응원을 보내준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두번째 반응은 오히려 솔직한 사람들의 반응이랄수 있을것이다. 기본적으로 나와 가치를 두는 지점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그들이 보기에) 험한 길 자처하는 내 모습을 정말이지 걱정해주는 사람들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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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가장 걱정되는 반응은 아빠의 반응이었다. 엄마와는 평소 상담도 많이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엄마는 내 삶에 적극적인 관여를 하지 않는 자녀교육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항상 내편이었다. 이번 결정 과정도 오래 지켜봐주며 항상 응원해주었기 때문에 엄마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 

하지만 우리 아빠로 말할것 같으면, 변화보다는 안정에 천만배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여행하는 것도 싫어하고 오죽하면 이사도 죽어라 싫어하는 사람이다. 딸내미는 한번 들어가 회사에서 뼈를 묻기를 바랬던 것이다.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늬앙스라도 조금 풍기면 욱하며 화를 내는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나는 부모님 반응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므로 미리 말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기보다는 모두 정리해 놓고 통보하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주말에 집에 가 아빠에게 발표할 타이밍만을 기다렸다. 이건 팀장님께 말하는 것보다 더 식은땀 나는 일이었다. 괜히 싸해지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분란의 소지가 없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둘이 있을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밥 먹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를 할까, 이래나 저래나 비난이 쏟아질거 같으니 그냥 회사 짤렸다고 할까, 아님 편지 써놓고 도망갈까?! 

하지만 기회는 엉뚱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아빠가 밖에서 거나하게 한잔 하고 온 틈을 타 고백하기로 한 것이다. 취중고백이라 할수 있겠지. 다만, 보통의 취중고백은 취한사람이 취한 김에 속마음을 고백하는 것이지만. 

술김에 얼떨떨하게 딸의 폭탄 선언을 들은 아빠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하는 얼굴이었다.  

이튿날 술에서 깬 아빠는 내 예상만큼 극렬한 반응을 보이시진 않았다. 그저 여전히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계획과 결심이유를 물으셨고 나는 천천히 대답을 했다. 자길 똑 닮아 고집센 딸을 한참 바라보던 아빠는 체념한다는 듯이 '알았다. 우리딸 믿는다. 열심히 해.'라고 하셨다.  ... 그리고 이후에도 종종 '사서 교육원이라고?' '어느 학교?' '몇년 공부하는건데?' 라고 물어보시는 걸 보니 이튿날도 술이 덜 깨셨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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