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빙하 투어
“자, 여기 파란색 빙하와 하얀색 빙하가 있어요. 왜 색깔이 다른지 아세요? 빙하의 색은 산소 농도에 따라 달라져요. 파란색은 빙하가 형성된 그때부터 녹지 않고 그대로예요. 하얀색 빙하는, 오랜 시간 햇빛에 노출되어 녹았다 얼었다 반복하면서 산소를 잃게 되죠. 그래서, 파란 빙하가 더 오래됐다고 할 수 있어요.”
여행 6일 차, 아이슬란드 남쪽 산맥인 스카프타펠(Skaftafell)에서 우리는 빙하 위를 걷는 투어(Glacier Hiking Tour)에 참여했다. 평평한 얼음 판을 걷는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여기서 빙하란, 협곡에 수천 년간 형성된 빙하, 혹은 빙설(Ice Tongue)을 말한 거였다. 얼음 산 등산 투어였다.
소집 시간 10시 30분 전에 도착해, 발 사이즈에 맞게 아이젠을 조정하고 얼음 곡괭이(Ice Axe)를 챙겨 투어 버스에 탔다. 엘프처럼 생긴 가이드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참가 인원은 열명 정도로 생각보다 많았고, 중국, 독일, 프랑스, 한국 등등 다양한 국적이었다. 빙하에 도착해서 다른 투어 그룹들을 많이 마주치면서, 빙하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다.
우리가 오른 빙하의 이름은 파디요거트(Falljökull).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빙하다. 첫 번째가 남극 빙하, 두 번째가 그린란드 빙하라던데, 그나마 관광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빙하라는 걸 감안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빙하를 올랐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Falljökull: 영어식으로 읽으면 폴요쿨로 발음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읽어본 발음을 한글로 표기했다. 그래도, 발음을 할 때 빠르게 흘려서 발음을 하면 원어민 아이슬란딕(Icelandic) 못지않다고 한다.
어느 정도 진흙과 화산재가 얼룩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 지정된 장소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빙하에 발을 디뎠다. 빙하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사실 처음엔 눈 쌓인 산길을 오른다 착각했다. 그러다 문득 중간중간 속살을 뽀얗게 드러낸 빙하를 보자, 아 내가 빙하 위를 오르고 있구나! 깨달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 빙하 등산은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일단 걷는 감각이 낯설고 그 무게감 때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쌓인 눈길을 걷기도 했고, 맨살을 드러낸 빙하의 미끄러운 표면을 밝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끗할 만했다. 모두 몇 차례 넘어질 뻔하다, 다시 중심을 잡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일열로 움직였기에 앞에 가는 사람들이 발을 헛디디는걸 종종 보았다. 투어 가이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름 여기도 포토존이 있는지,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을 찍는 시간 겸 휴식 시간도 있었다. 그러면서, 가이드는 빙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줬다. 산소의 농도에 따른 빙하의 색깔이 다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처 얼음도 색깔이 있고, 그럴 사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빙하들은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기에 하얗다는 말에, 수천 년간 햇빛을 받지 않은 새파란 얼음 덩어리들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 거대한 빙하 지대가 5년 후면 녹아 버릴 거라 예측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게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이드는 아이슬란드의 용암 지대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밑에서 뜨거운 용암이 들끓고 있고, 그 열기에 빙하가 서서히 녹는 거라고. 그리고 3년 전 빙하의 모습을 구글링으로 보여 줬는데, 지금보다 한 두 배는 더 그 규모가 컸다. 서서히 녹고 있다는 증거다. (구글링으로 검색한 결과, 주된 이유는 지구 온난화이고, 화산 활동에 의해 아이슬란드 빙하가 다른 빙하들 보다 더 빨리 녹는 가설이 있다고 한다.)
빙하 투어를 하면서 색다른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저 멀리서, 웬 남자가 곡괭이로 빙하를 쳐내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빙하를 오르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길을 닦고 있는 거였다. 우리 가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앞장서서 가면서 길이 안전한지 체크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가방 뒤에 꽂아 놨던 커다란 곡괭이를 뽑아 들고 세차게 얼음을 내리쳤다. 길이 녹아 발을 딛기에 충분한 공간이 없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계단을 만드는 거였다.
아, 우리는 자연 속을 잠깐 구경하고 있구나!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든 길일 지라도, 또 햇빛에 녹고 눈으로 덮인다. 그러다, 우리 같은 방문객들이 잠깐 들리면서 길을 만든다. ‘잠깐만 실례할게!’ 하고 말이다. 물론, 빙하는 말이 없지만 무언의 허락을 했다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이 빙하는 빙하 투어가 허락된 공간이다. 그 말은, 허락되지 않은 빙하도 있다는 것. 안전상의 이유로 헐리우드 원(Hollywood One)이라 불린 빙하는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터스텔라를 포함해 많은 헐리우드 영화를 찍은 곳이기에 헐리우드 원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원래는 빙하 투어도 그곳에서 진행했지만 지금은 파디요거트로 옳긴 거란다. 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분들은 무척 아쉬워하셨다. 인터스텔라 촬영지인 빙하를 걷는 줄 아셨던 거다.
이틀 후, 호픈(Höfn)에서 다시 비크(Vik)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 헐리우드 원이란 빙하에 들렸다. 정식 이름은 스비나펠스요쿨(Svinafellsjokull). 더 이상 방문객을 환영하지 않아서인지 빙하로 가는 초입구의 철문은 관리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리고, 파디요거트와 다르게 가는 길이 낭떠러지 정도는 아니지만 깊이 파인 곳 옆 샛길이었다. 빙하는 거대한 ‘얼음 지대’로 넓게 퍼져 있었다. 부채꼴 모양으로 위에서부터 미끄러져 내려오는 경사로의 파디요거트와는 또 모양이 틀렸다.
사실, 그 입구에 커다란 추념비가 있었다. 세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그곳에서 독일인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7년도인데, 가이드 말을 떠올리자면 한때 사고가 있어 그곳에서 투어가 중단되었다 재게 했다고. 현재는 그 사건과 별개로, 안전상의 이유로 투어 그룹은 출입을 못한다고 했다.
거대한 빙하는 아무 말이 없다. 그 일대는 고요하고, 정적이 흘렀다. 대자연을 탐험하는 만큼 위험도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 도중, 웅장한 협곡들을 볼 때마다 자연의 위대함과 숭고함에 압도되다 못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헐리우드 원에서 처럼 불의의 사고가 종종 있을 것이란 짐작도 했다. 주상절리(柱狀節理)로 유명한 레이니스파라(Reynisfjara Beach)에서도,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관광객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저, 그 사람들도 나처럼 이곳을 잠깐 들렸을 뿐인데.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묘하게 슬프게 느껴졌다.
오전에 시작한 빙산 투어는 오후 4시가 다 돼서 끝났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커다란 박스에 가득 담긴 쿠키가 우리를 반겨 줬다. 우리는 쿠키를 입에 한가득 담고 다음 숙소로 향했다. 남은 여행 따뜻하게 하라고, 한국인 분들은 감사하게도 손난로를 선물로 주셨다. 머나먼 아이슬란드에서도 한국인의 정(情)을 느꼈다. 빙하 위의 엘프였던 가이드는 3년 동안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며 직접 보고 만든 추천 목록도 공유해줬다. 그것도 모자라, 이메일로 우리가 방문할 지역에 숨겨진 장소를 알려줬다. 다음에 또 오라고, 그때도 같이 빙산을 오르자는 말과 함께 작별인사를 했다. 왠지, 아름다운 경치를 다시 한번 보기 위해,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과 조우(遭遇)하기 위해 다시 한번 방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빙하 투어 정보>
Skaftafell: 5 Hour Glacier Hike Adventure
비용: 인당 약 USD 130
소요시간: 약 5시간
참고사항:
-아이젠 착용을 위해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용 신발을 추천. 없을시 베이스캠프에서 대여 가능.
-가벼운 등산용 복장을 추천. 어차피 등산 하다 보면 덥고 땀이 남. (11월 초 기준)
-등산 중간에 간식 시간이 있음. 에너지바나 초콜릿을 챙겨 오는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