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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설탕 Feb 25. 2023

도대체 우리는 누구지요?

현무가 떠 있는 고요한 물가


제목: 현무가 떠 있는 고요한 물가

사이즈: 53*40.9 cm

재료: 캔버스에 아크릴

제작연도: 2021

작가:김나경 @studio_nakyung2011

<작가노트>

뱀과 거북이가 섞인 현무는 꿈이 있습니다.

이 현무는 죽을때까지 거북이랑 뱀이랑 같이 사는 것이 꿈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생활하다 보니

뱀도 거북이도 힘이 듭니다.

뱀은 굴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거북이는 강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같은 몸인데 서로

다른 성격,

다른 의견,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그래도 현무는 고요하게 평화롭게 물가에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둘은 같이 하늘의 노을을 봅니다.


그림속의 현무가 가족같았다.

서로 무거운 짐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존재..

여기 아프게 서 있는 너와 나, 우리.


이 그림을 보고

함경도 구전 신화 <숙영랑 앵여랑 신가>를 읽었다.



옛적에 숙영선비와 앵여각시가 살았다.

숙영선비가 열다섯 소년이 되고 앵여각시가 열네 살 청춘이 되지 숙영선비 집에서 혼사를 청했다.

....

두 사람이 천생배필을 이루어서 살 적에 부족할 것이 없는데

..부부 나이 마흔 줄에 들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이었다. 그래서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어서 물으러 갔다.

"...안애산 금상사를 찾아가 인왕부처와 금강부처, 인간 점지하는 생불성인에게 석 달 열흘을 기도하십시오"

숙영과 앵연이 그 말대로 안애산 금상사를 찾아가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방 안에 인물 병풍 화초 병풍을 둘러놓고 비단이불에 원앙베개를 돋워 베고 청룡 황룡이 얼크러지듯한 기운을 같이 품어 두 몸이 한 몸이 되자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었다...

그러데 아기가 사흘이 되어도 눈을 안 뜨고, 첫 이레가 되어도 눈을 아니 뜨며 세 이레가 되어도 눈을 아니 뜨고 석 달이 되어도 눈을 아니떴다..."산천도 무정하고 성인도 사랑 없구나. 인간 영화를 보렸더니 앞 못 보는 소경 자식을 무엇에 쓸까"

아기 이름을 거북이라고 하고 유모를 불러 아기를 주었다.

거북이 나이 세살이 되었을 때 숙영대감과 앵연부인이 또 한 기운을 같이 품으니 다시 태기가 있었다..

...잘나기도 잘나고 귀하기도 귀했다. 샛별 같은 두 눈이 똘똘 굴러 다녔다. 그러나 사흘 만에 아기를 향 물에 목욕을 시키려고 등을 만져보니 곱사등이요 다리를 만져보니 한쪽 다리가  짧은 앉은뱅이였다.

숙영과 앵연이 심사를 부리다가 유모를 불러 아기를 줄 적에 이름을 남생이라고 했다.

그 집에 재산이 억십만인데 숙영과 앵연은 그만 화병이 들어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모 잃은 두 아이가 안장서 놓고 먹고 놓고 쓰다 보니 그 많던 재산이 어느새 사라지고 빈털터리 가난뱅이가 되었다.

거북이와 남생이가 할 수 없이 손목을 붙들고 밥을 빌러 나갔으나 사람들이 병신 둘을 어찌 그냥 먹이느냐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박대를 했다.

남생이와 거북이는 대문 밖에 나앉아서 붙잡고 울음을 울 뿐이었다.

그때 곱사등이 남생이가 거북이한테 말을 하되,

"우리를 생기게 한 안애산 금상사를 가서 인왕부처 금강부처 생불성인을 찾아가봅시다"

"나는 앞이 어두워 어찌 거기를 갈까?"

"나는 또 앉은뱅이니 어찌 걸어가겠소"

그때 남생이가 하는 말이,

"형이 나를 업으시오. 형의 지팡이를 내가 쥐고 앞길을 짚으며 똑똑 소리를 낼 테니 그리로 가면 됩니다"

소경이 곱사등이를 업고서 길을 나설 때에 그 모습이야 오죽할까.

..거북이와 남생이가 길을 찾아 절 어귀에 들어갈 적에 살표보니 연꽃 늪 위에 솥뚜껑 같은 생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남생이가 그걸 보고서.

"형님, 이 연못에 솥뚜껑 같은 생금이 있으니 건집시다"

"우리가 무슨 복이 있어서 그것을 가지면 쓸 수나 있겠나. 본 척 말고 들어가자꾸나"

거북이와 남생이가 절에 들어가자 불목하니가 들어가서 부처님께 그일을 아뢰었다.

"그 아이들이 생기느라 우리 절에 생금 탑을 쌓고 했으니 남쪽 초당에 들여앉히고 글공부를 시켜라. 하루에 흰 밥을 세 번씩 지어 먹여라."

그 말대로 아이들을 맞아들였으나 불목하니가 일이 많아 화가 나서 부처 몰래 아이들을 두들겨 패주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올 적에 늪에 생금이 있었으니 그것을 건져 가지십시오."

삼천 스님이 달려 나가 살펴보니까 생금이 금구렁이가 되어 한쪽은 하늘에 붙고 한쪽은 땅에 붙어 있었다.

다시 더 두들겨 맞은 아이들이 나가서 살펴보니 틀림없는 생금이었다.

생금을 안고서 법당에 들어와 부처님 앞에 내려놓자 절이 저절로 움슬움슬 춤을 추었다.

그 금으로 부처님을 감싸자 부처님이 말을 했다.

"거북아, 네 눈을 띄어주마. 남생아, 네 몸을 펴주마."

 

..

자신을 낳아준 부모한테 거둠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내몬 존재.

스스로 자신의 복에 대하여 아무런 기대도 하지 못하는 존재. 그것이 거북이와 남생이 형제였다.

참담하지만, 그것이 세상살이의 현실이다.

그것이 신성에 대한 거역이었음을 어리석은 인간들이 어찌 알았으랴.

그 어리석은 인간들에게는 빛나는 생금조차도 한낱 징그러운 구렁이일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뒤쫗은 것은 단지 욕망일 뿐이었으므로.

..하늘이 내려준 귀하디 귀한 제 자식을

눈이 멀고 등이 굽었다고 해서 마음으로 저버릴 때 그들은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이었다.

애써 낳은 자식이

소경이고 앉은뱅이라는 것은 얼마나 기막힌 일일까마는,

사람이 살아감에 만사가 제 뜻대로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감당할 때 진짜 삶은 열리는 법이다.

그 일을 지레 포기했으니 실상 저 부부야말로 소경이고 앉은뱅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허물이 자식들한테 대물림되었던 것이다.

속절없이 부모가 떠나간 뒤 험한 세상에 의지가지없이 남겨진 저 형제는 무거운 짐과 같은 존재였다.

세상 아무에게도 작은 의미조차 되지 않는 존재.

서로 붙들고 앉아서 울음을 우는 그들에게 삶이란

깜깜한 암흑일 따름이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그렇게 주저앉아 스러졌다면 그들의 삶은 스쳐 지나간 바람과 같은 것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절망의 순간에 힘없이 쓰러지는 대신 힘을 내서 일어난다.

존재 안쪽에 깃들어 잇던 신성의 힘이었다.

그들이 안애산 금상사를 찾아 나섰다는 것은 곧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생불성인 부처님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지요?

왜 세상에 태어난 거지요?

우리 존재란 이렇게 짐처럼 누추한 것일 수밖에 없나요?"

이 이야기는 그들이 부처님을 만나기도 전에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전해준다.

연꽃이 피어난 늪에 떠 있는 생금을 통하여.

"보아라, 이 연꽃을. 그리고 생금을.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존재의 빛을."

그렇다.

절망 속에서 훌쩍 일어서서 감긴 눈으로 앞을 보고

굽은 다리로 걸음을 디뎌나온 그들의 걸음걸음은 무상한 몸짓이 아니었다.

그것은 금빛 찬란한 신성의 발자국이었다.

그들은 이미 그렇게 신이었다.

살펴보면 고통과 방황은 누구에게든 있다.

눈이 멀고 등이 굽은 자 세상천지 만혹도 많다.

때로는 가혹하여 자신을 팽겨치고 싶기까지 한 그 업보는, 신의 뜻이다.

신이 아니면 누가 그리했을까.

그것을 받아들여 감내하기를 시작할 때,

내  한 몸으로 맞이하여 싸우기를 시작할 때,

신성의 빛은 피어난다.

그렇게 신성과 하나 되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나갈 때, 징그러운 뱀이 생금으로 화하여 존재를 찬찬히 물들이는 그 순간은, 온다.

우리가 미처 느끼기도 전에.

신성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선택받은 고귀한 존재한테서 오지 않는다.

버림받은 이들에게서,

박해받는 이들에게서 온다.

화려한 영광이 아니라,

뼈아픈 시련과 고통에서 온다.

그것은 저만큼 높은 곳이 아니라

이만큼 낮은 곳에 있다.

여기 아프게 서 있는 너와 나,

우리가 바로 신성의 주인공이다.

한국의 민간 신화가, 민중 신화가 구혀내낸 신성에 대한 번역이다.  

<p623~630 살아있는 한국신화, 신동흔, 한겨레출판>


여기 아프게 서 있는 너와 나를

순간순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친구 자식들 이야기

부모에게서 재산을 많이 물려 받은 회사 동료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불안한데..

나중에 나와 남편이 죽으면 남겨진 내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런데 그림속 거북이와 뱀이 하나가 된 현무를 보고,

<숙영랑 앵여가 신가>를 읽으면서

이것이 현실임을 인정해본다.

서로 붙들고 울기도 하고

악을 써보기도 하고

그렇게 뒤엉켜 한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가족이 한 몸으로 엉겨서 현실을 맞딱뜨려 본다.

너와 나의 존재 안쪽에 깃들여 있는 그 신성의 힘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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