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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Apr 26. 2023

산, 수, 공, 그 전들에 대하여

  P가 회사를 그만뒀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잠깐 할 말을 잃은 김 대표는 한숨으로 답했다. 그만뒀다는 P보다도 그 기관이 걱정되었다. 결국 그만두고 말 것을 P만 힘들게 했다는 미안함이 뒤따라왔다.    



  P의 전화를 받은 것은 1년 전쯤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기는 했으나 사적으로 만남을 갖거나 업무 외의 일로 전화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으니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주 앉은 P는 대뜸 한마디 던졌다. 어떻게 일했냐는 것.  P는 아직 중간관리자였고 김 대표는 말단에서 시작해 중간관리자를 거쳐 대표직에 있는 것이 다를 뿐, 각자 속한 조직의 운영주체나 법인이 비슷한 상황이니 저 한 마디를 묻기 위해 오래 망설였겠다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하긴, 김 대표의 산전, 수전, 공중전도 누구 못지않게 어지러웠고 수십, 수백 바퀴를 돌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전’들은 오기나 깡을 만들어내는 발전소와 같아서 일의 에너지로 전환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꼭 ‘전’을 치러야 할 의무나 필요는 없다. 조직이 크든 작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숨 쉬는 일처럼 생길 수밖에 없는 ‘전’ 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용이나 정도, 질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P가 겪은 ‘전’에는 같은 대표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결정의 번복, 틀림없는 행동이나 말을 안 했다고 우기는 것,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회피 등.... 이미 한 결정을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고 취소할 수 있지만 외부의 의견을 듣고 재 논의 없이 번복하는 일가견에는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토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대처한다 해도 속만 썩을 뿐이라는 걸 잘 아는 김 대표도 할 말이 없었다.

  일을 하다 보면 일의 진척, 일의 결과, 일의 품질 등으로 겪어야 할 피치 못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전’들이야말로 오기와 깡의 발전소가 되는 것인데 물을 끼얹는 불필요한 ‘전’의 유발은 상호 조심하며 지양해야 한다.  

  1년 전에도 P는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속내를 드러냈었다.  꼬집어 딱 몇 년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경력에서 오는 무게감은 자신도 모르게 기관에 대한 책임감쪽으로 기운다. 그 시기가 되면 보이지 않은 것들이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서 그만두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일종의 '사적 소속감'이 '공적 소속감'으로 전환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P에게 이젠 맘대로 거취를 결정할 수 없는 공적 인물이 되었으니 책임감을 가지라며 김대표는 역설했었다. 아무리 하찮은 ‘전’일지라도 그 하찮음까지도 짊어져야 한다며.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맥 빠지는 오지랖이었던가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권한을 오남용 하지 않아야 한다, 소통해야 한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이렇듯 보편적이고 당연한 문구들은 얼마나 식상한가. 그럼에도 지키고 유지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만약 책임감이나 권한 사용의 정도를 온도계 같은 것으로 잴 수 있다면 그래서 기준점이 넘어섰을 때  빨간 불이 깜빡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기 경고등처럼 말이다.    


  절망의 일상화가 희망의 일상화로 전환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깊고 짙은 절망을 걷다 보면 그 절망을 걷어찰 만한 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김 대표가 말단으로 있을 때 바로 위 선임은 대표의 불합리한 행위에 잔뜩 깔려 있던 절망을 낮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그렇지만 강렬하게 걷어찼다.   

 ‘우라질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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