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타문화권에서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작년까지만 해도 오리온은 국내 식품기업 중 시가총액 순위 1위 기업이었습니다. 최근 CJ제일제당과 삼양식품에 자리를 내주었죠. 제과에 한정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가진 오리온이 그토록 기업가치를 높이 인정받았던 이유는 해외사업입니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시장에서의 성과가 지난 이십여 년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초코파이가 제사상에 올라간다',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빨간색이 주효했다'와 같은 기사들도 넘쳐났습니다. 일면 단편적이고 흥미 위주의 기사들이지만, CJ나 롯데와 같은 대기업도 해외 진출에 애를 먹던 상황에서 오리온이 보여준 성과는 두드러졌습니다.
오리온에 대한 칭찬은 마케팅, 광고로도 이어졌습니다. 중국의 문화를 연계한, 현지화 전략의 대표적 사례처럼 인용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초코파이의 '인(仁)'입니다. 한국에선 초코파이 '정(精)'이라 했는데, 중국의 문화와 정서에 맞게 '仁'을 사용했고 중국인의 공감 속에 제품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사실 '仁'이 중국인의 공감을 샀는지는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중국 소비자들은 패키지 상 '仁'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몇몇은 '杏仁'을 연상하며 아몬드가 들어있는지를 묻기도 했죠. '仁'을 컨셉으로 TV광고를 만들고 집행도 했었지만, 공자도 평생을 설명했던 '仁'을 15초에 담긴 쉽지 않았습니다.
초코파이가 주는 따뜻함과 나눔의 이미지는 사실 제품명에서 기인합니다. 오리온의 중국명은 잘 알려진 대로 하오리요우(好丽友)입니다. '좋은 친구'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잘 지은 기업명을 그대로 제품명에 입혔습니다. 하오리요우 파이는 빵과 초콜릿, 마시멜로우가 주는 폭신한 식감과 달큰한 맛에, 좋은 친구의 의미가 더해지며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맛있는 제품입니다. '仁'이 아닙니다.
고래밥의 TV광고에는 중국 명나라의 무관이자 환관이었던 정화(郑和)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함대를 이끌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다녀왔다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정화를 통해 바다에 대한 모험의 이미지를 제품과 연결하려 했던 시도입니다. 당시엔 아마도 이런 중국적 인사이트를 소재로 한 아이디어를 칭송했을지 모릅니다. 아쉽지만 우리, 한국인끼리의 이야기입니다. 정화는 사실 중국인들보다 우리에게 더 유명합니다. 게다가 환관이지요. 광고 상의 인물이 정화임을 알지도 못했습니다.(역사 상 실존 인물의 실명을 광고 상에 쓸 수 없었던 규정 탓도 있습니다) 냉정히 평가하면 한국인들끼리, 중국의 인사이트를 찾았다며 좋아했던 광고물입니다. 현실과 달리 우리의 학교과 언론에서는 해외 인사이트를 통한 성공적 커뮤니케이션 사례로 다뤄지곤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입니다.
어긋난 오리온의 시도들을 가져왔지만, 잘했던 광고 캠페인도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국적이기보다 쉽고, 재밌고, 제품과 직접 맥이 닿아있던 광고물들의 결과가 좋았습니다. 제과가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저관여 제품. 친구들과의 수다 사이에, TV를 보며, 그저 입이 궁금해서 찾는 제품입니다. 중국적 인사이트를 요하거나, 심각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주재원들의 고민일지 모릅니다. '타 문화권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그를 이해해야 그들/소비자와 공감하는 마케팅을, 영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광고를, 마케팅을 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생각해 봅니다. 애플이, 코카콜라가, 알리안츠가, BMW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에 한국적 인사이트는 얼마나 있을까요. 오히려 애플이 한국인의 정문화, 장보고를 소재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느낄까요.
그 나라의 문화와 인사이트가 모든 것의 답은 아닙니다. 그 나라의 것은 사실 그 나라의 기업, 브랜드가 더 잘하고,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외로 나갔을 때라면, 우리가 글로벌 브랜드고,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가 그들의 니즈에 닿아있기에 가능성을 봅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다 같은 사람입니다. 좋은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압니다. 해맑게 웃는 아이, 머뭇거리는 연인의 손, 나란히 앉은 노부부의 모습이 주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가족, 건강, 사랑, 성취의 가치들은 동일합니다. 사람에 기대면 됩니다. 그 나라의 문화나 인사이트에 대한 걱정은 조금 미뤄두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