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업광고, 제품광고
최근 한화의 기업PR 광고를 보았습니다.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한화의 노력과 비전을 이야기합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온 서울이 들썩이는 불꽃축제도 한화가 주최합니다. 뚝심 있게 기업PR을 상당히 잘하고 있는 기업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한화그룹 매출의 상당 부분을 금융계열사가 책임지고 있으나, 한화는 본래 화약에서 출발한 회사입니다. 그룹명 자체가 한국화약의 줄임말이죠. 이어 화학을 추가하며 제조업이 그룹의 근간 사업이 됩니다. 방산과 화학. 모두 사회적 통념 상 좋은 이미지의 사업은 아닙니다. 전쟁 물자를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업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한화의 콤플렉스가 기업PR에 적극적인 이유일지 모릅니다. 태양광과 같은 신규사업을 그룹 이미지의 전면에 내세우며 부정적 이미지를 최소화합니다. 야구단만 좋은 성적을 내어주면 기업PR 효과가 배가 될 텐데, 회장님도 야구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함께 가요 희망으로', '사랑해요 LG', '행복 SK'와 같은 슬로건이 기억에 남아있는 분이라면 Z세대라기보다 X세대, 밀레니엄 세대에 가까우실 겁니다. 삼성은 그룹 차원의 광고 외에도 삼성전자의 기업PR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을 20여 년간 이어오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새로운 천년을 여는 희망의 시기였고, '브랜드'의 붐이 불기 시작한 시기기도 합니다. 기업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비전 체계를 수립하고 기업PR 광고로 제작, 집행했습니다. 기업 브랜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기업 이미지 제고의 노력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여전히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언론사'로 칭했던 TV, 신문, 잡지사들이 기사로 여론을 주도했고, 기업의 홍보팀은 사실상 대언론 조직의 역할을 담당했죠. PR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긍정 기사를 싣고, 부정 기사를 막고자 언론사 기자들을 접대하는 일이 상당수였습니다. 기업PR 광고는 이러한 언론관리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9시 뉴스 전후에, 신문의 백면에, 잡지의 표 4 면에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기업들은 가장 비싼 지면들을 구입했고, 언론사들은 기사를 내주었습니다. 때로 특정 기업의 안 좋은 이슈를 언론사가 앞장서 변호를 해주기도 했고, 석간에 실렸던 기사가 조간에는 빠지기도 했죠. 상부상조의 수단으로 기업PR 광고가 거래되었음도 사실입니다. 전통 미디어들의 여론 형성 기능이 약해지며 기업PR 광고들이 줄어든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방증할지 모릅니다.
기업PR 광고의 양과 다르게 목적과 위계는 더 다양해졌습니다.
B2B 기업들도 기업PR 광고에 관심을 가집니다.
내부 고객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제조강국, 수출강국답게 B2B 비즈니스의 규모가 B2C대비 훨씬 큽니다. B2B 기업들은 대기업임에도 일반 소비자들에겐 낯설기 마련입니다. 때로 회사의 직원들은 가족, 친구들에게조차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한 설명을 어려워합니다. 삼성전자, LG전자처럼 회사명만으로 직관적인 이해를 바라기 힘듭니다. 설명이 길어지고 설명이 시작되자마자 가족, 친구들은 흥미를 잃죠. 회사의 업, 비전을 홍보하는 광고의 목적은 이러한 내부 고객의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회사 광고 못 봤어?' 하면 체면이 살죠. 자긍심이 올라갑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인재채용과도 닿아있습니다. 일하고 싶은 회사들은 '내가 잘 아는 회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 기업의 업과 비전을 알고 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커리어와 연결 지어 발전 가능성을 살펴보고, 추가적인 정보를 서칭 합니다. 잘 모르는 회사라면 그 기업의 실적, 미래 성장 가능성과 무관하게, 취업 고려군에 들기가 어려워지죠.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인재 충원은 필수입니다. 그런 이유로도 B2B 기업은 광고를 합니다.
B2C기업이라면 기업PR에 좀 더 많은 포석을 둘 수 있습니다.
기업 브랜드는 제품 이미지와 선택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애플이 전기차를 만든다고 했을 때, 협력사로 루머가 돌았던 회사들의 주가는 들썩였습니다. 애플이 보여주었던 '혁신'이 그대로 자동차에 입혀질 거라 가정한 시장의 반응입니다. 애플은 자동차 산업 경험이 전무한 기업입니다. 강력한 기업 브랜드의 보증은 신규 시장 진입에도 레버리지 자산이 됩니다.
매년 말 애플은 크리스마스 광고를 만듭니다. '23년에는 스탑모션과 외톨이 상사의 모습을 엮어 가슴 따뜻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슬쩍슬쩍 아이폰과 Mac과 같은 제품이 나오지만, 거슬리진 않습니다. 이야기에 녹아있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이기에, 애플은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광고로 주변을 돌아보며,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치열했던 아이폰과 갤럭시, Mac과 PC의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섭니다. 그럼으로 사람들은 애플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제품이 보여주는 혁신에 더해 따뜻함까지 라니. 기업은 또 다른 메시지로, 개별 브랜드를 강화합니다.
기업 브랜드와 제품 브랜드의 힘겨루기가 있기도 합니다.
한 때 삼성은 국내에서 PAVV, Zipel, Hauzen과 같은 카테고리(마스터) 브랜드를 운영했습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프리미엄이라기보다 대중적 브랜드에 가까웠습니다. TV와 가전이 고급화되며 프리미엄 브랜딩을 통해 더 높은 가격의 제품을 팔고자 선택한 전략입니다. 광고에서도, 제품에서도 SAMSUNG은 PAVV 뒤에 숨었습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삼성의 브랜드 전략이 달라집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키워놓은 카테고리 브랜드를 버리기로 합니다. 글로벌의 성과를 바탕으로 SAMSUNG의 브랜드력이 충분히 강해졌다 판단합니다. 아울러 카테고리별로 나뉘어 중복 투자 되었던 브랜딩 비용을 SAMSUNG, One Brand로 통합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키워놓은 브랜드인데...'. '삼성 가전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낮아질 거다'. '매출 하락의 위험성도 있으니 단계적으로 가도 되지 않겠느냐'. 경영진은 단호했습니다. 생산해 놓았던 PAVV TV의 프레임을 폐기하더라도 'SAMSUNG'을 제품의 중앙에 넣으라 지시합니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Galaxy 브랜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시장 전환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합니다. 장기적으로는 Galaxy 역시 사라질지 모릅니다.)
모기업 브랜드와 하위 브랜드가 가진 자산, 미래 경쟁력에 따라 보증 전략이 변화한 사례입니다. 삼성전자는 더 이상 기업PR 광고에 큰돈을 쓰지 않습니다. 제품광고가 중심이죠.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기업이 처한 시장상황, 보유 경쟁력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뿐입니다.
제품광고는 기업PR과 다릅니다. 실제 매출을,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기업PR이 전략에 가깝다면 제품광고는 전술입니다.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한 각각의 개별 전투입니다. 기업PR은 나의 이야기에 가깝기에 경쟁사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제품광고는 싸워 이기기 위한 수단이기에 경쟁사가 상수 조건입니다. 기업PR은 장기적 비전과 기업의 가치를 소구 하지만 제품광고는 제품의 차별성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기업PR은 브랜딩에 가깝고, 제품광고는 마케팅의 영역입니다.
이제 광고 이야기를 넘어 마케팅으로, 브랜드로 넘어가 보려 합니다. 수많은 제품광고의 시작과 끝에 마케팅이 있습니다. 마케팅의 뿌리에는 브랜드가 있죠. 광고가 대외 커뮤니케이션의 에센스라면 마케팅은 보다 복잡하고 종합적인 과정입니다. 광고는 마케팅의 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마케팅과 브랜드는 염연히 다릅니다.(때로 마케팅 부서에서 브랜드를 다루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두 개념의 몰이해에서 비롯됩니다.)
광고는 결과물로서 'What'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 여정 상의 'How', 마케팅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