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펴봐.
그리고 움직이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
-영화‘벌새’중에서-
내 아무리 대프리카 출신이라도
삼복더위의 절정에는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가족들 밥을 해먹어야 하는 것이 엄마의 숙명!
(쓸데없이 왜 비장한 건데.?)
에어컨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만,
끄고 싶어도 건물의 다른 세대들이
모두 에어컨을 틀어대니 실외기 열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을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신세.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식구들, 묵밥 앞으로 헤쳐모여!
이럴 때는 묵밥을 먹어야 한다.
먼저 예쁜 물결무늬를 만들어주는
묵칼을 꺼내야지.
진짜 없는 게 없는 다이소에서
이런 날을 위해 미리 사놨다.
(다이소를 끊어야지.
아니 똥개가 똥을 끊지..)
묵칼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툭 썰어 양푼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찬 기운을 뺀다.
뜨거운 물을 따라내고 취향에 따라
쪽파, 혹은 대파, 오이, 김치 등을
쫑쫑 썰어 준비하고, 김가루와 깨,
참기름도 한 방울 또르르-
얼려둔 냉면 육수는 봉지째 미지근한 물에
담가두었다가 살짝 녹았다 싶을 때 꺼내
칼 손잡이로 콩콩콩,
살얼음을 만들어 양푼의 가장자리를
따라 담아준다.
숟가락으로 슥슥 섞어서
크게 한 입 와앙-
짭조름하고 고소하고
달콤하고 시원하고-
한여름에 묵밥만큼 가성비와 가심비가
좋은 음식이 또 있을까.
이럴 때 도토리묵밥을 먹으려고
겨울잠을 자기 전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무더위에 지쳐
쓰러질 가족들을 위해
여름 냉동실엔 냉면 육수를 채워둔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도토리묵밥이지만
이런 것들도 모여서 또 우리의 여름날의
하루가 되겠지.?!
“대부분 특별한 것이 모여서가 아닌
평범한 것들이 모여서 하루가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이 모아져서
누군가의 하루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영화 ‘벌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