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고 모기 물리고 또 걷고
둘째날은 조식 먹기를 포기하고 (호텔주방 직원들이 큰소리로 싸우고 있었으므로..) 편의점 훈제란과 바나나 우유로 허기를 채웠다.
14일(화) 일정
새섬 올레길-천지연 폭포-(점심)바다다 카페-용머리해안-한라산 천백고지-이중섭 미술관-(저녁)흑돼지오겹살-올레길 산책
숙소에서 10분정도만 걸어내려오면 새섬 산책길이 있다. 둘째날은 구름이 걷혀서 엄청 맑고 햇볕이 뜨거웠다. 그래도 바닷바람이 선선해서 땀은 좀 났지만 걷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산책길을 걷는데 예쁜 새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옥구슬같은 소리였다. 새소리를 따라하려고 동생과 부던한 노력을 해보았지만 괴성만 내고 오히려 있던 새들도 쫓아버린것 같았다..그 새를 찾고싶었는데 ..
발목에 올해 첫 모기를 뜯기고 이마가 지글지글 익었지만 서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울창한 숲과 넓은 하늘이 정말 기분 좋았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이렇게 파랗고 높다는걸 또 오랜만에 감상하고왔음. 한국에 이런 멋진 장소들이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새섬을 돌아보고 바로 근처에 천지연 폭포도 돌아보기로 했다. 아빠는 예전에 와봤다고 호텔에서 차를 가져올테니 엄마랑 나랑 동생만 보고 오라고하셨다. 혼자 열심히 산길을 올라가 차를 가져올 아빠가 불쌍해서 아빠가 비행기에서부터 먹어보고 싶다고 한 돗멘(흑돼지 라면)을 사가기로했다.
입장료 인당 2000원으로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니.. 마치 멋진 사극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참 멋있게 나왔다. 우글우글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비교적 한산했던 것이었다. 다 구경하고 돌아나오는데 수학여행 온 단체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한치빵은 어딜가도 보이길래 궁금해질 지경이어서 한번 사먹어봤는데 의외로 꿀맛이었다.
빵 안에 모짜렐라 치즈가 잔뜩 들어가있고 치즈 크림 조금이랑 한치 가루(?)가 들어있는데 달달 짭짤한것이 간식으로 아주 딱이었다.
알고보니 둘째 이모랑 사촌동생들도 이날 제주도에서 막 돌아왔다고 했다. 이모가 추천해 준 분위기 좋은 바닷가 브런치 카페! 10시 오픈이라고해서 고픈 배를 부여잡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이런 대에 카페가 있다고? 할때 쯤 마법의 성처럼 뿅하고 나타난 곳.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해서 야외에서 바다구경을 하면서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자릿값인지 햄버거는 작고 비쌌지만 경치 한 입 햄버거 한 입씩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비싼 값 주고 꼭 한번 올만한 곳이었다. 2층 옥상에는 선텐용 의자 같은 것들이 주루룩 있길래 누워서 비타민D를 좀 생성했는데 팔뚝이 아주 건강하게 탔다ㅎ
맛있는 음식,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바다를 보고 누워있으니 여기가 혹시 천국인가 싶었다.
동생과 엽사도 많이 찍었는데 지 혼자 멋진 척하고 내 얼굴을 잘라서 프사를 해놓았길래 약간 빈정 상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용머리 해안이었다. 여기도 무슨 용머리 닮은 절벽이 있다고 해서 용머리 해안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용암이 지나갔다는 절벽들이 진짜 절경이었다. 내려가는 길 입구가 너무 가파라서 처음엔 가기 싫다고 잠시 징징댔지만 내려가고 나니 안보고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은 어떻게 에메랄드 빛인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감탄이 나와서 우와우와하면서 다녔다. 사진을 더 잘 찍지 못하는게 슬플 지경이었다. 일기에 내가 본 장면을 그대로 옮겨오고 싶었는데 글도 사진도 그 기분을 온전히 담지 못했다..
바위에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넘어지면 다리에 뼈만 남고 살이 고대로 발라질 것 같은 정도였다.
문득 궁금해져서 따개비 안에 누가 살고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온가족한테 비웃음만 샀다.
동생은 따생(따개비의 생)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며 누나는 다음에 따생으로 태어나라고했다. 누가 들었으면 본인이 따개비인줄 알았을듯
홍합같이 생긴 것도 떼어보려고했는데 절대 안떼진다. 대체 인류는 저걸 어떻게 따서 먹을 생각을 했을까? 처음 홍합을 따서 먹은 인간은 엄청나게 배가 고파서 돌이라도 씹어먹으려다가 우연찮게 홍합이 먹어진게 틀림없다.
용머리 해안에서 올라오는 길에 있던 말. 하도 가만히 있어서 말 모양 동상인줄 알았다. 제주도 동물들은 다들 굳은 듯이 가만히 있는게 특징인걸까? 아니면 귀찮게하는 관광객들한테 지쳐서 없는 척 하고싶었던걸까..
제주도에 온 기념으로 작은 소비를 하고싶었던 찰나 작은 가게에 이 팔찌가 눈에 띄었다. 보는 순간 이것은 내 것이라 살 수 밖에 없었다. 하나 더 사올 걸 서울 오는 날까지 후회를 했다..ㅠㅠ 역시 마음에 들면 다 사야돼!
한라산 천백고지를 이 다음에 갔는지 전에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차안에서 나랑 동생은 기절해있었기때문이다. 엄마아빠는 죽은 듯이 자는 우리를 태우고 드라이브하며 신나게 구경하셨으니 만족하셨겠지.. 하여튼 나의 몸뚱아리는 한라산을 방문하긴 했다. 의식은 없었지만.
아무튼 다음으로 간 곳은 이중섭 미술관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난건데 이중섭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미술관이 워낙 작기도 했고 사진을 찍기엔 교과서에서 너무 많이 봤던 그림들이었다.
미술관보다는 근처에 개인 공방같이 젊은 예술가들이 공예품이나 캐릭터 소품들을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었는데 구경할만했다.
미술관 관람 후 저녁으로 드디어 제주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 현지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맛집이라고 엄마가 찾았다는데 블로그에서 본 걸 보니 광고인 것 같기도하다. 그래도 서비스도 좋고 무엇보다 고기가 너무 너무 맛있었다. 맨날 맛있었다는 말밖에 안하는거 같은데 진짜 핵꿀맛이었다. 고기에서 그런 감칠맛이 날 수 있다니 흑흑
계란 후라이가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것도 감동인데 고기를 시키면 한치랑 껍데기를 서비스로 무한리필 해주신다. 껍데기가 넘 맛있어서 세번쯤 리필해 먹은 것 같다. sns이벤트로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면 할인도 해주심 ㅎ
냉면에 오겹살까지 추가해서 야무지게 냠냠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산책을 했다.
저녁 해안가도 분위기 있고 좋았다. 어두운 산책길에 우리 가족밖에 없어서 좀 무섭기도 했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걸어야했다. 좀 걷다가 추워져서 숙소로 들어갔다. 이 날도 모두 피곤했던지라 후딱 씻고 골아떨어졌다. 제주도에서의 둘째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