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my memory

#no. 9 치앙 콩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준 도넛

Eat, My Memory

by 오M삼min

'팍 씨'


라오스에서 첫 번째 '팍 씨'는 루앙프라방에서 100달러를 환전했을 때였다.

10만낍이 한 장, 5낍이 두 장, 2낍이 다섯 장,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1000낍과 500낍을 뭉텅이로 내민다. 총 80낍을 받아야 하는 내게 건네는 돈뭉치 치고는 많아 보이나, 눈짐작으로도 80만낍에는 꽤 모자랄, 단위가 작은 지폐들이 대부분이었다. 5만낍이나 2만낍 짜리로 바꿔 달라고 하자,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 자리에서 돈을 세려고 하자 낚아채서 본인이 센다. 돈을 세다가 접었다가 혼을 쏘옥 빼놓는 그 현란함에 정중하게 말했다.

당신이 가진 지폐가 이것뿐이라면 다른 데서 환전하겠다고, 남자는 빈정이 상한 듯 무어라 중얼거리며 내가 낸 100달러를 한참 찾는 척하다 손을 저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내가 준 그 100달러'를 가리키자 던지듯 내밀었다.

그의 뒤통수를 한 대 탁 치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에 가서 환전했다.


'팍 씨'


두 번째 '팍 씨'는 아마도 농 키아우 터미널의 '유 바이 티켓 나우 고 나우' 가 아니었을까 싶다.


'팍 씨'

세 번째 '팍 씨'는 바로 지금이다. 툭툭에 타자마자 얼마 안 가 라오스 국경이라며 날 내려주고 시커먼 매연을 풀풀 날리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저 툭툭, 이 정도 거리라면 살짜쿵 바가지 요금이다. 뭐, 그래 봤자 몇 원이니 깨끗하게 잊는 편이 좋다.

만낍 국수, 만 오천낍 뷔페를 생각하면 당연히 짜증이 휘몰아친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그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떠 올리면 몇 백 원어치, 몇 천 원어치의 돈이라도 역시 바가지는 짜증 난다.


자, 이제 태국으로 돌아가자, 국경만 건너면 나는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가격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밥을 사 먹고 싶다. 태국의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부터 사 먹어야겠다. 아니, 커피? 에너지 드링크?

에이 뭐, 다 사 먹지 뭘 고민해.


이른 시간이라 국경을 넘는데도 많은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 나는 다행히 이것을 아주 잘 한다. 앞 줄의 중국 아주머니와 표정으로 수다를 떨고, 태국 청년들에게 터미널의 위치를 물었다. 태국 국경에서 툭툭을 타면 터미널에 데려다준다고 한다. 그래, 기다리자.

사람들이 하나, 여권을 가지고 출국심사대를 통과한다. 잘생긴 라오스 청년이 7년 전에 찍은 내 여권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눈을 또렷하게 뜨고 웃었다.

'누나 맞아'

잘생긴 라오스 청년이 도장을 쾅쾅 찍으며 말했다.

-만 낍, 버스비는 밖에서 내세요. 다음에 라오스에 또 와요-

출국세를 지불하고 여권을 돌려받았다. 태국 국경까지 가는 셔틀버스표를 사고 라오스 낍을 태국 바트로 환전했다. 이제 막 라오스 낍에 좀 적응이 됐는데 다시 바트로 계산해야 한다.

라오스 낍은 나누기 7.5

태국 바트는 곱하기 33.5


셔틀버스가 태국 국경에 도착했다. 하루 만에 늘어난 도장이 괜히 뿌듯하다. 내 여권에는 동남아시아 도장만 반복되어 찍혀있다. 우리나라 출국 도장, 필리핀 입국 출국. 우리나라 출국 도장, 태국 입국 출국 도장, 또 필리핀, 또 태국, 어쩌다가 베트남, 또 필리핀, 또 태국 그리고 라오스. 왜인지 조금 볼품이 없는 여권인 것 같다. 전혀 다채롭지 못하다.

좀 더 멀리 배낭을 메고 이 나라 국경에서 저 나라로, 또다시 저 나라 국경에서 그 옆 나라로, 나는 이런 여행을 10년쯤 전에 했어야 했다. 여행에도 때가 있다. 나이에 맞는 장소가 있다.


친구, 우린 왜 10년 전에 떠나지 않은거지?

우린 여유가 없었잖아.

맞아, 그땐 저가 항공도 없었어.



'지금이라도 더 멀리 나가도 될까'


물론 다음 기회도 있다. 하지만 다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낯익은 사람이 국경의 연못에 물고기 밥을 주고 있다. 라오스로 건너오기 전 치앙 콩에서 하루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주인아저씨였다.

-저 기억하시겠어요?-

반갑게 인사하자 아저씨도 반갑게 물었다.

-돌아왔구나! 라오스는 어땠어?-

단 세 번의 '팍 씨'와 그밖에 좋았던 수많은 순간을 뭐라고 함축해야 할까,

-나이스?-

아저씨가 웃었다. 치앙 콩에 더 있을 거냐고 물으시기에 오늘 당장 치앙마이로 갈 거라고 말씀드렸다. 아저씨가 툭툭 기사들과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빈 툭툭이 오고, 60바트짜리 툭툭 티켓을 받았다.

-아이, 라이드 유 투 터미널-

툭툭을 타려는데 아저씨가 나를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다.

-아저씨, 전 툭툭 티켓 이미 샀는데요?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차표를 쭈욱 찢으라는 시늉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so cool! 멋지다. 어쩜 저렇게 멋있는 태국 아저씨가 이 작은 국경마을에 계시는 거지? 신나게 트럭에 가방을 싣고 짐칸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곧장 달렸다. 바람을 맞으며 자유로운 영혼, 이 시대 '마지막 히피'라도 되는 냥 이 기분을 만끽하려는 찰나, 아 이거 또 의심이 들지 뭔가?

'여자 혼자 뭘 믿고, 딱 하루 묵은 숙소 주인 차를 겁도 없이 탔지?'

'차비를 아주 비싸게 부르시면 어쩌지?'

'어머머 유턴은 왜 하시는 거지?'

'이 길이 터미널 가는 거 맞나?'

유턴을 하자마자 도착한 곳은 태국 국영 버스 '그린 버스 예약소' 앞이었다.


'야 이 똥개야'

'마지막 히피'가 될 뻔한 내 자아가 소리쳤다.


아저씨는 예약소 직원에게 치앙마이행 버스에 자리가 있는지 묻고 티켓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 이럴 때는 얼마라도 드려야 하가, 얼마가 적당한가, 오히려 내가 순수한 호의를 왜곡하고 있는건가'라는 복잡한 생각에 빠져있는 찰나 아저씨는 내게 도너츠 봉투를 내밀더니, '바이' 하고는 쏘 쿨 하게 사라지려는 게 아닌가!


'야 이 똥개야'

여전히 나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는 그녀가 나에게 소리쳤다. 다급히 아저씨를 쫓아나가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씨 유 넥스트 이어-

아저씨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겠다고 아저씨와 약속했다.


치앙마이행 버스가 예약소 앞에 도착했다. 스르르륵, 고급스런 버스의 초록색 문이 열렸다. 에어컨도 나오고 자리도 넓다. 차장 언니가 간식과 물도 준다. 하지만 난 이렇게 맛있는 도넛이 있으니, 일단 이것부터 좀 먹어야겠다. 하루 만에 먹는 마른 음식이다.

적당히 달고 부드러운 딸기 크림이 입속에서 빵과 함께 사르르 녹았다.

'혹시 여기 환각제나 약 같은 게 들어있는 건 아니겠..'


'야 이 똥개야!!!'

'야 이 똥개야!!!'

'야 이 똥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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