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우리 모두의 꿈은 아파트
-우리의 꿈은 아파트잖아요!-
한 겨울 욕실 타일이 터져 깨지는 바람에 손을 벤 일이 있었다. 내 손가락에 피가 철철 흐르는 것보다 더 걱정된 것은 ‘배상책임’이었다. 깊숙이 금이 간 여러 장의 타일 앞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을 보며 속이 좀 상했다. 내 아픈 손가락보다 남의 집 걱정을 하는 신세가 조금 처량맞았기 때문이다.
‘퍽’하는 굉음과 함께 갑자기 깨진 타일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잘 붙어있는 화장실 타일이 날씨와 온도에 따라 수축했다가 팽창한다니 참 별 걸 다 신경 써야 하는 남의 집 살이다. 애초부터 뚜렷한 사계절의 날씨와 큰 온도 차에 잘 버티는 자재로 안 터지게 시공했으면 될 일이 아닌가?
내 손으로 깨트린 것도 아니라 조금 억울한 차에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더니 하자보수 대상으로 타일 교체를 무상으로 해주겠다고 한다. 눈 뜨고 코 베이듯 큰돈이 나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럴 일은 없다니 그제서야 손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젠장, 나란 년은 태생이 거지인가? 피 철철 나는 손가락보다 돈이 더 걱정이라니’
그날은 아픈 손가락보다 남의 집을 걱정하는 내 처지가 속이 상해 동네 어귀의 해장국 집에서 소주를 한잔 했다.
“어머, 하자 보수를 해준대요? 1년 넘어서 안 해주는 줄 알았더니! 그럼 내가 보수하는 날 갈게요!”
계약서 작성일에 대리인으로 온 집주인의 이모가 타일 교체 일에 집으로 온다니 오히려 맘이 편했다. 물론 ‘곧 오를 귀한 재산’인 이 집에 타일을 제대로 잘 교체하는지 보러 오는 것 일 테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니 아무래도 사람이 있는 게 맘이 놓였다. 관리 사무소와 타일 시공자가 날짜를 잡고 수일 이내에 교체 공사가 이루어졌다.
화장실에서는 타일 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고 굉음을 뚫고 이모님이 ‘집’에 대한 투자를 권하셨다.
‘남편들’이 집에서 살림만 하면 뭐라고 한단다. 누구네 부인은 어디서 뭘 해서 돈도 잘 불리던데 너는 그런 것도 못하냐는 핀잔을 준단다. 그래서 이모는 주식에 손을 댔는데 다 날렸단다. 투자를 해서 돈이 가진 가치를 늘리려면 부동산 밖에 없단다. 돈은 통장에 넣어두면 물가상승률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지만 오르는 건 부동산이라며 꼭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서울 시내에 현금 1억이 있으면 역세권 오피스텔을 사야 돼, 2억 만들 수 있으면 구옥이라도 작은 평수 아파트를 사야 하고!”
이모님이 이것저것 해보니 남는 것은 부동산이란다. 그렇게 이모님은 동생들에게도 투자를 권했다.
무사히 교체가 끝나고 이모님이 꼼꼼하게 다시 한번 점검하신 후 돌아가셨다.
“살다가 무슨 일 생기면 또 연락하구, 괜찮은 매물 나오면 연락할 테니까 궁금한 거 있어도 언제든 연락해요! 이렇게 오피스텔부터 투자를 하면서 자산을 늘려야 돼. 우리 모두의 꿈은 아파트잖아요?”
언제부터 사람들의 꿈이 아파트가 된 것일까? 나는 단 한 번도 아파트가 꿈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감히 가질 수 없는 것이라 꿈조차 꿔보지 못한 것일까? 다행히 꿰맬 필요는 없어 보이는 꽤 아문 손가락을 보며 멀거니 거실에 앉아 만 원이 안 넘는 와인 한 병을 홀짝였다.
신도시 아파트와 재개발 청약 열풍에 많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아파트는 의심의 여지없이 오를 것이고 그럼에도 이것을 안 사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받고 있다. 반드시 오르는데 안 오른다고 말하면 변절자 취급을 받고 이 변절자는 어쩌면 돌팔매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아파트가 꿈이어야 하는 걸까?’
9평 반 지층 주택의 살림살이를 내다 버려도 일주일 만에 곰팡이는 다시 올라왔다. 심지어 지난주 보다 더 진한 푸른 얼룩이 벽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벽지를 만져보니 역시 축축하다. 젖은 천으로 곰팡이를 닦아내고 곰팡이 제거제를 꼼꼼히 도포했다. 제습기를 켜놓고 겨우 뽀송한 집안을 만들어 놨는데 이젠 락스 냄새에 다시 환기를 해야 한다. 긴 장마에 지층 바닥은 과하게 습기를 내뿜었고 미련하게 나는 창을 자주 열어두었다.
플라시보 효과일까? 왜인지 기침도 나는 것 같다. 곰팡이, 락스, 몸에 안 좋은 것은 다 들이마시고 있으니 머리가 아픈 게 당연하다. 한참 남은 계약기간을 생각하며 여전히 내 기관지보다 남의 집을 걱정하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의 꿈은 아파트가 된 걸까? 낡은 주택의 생활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이제는 좀 지겨워지려고 한다. 어느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곳 없고 어느 하나 간편한 게 없다.
긴 장마와 여름에 쓸데없이 마음을 주고 말았다. 창을 열어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 풍경에 홀려 열어놓은 창으로 습기가 침투했고 나는 그것을 통제하지 않았다. 내 탓이다. 남들이 아파트를 외칠 때 시류에 편승하여 어떻게든 아파트를 장만했어야 했다. 보편적인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걸 거스른 나는 빈곤의 껍데기를 쓰고 내 선택이 여전히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매달리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내가 틀렸다는 말을 하는 건 꽤나 버거운 일이다.
긴 장마로 마당에 푸르스름하게 이끼가 자랐다. 남의 집 마당에서 여전히 낙엽이 날아오기도 하고, 드물게는 한밤중에 지붕 위로 무언가 떨어지기도 한다.
볕이 잘 드는 따스한 남향집이라고 모든 면에서 탁월한 것도 아니었다. 남향이지만 대들보 밑 가벽 때문에 방안 구석까지는 해가 들지 않고, 서향 창은 옆집 현관을 마주 보고 있어 열어두기 불편하다.
부엌은 한낮에도 어둡고 습하다. 채광창은 야경을 보는 용도에만 충실할 뿐이지, 내리쬐는 볕을 받아오거나 새 공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한다.
해와 바람이 쉬이 들지 않고 마당만 달구는, 어쩌면 북향의 맞바람이 드는 서늘함을 지닌 집이 어울렸을 터에 억지로 끼워 맞춘 남향집은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열기와 습도는 잘 빠져나가지 않고 새 공기의 순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제의 열기와 습도, 작년의 향기 그런 철 지난 것들이 미련처럼 남아 나를 품을 새로운 나날에 순응하려 들지 않는다.
이 집은 아직도 이렇게 나를 뱉어내고 있다. 계절에도 화가 나고 집에도 화가 난다. 화를 낸다 한들, 계절도 집도 귀 기울여 듣지 않으니 바보 같은 짓이다. 환기를 위해 다시 온 집안의 창을 죄다 열어도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아 화가 식을 틈은 없다.
귀한 시간을 단순히 싫어하는 계절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손 사례 치며 흘려보낸다. 견디기 싫을 만큼 버거운 시간이 흐르길 잠자코 기다리는 것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집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까?
어떤 곳은 맞바람이 치는 서늘한 북향이 어울리고 누군가에겐 노을 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괄목할 수 있는 서향집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제는 좀 배가 불렀다고 나 하나 뉘일 수 있는 공간보다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사람을 잠 못 들게 하는 고문 같은 층간 소음이 없고, 바깥공기의 순환이 잘 되는 적당히 건조한 집, 모든 창 마다 해가 잘 들어 한낮에 어둠이 없는 집, 공간이 저마다의 쓸모를 가지고 충실히 나의 의도를 이행하는 그런 집, 나는 그런 곳을 원하고 있다.
젖은 행주와 마른행주를 번갈아 락스 냄새를 내뿜는 곰팡이 제거제를 닦아냈다. 혹시나 여전히 생기를 머금었을지 모르는 포자를 닦아낸 것들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마당 구석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으로 옮겨 두었다. 한 여름 매미가 우렁차게 울고 나면 귀뚜라미가 벌써 제 울음소리를 내는 이 집 마당에 서서, 잠시 다른 집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상상해 본다.
언젠가는 삼면에 뚫어놓은 창으로 맞바람이 치는 서늘한 북향의 집에서, 곳곳에 뚫어놓은 채광창으로 내리쬐는 볕에 곰팡이 걱정 따위는 하지 않으며 여름을 날 수 있길, 그 집에서 짐이 느는 것에 개의치 않으며 필요한 것을 고심하여 골라 나다운 것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길,
'반드시 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