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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Jul 27. 2024

성북동 뉴튼 혹은 미생물의 어머니

후들후들해진 라탄매트, 그리고

 밤 낮이 바뀐 이웃집 고양이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며 할머니를 귀찮게 굴어 할머니가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이웃과 마주치면 종종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할머니네 집 대문은 '이렇게' 하면 열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얼른 할머니네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물론 '이렇게'는 우리만의 비밀이라 상세히 설명할 수 없다.

 혹시나 누가 쫓아오면 어디 사는지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 빙빙 둘러 떼놓고 와야 한다고 일러 주셨다. 할머니는 내가 계단 꼭대기까지 닌자의 발걸음으로 사뿐히 올라, 쥐도 새도 모르게 환상적인 뒷발차기로 치한을 계단 밑으로 굴려 어쩌면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을 만들지도 모르는 아이라는 걸 모르시는 것 같다.


 새하얀 털옷을 입고 얼굴에만 누런 가면을 쓴 내 이웃 고양이는 퇴근길 골목에서 나를 마주치면 부리나케 도망가기 일쑤지만 할머니와 내가 이야길 나누면 다정한 목소리로 와웅와웅 말을 걸며 낮은 울타리 위에 올라앉아 나를 관찰했다.

 나는 녀석이 나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녀석에게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쥐도 잘 잡고 새도 잘 잡고 매미도 잘 잡고."

 "쥐요?"

 "얼마나 잘 잡는지 몰라, 잡아서 문 앞에 놔두지. 아가씨네 집 뒤에 쥐가 살어."


 -아가씨네 집 뒤에 쥐가 살어-

 -아가씨네 집 뒤에 쥐가 살어-

 "아가씨네 집 뒤에 쥐가 살어. 일 년 내내 있지."

 

 금요일의 출근길이 아득하여 환승을 어떻게 했는지, 어째 놓치지 않고 회사에 내렸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5,6월 내내 성북동 파브르로서 각종 방충작업을 실시하며 집안에 난 창문이란 창문에는 유제를 들이붓다시피 뿌리고 어째 몸이 조금이라도 간지럽거나 바스락 소리만 들었다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온 집안에 불을 켜 녀석들의 서식지와 습성에 대해 탐구하던 내가 사실은 성북동 뉴튼이었다니,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가 아니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한대 없는, 아마도 가진 것보다 안 가진 것이 더 많을 성북동 뉴튼이 에어컨의 축복만큼은 은혜로운  여의도에서 동료에게 순대전골에 소주 한 병을 얻어먹고 살림살이가 단출한 9평 반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로등 불빛이 흐릿한 길을 걸을 때는 일부러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걸어 발바닥이 아팠다.


 "에어컨 샀어?"

 "아니, 나 선풍기도 없는데?"

 "뭐? 선풍기가 없다고?  혼자서 3대를 쓰는데?"


 9만 원씨는 여러 집을 떠도는 탓에 무거운 가전이나 가구는 집에 잘 들이지 않는데 그런 이유를 듣고도 사람들이 잘 수긍하지 못하는 가전이 딱 두 가지 있다.

 선풍기와 헤어드라이어.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구매하려는 타이밍을 놓치고 없이 사는 것에  적응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단출한 살림에도 '갬성'은 놓치지 않으려 몇 년째 애용하던 라탄 돗자리는 긴긴 장마로 인하여 빳빳함을 잃고 이불마냥 부들부들하다. 제습기를 가동하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며칠 전부터 자려고 누우면 라탄 돗자리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는데 역시나 습도가 문제라고 생각해 제습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피톤치드를 곳곳에 뿌려 살균과 탈취까지 챙겼으니 조만간 장마가 끝나면 이 퀴퀴한 '시골집에서 풍기는' 그러니까 오래된 무언가의 향기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습기의 은총에 머리를 말리고 이부자리에 누웠다.

 기특한 제습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하얀 벽 아래 푸른 얼룩이 안경을 착용하지 않은 시력 0.05의 생눈을 사로잡았고, 바스락 소리를 들은 성북동 파브르처럼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식탁에 던져둔 안경을 찾아 바디워시 향이 났던 몸뚱이를 꼬깃꼬깃 구겨 접어 벽지를 관찰했다.

 명백한 곰팡이었다.

물티슈로 벽지를 문지르자 곰팡이는 다행히도 쉬이 지워졌다. 두 곳의 얼룩을 지우고 이미 보송보송하게 갓 씻은 몸이 아무 쓸모가 없어진 것이 새벽 1시, 창고방과 문간방을 기어 다니며 온 집안에 허연 형광등을 켜고 바닥과 가까운 벽지를 구석구석 관찰했다.

 한 달이 넘는 장마의 탓인지 내가 1층 지층 집의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인지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꼼꼼히 벽지 위에 올라온 곰팡이 얼룩들을 닦았다. 안경을 착용한 채, 푸른 얼룩의 진원지로 돌아가 간지러운 발바닥을 손톱으로 벅벅 긁으며 다시 한번 바닥과 벽을 꼼꼼하게 닦았다.

 그리고 그놈의 '갬성' 인테리어의 완성- 라탄 돗자리를 보는 순간, 온 집안을 기어 다니느라 땀으로 찬 두피에서 한 줄기의 땀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저것을 걷어서 당장 버려야 한다.'

 어떻게든 수습해서 다시 쓸 것이 아니었다.

끄트머리부터 걷어 버리기 좋게 돌돌 말기 시작했다. 80번의 구타로 아직도 찌뿌둥한 허리에 무리가 가겠지만 라텍스 매트리스를 최선을 다해 들어 올렸다.

 "여보, 이것 좀 들어봐요."

나는 왜 남편이 없는가? 무거운 라텍스 슈퍼싱글 매트리스를 들어 반으로 접어 라탄 돗자리를 끄집어냈다.


 뉴튼은 아연실색했다.

시커먼 곰팡이가 장판부터 라탄 돗자리를 뚫고 매트리스 커버까지 마치 제 집인 양 증식하고 있었다. 더위를 타지 않는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녹아내려 지구상에서 그 어떤 발자취도 남기지 않은 채 증발해 버렸다고 주장해도 누군가는 믿을법한 끔찍한 현장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마당으로 끄집어내 사람만 한 크기의 모닥불을 피우고 모조리 화형 시키고 싶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남편이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며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윽박질러 조금은 슬퍼졌다.

 "당신 벌이가 쥐꼬리니까 이런 집에 살아서 그런 걸 왜 내 탓이야!"

상상 속의 남편과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어느덧 새벽  두 시, 돌돌 말아 테이프로 봉인한 돗자리와 매트리스 커버를 현관문 앞에 뉘어놓고 곰팡이 제거용 락스를 풀어 다회용 키친타월로 바닥을 닦았다. 벅벅 닦았다. 이삿날 그랬듯이 삼세번을 닦았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지구 반대편 살림의 여왕에게 자문을 구했다. 새벽 3시에도 나는 사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바닥을 어느 정도 수습했을 때는 새벽 4시, 비지땀으로 아사면 잠옷이 다 젖어 다시 샤워를 해야 했다. 욕실 바닥과 벽에 이미 증식에 성공한 검은곰팡이도 눈에 띄어, 씻다 말고 락스통을 들고 여기저기 줄눈을  따라 들이부었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습도만 남은 한 여름의 새벽, 락스 냄새를 폴폴 풍기며 화장실에서 살아 나왔다.


 -이사 나갈까?- (서울)

-일단 제습기 돌리고 보일러도 돌려. 바닥을 바짝 말려야 해- (바르셀로나)


 주택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습도는 오피스텔 12층과 차원이 다르고 한 여름에도 보일러를 틀어 온 집안의 방바닥을 구워야 한다. 봄에는 각종 벌레와 싸워야 하고 여름에는 미생물과 싸워야 한다.

 벌거벗긴 매트리스를 한쪽 벽에 세워두고 널찍이 떨어져 창문 밑에 누웠다.

 기껏 제습을 마쳤는데 또 환기를 위해 창을 여니 다시 습도를 머금은 바람이 방을 가득 메웠다.

 미생물의 어머니는 오늘도 그렇게 지구를 제습한다.

 '이사 나갈까?'

 최적의 집은 어떤 곳일까? 고급 자재로 마무리한 수십억이 호가하는 아파트에서는 이럴 필요가 없는 걸까? 어디든 얼마를 호가하는 집이든, 한 달이 넘도록 그칠 줄 모르는 긴긴 장마에 장사는 없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무지한 주택 초보의 작은 실수일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날이 밝자마자 폐기물 반출 번호를 붙여 '나의 존재를 증발시킨' 돗자리와 매트리스 커버를 대문 옆 배출 구역에 내다 두었다.

 그리고 한 여름에 보일러를 틀어 집안을 후끈하게 굽고 있다. 물론 제습기는 타자치는 손가락보다 바쁘게 저 방을 순회하며 할 일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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