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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 태풍

by 무릎

제초 태풍 / 무릎


먼 남쪽 바다에서 태풍이 온다고 하면 우리는 집 안에서 종일 있으면 됐었지.

문을 닫고, 불은 최대한으로 끄고.

어쩐지 좀 무서워서 창문에 테이프를 엑스자 모양으로 붙여 놓았지.

천둥이나 번개가 치면 있던 자세를 자꾸 바꿔가며 가만을 달랬지.

여름 냄새가 자꾸 막다른 곳에 닿을 때

제초가 잦아진다.

날 세운 태풍이 온 초록을 누빈다.

풀은 집인 체를 하고, 최대한 눕고, 엎드려 절을 수십 번도 더 해보지만

제초의 경로는 북동쪽 대신

풀숨 붙은쪽으로 향한다.

풀의 시체가 태풍의 형상을 띄며 나가떨어지고

아픈 냄새가 온 동네를 덮친다.


우리는 다시 문 닫으면 될 일인데

익숙이 자주 넘어지고 괜히 멍해지는 것.

창문에 아직 남아있는 작년의 테이프를 괜히 떼어내며

경보나 특보보다 무서운 말이 있을지 떠올려 본다.

여름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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