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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장정리 Feb 22. 2023

맥주의 맛


유튜브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의 마부장님은 무슨 안주를 먹든 첫잔을 생맥주로 마신다. 그 아저씨는 생맥주를 아주 호탕하게 마시기 때문에 볼 때마다 맥주가 땡기게 만든다. 그걸 본 이후로 무슨 술안주를 먹든 첫 잔은 생맥주로 시킨다. 갓 나와서 얼음처럼 차가운 생맥주를 절반 정도 들이키고 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원해지는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탄산은 아무리 복잡한 일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바꾸어 준다.


생맥주는 시원해서 좋지만 캔맥주는 다양한 종류가 장점이다. 편의점에서 외국 맥주든 국산 맥주든 마음에 드는 맥주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대개 4캔에 만원이기 때문에 종류별로 4캔을 사서 집 냉장고에 넣어 두면 연료통이 가득 찬 쏘카를 본 것처럼 흡족하다. 고된 퇴근 이후 기름진 안주에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 이것이 삶인가 싶은 탄성이 뱃속에서부터 터져나온다. 맥주는 이렇게 맛이 좋은데도 다른 술보다 가볍고, 술도 덜 취한다. 다만 많이 먹으면 배가 터질 것 같다는 점이 흠이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다른 고칼로리 음식이나 알코올을 더 섭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혀가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 무슨 맥주든 다 잘 먹지만, 굳이 고르자면 아이피에이 맥주를 좋아한다. 홉의 쓴맛이 스트레스를 몰아내 준다. 마라탕처럼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유사하다. 최근에는 추천을 받아서 곰표맥주를 먹어 봤는데 상큼한 것이 제법 맛이 좋았다. 다만 씨유에서만 독점적으로 판매한다는 점은 유감이다.


나는 맥주를 이렇게 좋아하지만 요즘 다이어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맥주를 마실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주구장창 술을 마셔도 정상 체중이었지만 점차 신진대사 능력이 떨어지면서 돼지가 될 낌새가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요즘에는 술을 웬만하면 자제하고 있다. 다만 친구들이 놀러왔다가 두고 간 맥주 한 캔이 냉장고에 있다. 아까부터 그 맥주를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맥주에 대한 욕망을 참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써 보니 오히려 더 맥주가 먹고 싶어진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맥주의 칼로리가 의외로 낮지 않을까 하여 맥주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200칼로리가 넘었다. 화가 났다. 문득 든 생각인데, 맥주가 내 냉장고에 있으면 언젠가의 내가 먹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의 내가 희생해서 먹은 후에 운동으로 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내일의 나보다는 오늘의 내가 더 젊고, 그러므로 신진대사도 더 좋을 것이므로. 제법 합당해 보이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반론이 떠오르기 전에 재빨리 뚜껑을 땄다. 한모금 먹어 보니 천국이었다. 참았다 마시니 더욱 맛이 좋다. 어쩌면 참는다는 것은 저질러버렸을 때 기분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이렇게 나는 점차 인간에서 돼지로 변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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