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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Nov 19. 2023

독일인 직장 동료가 내게 사과했다

외국인을 보면 자연스레 영어가 나와


독일 회사에 다니고 있다. 우리 회사는 홈오피스가 베이스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독일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홈오피스가 베이스이고, 일주일 혹은 한 달에 몇 번만 오피스로 출근하면 되는 룰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 생긴 새로운 문화다.


좋은 점이 수십 개가 넘지만 단점도 있다. 회사 내 직장 동료들과 안면을 트기 어렵다. 이를 테면 우리 팀은 목요일마다 회사로 온다. 수요일에는 주로 다른 팀이 와있다. 아예 홈오피스를 100%로 하는 동료들도 몇 있다. 화상회의를 통해 얼굴을 익히긴 하지만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나 같은 경우는 주 2, 3회 정도 회사에 간다. 집에서보다 회사에서 일할 때 능률이 더 높다 (대체로). 덕분에 꽤 많은 동료와 친해지기도 한다.


어느 목요일, 존재만 알고 있던 한 동료 C가 회사에 왔다. 그동안 재택만 하다가 오랜만에 오피스에 나왔단다. 그와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우리 회사의 첫 번째 소통 언어는 독일어다. IT 팀에 간혹 독일어를 못하는 동료가 있어 그 방에 갈 때만 영어를 사용한다. 내가 알기로 C도 나와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 왜 영어로 말을 걸지? 하고 잠깐 의아했다. 우리는 한 번도 면대면으로 만난 적이 없기에 나를 몰랐을 거다. 뭐, 반대로 C가 독일어를 못할 수도 있지 하며 우리는 영어로 소통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른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각자 챙겨 온 점심을 꺼내 먹었다. 식탁 위 주제는 다양하다. 오전 내내 우리를 괴롭힌 클라이언트 험담일 수도 있고, 데이팅 썰일 수도 있고, 독일 철도의 파업에 대한 불평불만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신나게 얘기를 하다 뒤늦게 C가 합류했다. 그는 앉자마자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보며 맛있겠다는 표정을 지은 뒤 Do you cook everyday?라고 질문했다. 매일은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많이 해둔다, 주로 어떤 요리를 한다.. 등등 요리에 대한 주제로 C와 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몇 초 전까지 독일어로 얘기하던 내가 뜬금없이 영어를 하자, 다른 동료가 C에게 말했다.


Hä, sie spricht Deutsch 엥, 얘 독일어 할 줄 알아


C는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더니 연신 미안하다고 내게 말을 했다. 자기도 모르게 ”외국인“ 외모를 가진 사람을 보면 영어가 나온다고, 그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여전히 이러고 있다고 내게 고백(?)했다. 나는 이해한다고, 나 역시 네가 독일어를 못해서 내게 영어로 말하는 줄 알았으니 똑같은 거라고 했다. C는 자기가 무례했고, 외모가 이국적이라고 바로 영어를 쓰는 행위 역시 무례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가 무례하다고 느끼진 않았으나, 그 행동은 평소 무례하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으로서 공감했다. 나를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내게 영어로 주문을 받고, 영어로 대답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봤다. 내가 독일어로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누가 봐도 독일인인데 자꾸 영어로 받아쳐서 (베를린도 아니고….) 너 혹시 독일어 못하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굳이 영어를 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다. 영어를 뽐내고 싶어 하는 젊은 독일인들도 많아서 외국인을 보면 이때다 싶어 영어를 쓰기도 하고, 얘는 독일어를 못할 테니 내가 영어를 ’ 써주자 ‘고 배려하는 사람도 있고. 독일어를 못할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무례함에서 나온 배려는 그리 달갑지 않다.


이 테마를 꽤 오래전에 생각한 적이 있는데 최근 독일 동료가 내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아, 여기에 그런 무례함이 존재했지. 나는 적어도 의식이 있는 동료를 둬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데 신경 써야 할 수많은 점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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