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한별, 샛별, 하늘, 지혜.. 예쁘고 반짝이는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 밋밋하기 그지없는 재은인가' 생각했다. 발음이 특별하지도 않고 한자 뜻도 그저 그랬다. 在(있을 재)恩(은혜 은) 쉬워서 쓰기 편한 거 빼고는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았다. 엄마한테 나는 왜 재은이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엄마가 뭔가를 떠올리며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가졌을 때 드라마를 보는데 여주인공 이름이 재은인 거야.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이라 멋있는 거 있지. 너도 그렇게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서 재은이라 지었어."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지었다고? 이름을 그렇게 지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마의 단순함에 놀랐다. 마주 보고 웃다 보니 그후로 '재은'은 그냥 이름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이름을 만났다. 기숙사형 대안학교라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취지로 전교생 70여 명이 둥글게 앉았다. 모두가 한 번씩 일어나 이름을 비롯해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한 학년 선배, 키가 크고 예쁜 언니가 재은이라 인사했다. 심지어 성도 같았다. '얼굴도 예쁜데 이름이 같다니, 비교당하면 어쩌지. 똑같이 불리면 헷갈리겠지' 다른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소개하는 동안 머릿속은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드디어 내 차례, 끼익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저는 1학년 재은이라고 합니다. 저와 이름이 같은 선배가 있어서 저는 별명을 지었어요. 리틀 재은입니다. 리틀이라 불러주세요." 사람들이 한 번씩 리틀, 리틀 말했다. 웅성거림을 들으며 첫인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고등학교 3년을 리틀로 살았다. 사람들이 "리틀-"이라 부르는 어감이 나쁘지 않았다. 누가 불러도 단박에 알아차렸다. 끝이 ㄹ로 끝나는 이름 특유의 늘어짐에도 익숙해졌다. 동시에 묘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이 아랫사람 대하듯 "야, 리틀"이라 부를 때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시 돋친 말들이 이어질까 봐 겁이 났다. 사실 학교가 끝나도 기숙사에서 계속 부딪히는 얼굴들이 미웠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내 물건을 함부로 쓰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할 때, 나는 예민해졌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에선 껄끄러웠다. 하루는 그 친구가 "야, 리틀. 잠깐 보자"면서 내가 선생님이나 선배들에게 잘 하면서 왜 자기한테는 차갑냐고, 가식적이라 했다. 그날 이후 '리틀'만 들어도 위축됐다. '작은, 조금' 뜻을 가진 little이란 별명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작게 구겨진 느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을 사귀면서 다시 '재은'으로 돌아왔다. 새로워지고 싶어 별칭을 지었다. 내가 가진 고유의 기운을 억누르지 말고 발산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에너지를 잔뜩 내뿜자'할 때의 '내뿜'이라 불러달라고 했지만 친구들 입에 안 붙는 모양이었다. 나조차도 모든 아이디를 내뿜으로 바꿨지만 어색했다. 점점 무엇이라 불리든 괜찮아졌다. 친구들과 깔깔 웃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대신 내 이름을 말하는 어감에 귀 기울였다. '재-'를 길게 발음하며 '은'으로 맺음 하는 어감이 좋았다. 다정하게 "재은아" 불리면 나는 물렁물렁해졌다. 친구들의 따스한 마음을 느꼈다. 그것으로 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름에 담긴 뜻이 새롭게 다가온다. 在(있을 재)恩(은혜 은), 은혜를 아는 사람. 누구든 무수한 은혜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엄마가 말한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은 이런 사람 아닐까.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힘은 하나하나, 순간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것. '재은'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