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면서 살고 있다

by 재은

중학교 1학년, 첫 국어시간이었다. 첫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교실엔 긴장감이 흘렀다. 30대 중반의 긴 머리 여자선생님이 들어왔다.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를 스윽 둘러보더니 칠판에 무언가를 또박또박 썼다. “나는 누구인가” 선생님은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다들 웅성거리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름을 얘기하고, 누구누구의 딸이라고 하고, 어디 사는 누구라고 답했다. “그게 정말 너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 이름도, 부모님의 이름도, 내가 사는 곳도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각자는 어느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고, 삶이라는 건 고유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10분 남짓한 시간은 강렬했다. 국어교과서를 펼치며 마무리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떠드는 틈에 질문은 흩어졌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다시 떠올려도 소름이 돋았다. 선생님의 눈빛과 다부진 말투, 침묵이 주는 여운, ‘나’에 대한 질문은 몸에 새겨졌다.


몸에 새겨진 질문은 친구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떠올랐다. 내가 친구들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생각은 나란 어떤 사람인지 파고들게 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내가 되려면 나를 알아야 했다. 나는 남들보다 괜찮기도 했고 별로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나를 정의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숙사 생활에 치이고 같은 방 친구에게 가식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잔뜩 위축됐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에 짓눌렸다. 무겁고 버거웠다. 내가 싫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엄마의 추천으로 불교단체에서 진행하는 인도 워크캠프에 참여했다. 인도 콜카타는 충격적이었다. 지저분했다. 길거리에 소가 다니고 어딜 가도 돈 달라는 사람들이 따라 다녔다. 우리는 불가촉천민이 사는 지역에서 유치원을 수리하고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했다. 흙으로 지어진 집과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눈이 음푹 패인 사람들이 우리를 멀뚱히 쳐다봤다. 내가 살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동안 사고하던 틀에서 조금 벗어난 느낌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그리고 나에 대해 새롭게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불교단체 활동을 이어갔다. 국제구호활동을 하거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 등이었다. 밍밍한 대학생활보다 신났다. 전공인 사회학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고 학교를 잘 안 다녀서 친구가 없었다. 한 학기를 마치고 휴학했다. 마침 단기출가 프로그램이 있었다. 20살 여름의 끝자락, 절에 들어갔다. 불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경상북도 문경 산골의 수련원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20명,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 20명으로 40명 정도가 공동생활을 했다. 단순한 일상이었다. 아침 4시 새벽기도와 발우공양을 시작으로 저녁예불 전까지 필요한 일을 했다. 주로 몸을 쓰는 일이었다. 여름에는 공동텃밭의 잡초를 뽑고 장마를 대비했다. 저녁예불 후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 불교철학 공부를 했다.


나에게 불교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철학이었다. 내 마음을 살피면서 괴롭고 힘들 때 알아차렸다. 하루에도 수 만 가지 흘러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다.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비 온 뒤 무성해지는 식물, 아침예불 끝나고 내려오면서 보는 새벽안개,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하던 그 순간이 모두 나였다. 100일간의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1년 넘게 더 지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라고 할 게 없다는 깨달음이 나를 채웠다.


10대를 관통한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은 20살, 불교공부를 통해 해소된 셈이었다. 1년 반을 살고 보니 세상 속에서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를 구성하는 사회가 궁금했다. 대학에 복학해 사회과학 공부가 흥미로웠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책을 보고 토론했다. 우리가 속해있는 대학사회부터 들썩임을 만들어보자며 영화제나 장터를 기획했다. 질문은 질문을 낳았다.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이 더해졌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두 번째 문제였다. 내가 건강하고 자유로워야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청년활동을 지원하거나 전기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들이 많다. 저녁 없는 일상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다보니 일에 질리기도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조직을 만들 것인가'는 이어지는 질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질문이 구체적으로 변한다.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질문하면서 살고 있다.

thumb (2).jpeg 20살, 인도를 다녀오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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