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o life Feb 12. 2023

내 것을 빼앗긴 게 아니다. 그런데 왜?...

일상에서...

 일요일 아침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독서 모임에서 읽어야 하는 책이 도서관에 돌아왔다. 도서관에 도착. 문을 연지 1시간정도 지났음에도 앉을 자리는 넉넉했다. 적당히 자리 잡고 읽던 책을 읽는다. 이미 빌려야 할 책은 가방에 챙겨 두었다. 한참을 재미나게 읽었다.


 복도에 자리한 좌석이라 지나가는 다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다리로 총총하고 뛰듯이 걷는 아이, 느릿한 걸음에 여유가 묻어나는 어르신, 힘 있게 쭉쭉 다리를 뻗는 젊은이. 도서관은 그렇게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 다시 책으로. 집중해서 읽고 있는데 앞에 다리가 멈춰 섰다. 그리고 옆의 빈자리에 쓱 핸드폰을 두고선 내 앞에서 머뭇거린다. 뭘까….


 책 읽기를 멈췄다. 고갤 들었다. 남자가 앞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왜 이 앞에서 안절부절일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책을 읽었다. 잠시 다른 곳으로 가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앞으로 왔다.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자리 좀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여러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는데도 나에게 말을 건넨다. 고갤 들어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자리는 분명히 있다. 저기에도 아까 슬적 자신의 핸드폰을 올려둔 바로 옆자리도. 그런데 나에게 말을 했다.


 “저기 제가 자리를 맡아둔 곳이 있습니다. 저 자리와 바꿔주시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정중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캐주얼한 체육복의 바지에 보라색 조끼 패딩을 입고 골전도 이어폰을 낀 채 앞에 서서는 나에게 부탁의 형식이 아닌 요청의 형식으로 말을 건네는 남자. 기분이 약간 상했다. 그리고 남자가 가리키는 손끝을 보았다. 제일 끝자리쯤 되는데 지금과 같은 여유는 없는 자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자는 용기라도 낸 듯 다시 한 번 요청했다.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말했던가. 거듭된 부탁에 나는 ‘그러시죠.’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다지 기분 좋은 자리 옮김은 아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자리가 아쉬웠을지도. 새로 옮긴 자리에서 불편함을 찾으려고 했다. 툴툴거릴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진 것 같고, 밀려난 것 같고, 순순히 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 남자는 부탁을 했고 (그게 부탁의 어조는 아니었더라도 미안해하는 행동은 보였으니까) 나는 그것에 동의했음에도 말이다.


 자리 옮기는 것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내가 이미 자리를 잡았고, 이 자리는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자리도 이전의 자리와 별다른 것도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나를 못난 사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걸까? 아마 내 것을 내어줬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자리는 옮겼는데 말이다. 아무 소용이 없는 못난 궁상. 딱 그랬다. 나의 이동은 동의하에 이루어졌으니까. 그런데도 찜찜함이 남는 건, 내가 가진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아니면 내가 앉아 있었으니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일상에 있는 다른 부분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좋은 거니까. 그게 어쩌면 좋지 않은 것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고, 좋은 것이다. 단지 그 이유로 나 스스로 기분 상한다.


 그 남자는 내가 앉았던 자리여야 할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고, 내가 한 일은 남자에게 양보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옮긴 자리는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를 좀 더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뭔가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다 심지어 본래의 내 것도 아닌 데 마음 상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그러니 오히려 칭찬해 보자. 옮긴 덕분에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잘한 일이라고 말해 보자.


 잘했어.

작가의 이전글 떠오른 음식이 밝혀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