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일요일 아침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독서 모임에서 읽어야 하는 책이 도서관에 돌아왔다. 도서관에 도착. 문을 연지 1시간정도 지났음에도 앉을 자리는 넉넉했다. 적당히 자리 잡고 읽던 책을 읽는다. 이미 빌려야 할 책은 가방에 챙겨 두었다. 한참을 재미나게 읽었다.
복도에 자리한 좌석이라 지나가는 다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다리로 총총하고 뛰듯이 걷는 아이, 느릿한 걸음에 여유가 묻어나는 어르신, 힘 있게 쭉쭉 다리를 뻗는 젊은이. 도서관은 그렇게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 다시 책으로. 집중해서 읽고 있는데 앞에 다리가 멈춰 섰다. 그리고 옆의 빈자리에 쓱 핸드폰을 두고선 내 앞에서 머뭇거린다. 뭘까….
책 읽기를 멈췄다. 고갤 들었다. 남자가 앞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왜 이 앞에서 안절부절일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책을 읽었다. 잠시 다른 곳으로 가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앞으로 왔다.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자리 좀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여러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는데도 나에게 말을 건넨다. 고갤 들어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자리는 분명히 있다. 저기에도 아까 슬적 자신의 핸드폰을 올려둔 바로 옆자리도. 그런데 나에게 말을 했다.
“저기 제가 자리를 맡아둔 곳이 있습니다. 저 자리와 바꿔주시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정중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캐주얼한 체육복의 바지에 보라색 조끼 패딩을 입고 골전도 이어폰을 낀 채 앞에 서서는 나에게 부탁의 형식이 아닌 요청의 형식으로 말을 건네는 남자. 기분이 약간 상했다. 그리고 남자가 가리키는 손끝을 보았다. 제일 끝자리쯤 되는데 지금과 같은 여유는 없는 자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자는 용기라도 낸 듯 다시 한 번 요청했다.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말했던가. 거듭된 부탁에 나는 ‘그러시죠.’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다지 기분 좋은 자리 옮김은 아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자리가 아쉬웠을지도. 새로 옮긴 자리에서 불편함을 찾으려고 했다. 툴툴거릴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진 것 같고, 밀려난 것 같고, 순순히 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 남자는 부탁을 했고 (그게 부탁의 어조는 아니었더라도 미안해하는 행동은 보였으니까) 나는 그것에 동의했음에도 말이다.
자리 옮기는 것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내가 이미 자리를 잡았고, 이 자리는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자리도 이전의 자리와 별다른 것도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나를 못난 사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걸까? 아마 내 것을 내어줬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자리는 옮겼는데 말이다. 아무 소용이 없는 못난 궁상. 딱 그랬다. 나의 이동은 동의하에 이루어졌으니까. 그런데도 찜찜함이 남는 건, 내가 가진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아니면 내가 앉아 있었으니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일상에 있는 다른 부분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좋은 거니까. 그게 어쩌면 좋지 않은 것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고, 좋은 것이다. 단지 그 이유로 나 스스로 기분 상한다.
그 남자는 내가 앉았던 자리여야 할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고, 내가 한 일은 남자에게 양보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옮긴 자리는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를 좀 더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뭔가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다 심지어 본래의 내 것도 아닌 데 마음 상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그러니 오히려 칭찬해 보자. 옮긴 덕분에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잘한 일이라고 말해 보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