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걸었을까? 걷다 보니 사진을 찍은 걸까? 딱히 떠오르진 않는다. 걷는데 어디 정해진 길은 없으니까. 일단 길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걷기는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시작! 하고 걷는 건 이상하니까.
카페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며 노트북을 열어놓고 공부 아닌 공부도 하고, 작업 아닌 작업도 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하려는데 커서가 한참을 깜빡이기만 한다. 글자 하나 써지지 않는다. 생각하고, 또 하고, 또 했는데 결국 포기. 노트북을 덮고는 주위를 살피다 나가서 걷기로 한다. 길 위로. 어디로 갈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왼쪽으로 걷기 시작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계속 이어갔다.
지금 카메라는 후지 X100F를 사용하고 있다. 콤팩트해서 주력으로 사용한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 다녀도 괜찮을 만큼의 크기, 그렇다고 사진이 모자라지도 않는다. 주인인 내가 못 찍으면 찍었지, 카메라는 죄가 없다. 걷다가 들어선 아파트 단지. 어떤 아파트는 산책도 못하게 벽을 치고, 카드키를 주민들에게 지급해 행인이나 지나가는 사람을 막아놓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그냥 열려 있다. 녹지 조성도 멋지게 되어 있고, 길도 널찍널찍하다. 그래서 걷기도 좋다.
카메라를 들고 이걸 찍어야지 하고 겨누진 않는다. 그렇게 하면 대상은 무서워서 도망간다. 그래서 걷다가 눈에 들어오면 그 순간에 카메라를 꺼낸다. 물론 놓치는 경우도 많다. 꺼낸다고 해서 셔터를 바로 누를 수는 없으니까. 초점이 맞춰져야 하고, 그사이 밝기도, 맞춰야 한다. 간혹 다이얼이 돌아가 초점이 날아갈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일단 자동 초점이니 일단 카메라에서 초점을 맞췄다는 확인의 소리. 띠딕! 소리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찰칵! 정확히는 찰칵 소리가 아니란 걸 알지만, 카메라의 셔터는 '찰칵'이란 표현이 제일 좋은 거 같다.
단지를 지나고, 다른 아파트 단지도 들어갔다가 또 몇 장을 찍고, 이젠 골목길이다. 아파트가 많이 들어선 곳에서 골목길을 찾는 건 조금 어렵다. 옛날 나지막한 단독주택이나, 4층 이하의 빌라나, 맨션이 있는 곳에서나 골목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사람 둘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 혹은 차 한 대가 쓱쓱 다닐만한 길, 그런 길이 정감이 간다. 그런 골목에는 뭐가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하니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골목에 들어서서는 더 자주 카메라를 꺼낸다.
그렇게 걷다 보니 시간은 2시간이 훌쩍 지난다. 어쩐지 발바닥이 아프더라니, 느릿느릿 걸어서 걸음 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힘이 든다. 운동으로 걷는 건 아니었지만 만 보를 넘겼다. 오우! 많이 걸었다. 아내와 만날 시간에 맞춰 걷기가 끝났다는 것에 다행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걸었던 걸까? 아니면 걷다 보니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여전히 아리송. 사실 그게 중요한가. 걷기도 했고, 사진도 찍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집에 가면 카메라에 무엇이 담겼는지 확인도 해보고 힘든 다리도 좀 풀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