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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Aug 03. 2018

독일 소도시 여행기 3 - 밤베르크(Bamberg)

'드라큘라성'이 준 교훈 

 레그니츠 강을 끼고 형성된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소도시 밤베르크는 작은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작은 베네치아라는 명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지만, 강을 따라 늘어선 집들과 목조 다리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유럽 안에서도 유독 이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작은 베네치아니, 작은 프라하니 하는 이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여행 최고의 순간들은 언제나 아무런 정보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곳들 속에 있었다. 작은 OOO이라는 이름은 선입견과 불필요한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뉘른베르크에 묵으면서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와 함께 밤베르크로 당일치기 여행을 했다. 구시가에서 우리는 밤베르크성에 올라가기 위해 무작정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언니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우리는 지도 한 장도 없이 계획 없는 여행을 했고,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에 유심카드를 끼울 생각도 못한 채 인터넷은 그저 숙소에 들어가서 숙소 와이파이로만 쓸 수 있는 그런 것이어서 정보가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밤베르크성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가장 높은 곳에 보이는 성 같이 생긴 건물이 밤베르크성이겠거니 하고,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 성인 줄 알고 도착한 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성이라기엔 관광객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날씨도 흐려서 흡사 드라큘라성에 온 것 같았다. 열린 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간호사 복장을 한 여자가 걸어 나와 우리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이 곳은 요양원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이나 우리나 서로 영어가 짧으니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들어갈 수 없다는 말 같으니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는 올라왔던 길이 아닌 건물 뒤편의 반대편 길로 내려가기로 했는데, 그 건물의 뒤로 돌아가니 밤베르크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기는 했지만 주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꽃들이 음산하게 피어 있어서 어쩐지 으스스해진 우리는 재빠르게 출구를 찾아 걸어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와 허리를 굽혀야 통과할 수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나오자 밤베르크의 길거리가 나왔다. 마치 방금 전까지 꿈속에 있었던 것처럼 밤베르크 시내는 아무렇지 않게 평화로웠다.  





 몇 년이 지나 갑자기 이 요양병원인지 무언지가 생각이 나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았더니 드라큘라성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사실 ‘성 미카엘 수도원’이었다. 얼마 전부터는 수도원 건물을 요양원으로 쓰고 있다는 글도 보았다. 맑은 날 찍은 사진들을 보니 심지어 운치 있고 예쁘기까지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눈이나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듯 흐린 날씨였기 때문일까, 관광객이 한 명도 없어서였을까, 하필 드라큘라성 같은 그곳에서 처음 나온 사람이 예상치 못한 간호사였기 때문이었는지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산한 건물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밤베르크의 '드라큘라성'이 그랬듯이 도시든 사람이든 음식이든 무엇이든 간에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본질은 하나인데 누가 보느냐에 따라, 혹은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질을 띠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작은 카페에서 같이 일했던 매니저 A는 우리들 사이에서는 소위 말하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곳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사실은 매니저도 아니었으면서 스스로를 매니저라고 부르라던 A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텃세를 부리고, 자기 마음에 들게끔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만 잘 대해줬다. 그러나 그 잘해준다는 것도 그날그날의 기분에 달려 있어서 A보다 한참이나 어리고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던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의 변화무쌍한 감정에 치이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A를 용(龍)이라고 불렀다, 여기저기 불을 뿜어대는 용. 용은 본인 감정조절 하나 하지 못해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는 나쁜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 용이 싫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쁜 사람인 것만 같던 A에게도 절친한 친구가 있었고, 그녀의 친구는 우리 가게에 종종 놀러 오곤 했었다. 둘은 정말 친해 보였고, 친한 친구 앞에서 A는 마치 용이 아닌 순한 양이 된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A에게는 A를 잘 따르는 친한 동생들도 여럿 있었고, 남자 친구도 있었다.  

우리에게 그저 나쁜 사람이기만 했던 A는 누군가에겐 좋은 친구, 좋은 언니, 좋은 여자 친구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음과 동시에, 그동안 나는 세상을 너무 흑과 백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어떤 욕구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살아가면서 그저 주어진 내 몫만 잘 해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이상을 어찌할 수 있으랴, 그냥 내 갈길이나 열심히 가자.'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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