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이른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인가 싶어 신애는 전화를 받았다.
"신애야,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신애는 서둘러 일어나 외할아버지댁으로 갔다. 같은 동네여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신애는 마음이 조급했다. 엄마가 걱정됐다.
집 안은 적막했다. 예상과 달리 통곡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간이침대에 누워계셨고,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계셨다. 엄마는 그 옆에 앉아있었는데, 이미 한 차례 운 것 같았다. 신애는 말없이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외할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을 차마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처음 겪는 가족의 죽음, 신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새벽 2시쯤이었을까, 엄마는 불현듯 잠에서 깼고 외할아버지댁으로 갔다. 느낌이 안 좋았다고. 외할머니도 집에 계셨지만, 설마 돌아가실 거라 생각을 못 했다. 엄마는 큰 신부님께 전화했고, 신부님은 바로 오셔서 외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성체를 모신 후, 외할아버지는 큰 숨을 한 번 쉬고는 그대로 숨이 멎었다. 엄마는 엉엉 울었다.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가족 중에는 엄마만이 함께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느꼈던 건 한두 달 전부터였다. 큰외삼촌이랑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닐 만큼 몸상태가 괜찮았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는 드라이브를 갈 때마다 '미애야, 같이 가자.' 했지만, 엄마는 집을 비우기가 어려워 함께하지 못했다.
신애가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를 찾아왔을 때에는 이미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누군가가 부축해줘야 했고, 바로 옆 이동식 변기에도 혼자 앉을 수 없을 정도로 팔다리에 힘이 없었다. 신애는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는 걸 옆에서 도왔다. 뼈만 남은 작은 체구의 몸인데도 힘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일으키는 게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두 명이서 양쪽에서 부축을 해야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더운 여름, 외할아버지는 방 안 낮은 매트리스 위에 새우처럼 구부러진 등으로 옆으로 누워계셨다. 외할아버지가 입은 옷과 매트리스 위 이불이 오줌으로 젖었다. 옷을 갈아입혀드리고, 물티슈로 몸을 깨끗이 닦은 다음 옷과 기저귀를 다시 입혀드린다. 마트에서 사 온 죽을 밥그릇에 아주 조금 담고, 황도와 국물을 다른 그릇에 먹기 좋게 잘라 담는다. 어르신 식사대용 단백질 음료와 물도 따라온다. 작은 수저로 죽과 황도를 조금씩 드리고, 단백질 음료와 물, 약을 드린다.
"신애가 사 와서 그런가, 할아버지가 잘 드시네."
밥을 잘 못 드셔서 뭘 드시면 좋을까 생각하다 죽과 황도를 사 왔는데, 다행히 잘 드셨다. 엄마가 없는 날이면 신애는 한 번씩 혼자 가서 외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고 식사를 챙겨드렸다. 엄마는 신애 덕분에 할아버지가 한 달은 더 사셨다고, 고마워했다.
몇 달 전부터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지는 외할아버지를 봐와서였을까, 신애는 울지 않았다.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신애의 걱정은 온통 엄마뿐이었다.
외할아버지는 6.25 때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외할머니와 결혼을 하고, 운전기사 일을 하다가 한쪽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은 후 일을 그만두셨다. 닭도 키우고 여러 일을 했지만, 돈벌이가 되지 못했고, 결국에는 고물을 주워다 파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일로는 아내와 자식 셋을 키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외할머니는 집을 나갔고, 외삼촌들은 중학생 때 가출을 했다. 외할아버지와 엄마만 남은 집에서, 엄마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맡아했다.
다시 가족이 모이게 된 건, 엄마가 아빠와 결혼을 한 뒤였다. 하지만 집안사정이 넉넉한 건 아니었고, 나중에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도움으로 같은 동네로 외갓집이 이사를 오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엄마는 시부모님을 모시느라 부모님을 챙기는 게 눈치가 보여 밥 한 번 편히 먹으러 간 적이 없었다.
엄마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게 된 건, 외할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리셨을 때였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한 스무날 동안 엄마는 홀로 외할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동안 엄마의 빈자리는 신애와 동생이 채웠다. 신애는 하루 시간을 내어 반찬을 싸들고 병원에 갔다. 냉장고에 반찬을 넣으려는데, 평소 말씀이 없으시던 외할아버지가 "6번 칸에만 넣어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다인실을 쓰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에서였지만, 신애는 그때에만 말문을 여는 외할아버지에게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걸 싫어하는 성정이셨다.
신애는 장례식 내내 엄마 곁에 붙어있었다. 엄마는 장례식 내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큰소리로 울지도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 신애는 엄마의 팔을 꼭 붙잡았다. 외할아버지의 가족, 친척들은 없었다. 외할머니의 형제, 자매, 조카가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신애는 거의 본 적 없는 외할머니의 가족들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형제는 술을 많이 들이켜고는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신애와 엄마, 동생 다애는 장례식장 안쪽 방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 낯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밤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엄마는 이따금씩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면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 다애는 그런 엄마를 위해 외할아버지 사진으로 채운 앨범을 만들어 드렸다. 엄마의 작은 테이블에는 앨범과 신애가 그린 외할아버지 삽화가 들어간 신문 하나가 십자가 옆에 놓여있다. 외주 일로 들어온 신문 삽화를 위해 신애가 외할아버지를 찍어서 그린 그림이다. 그때 찍은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사진도 함께 보인다. 환하게 웃고 있는 부녀의 모습. 엄마는 그 사진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