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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Oct 21. 2023

[다시 가고 싶은 이유]
더 쓸데 없이, 더 한가롭게

땡스북스


[다시 가고 싶은 이유]

더 쓸데 없이, 더 한가롭게





책도 많이 안 읽으면서 툭 하면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구매도 안할 거면서 괜히 서가 여기저기를 거닐다 몇 권 들춰 보더니 빈손으로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독서 애호가인 척, 서점에서 노는 게 제일 좋은 척 애써 똥폼 잡는 모습은 여간 꼴보기 싫은 게 아니다. 그게 ‘김정현이 꼴보기 싫은 이유’의 32번 쯤 될 것이다. 어쩐지 “안녕히 계세요!” 외치며 문을 나서는 나의 예의 바른 인사에도 사장님들 대답이 시원찮다 싶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로 놀러가지는 않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서점에 들어가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책을 구매할 마음이 있거나 (2) 잠시 더위 혹은 추위를 피하려고 (3) 화장실이 급해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므로 금세 효율적인 모드로 전환한다.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원하는 바를 이뤘다면 굳이 이곳에 더 오래 머무를 이유는 없지. 그때부터 책 표지를 훑어 보거나 베스트셀러 순위를 확인하는 건 낭비와 다름 없으므로 바깥 세상의 더 재밌는 것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출구 방향을 확인할 뿐이다.



정확히 반대의 이유로 나는 작은 서점에 간다. 놀러 가고, 낭비하러 간다. 여기서 작은 서점이라는 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서점 브랜드를 제외한 모든 서점을 뜻한다. 독립서점이니 동네책방이니 큐레이션 서점이니 하는 표현이 붙은 공간은 전부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뭐라고 수식하든 핵심은 비슷하다. 책 선정부터 공간 인테리어까지 철저히 운영자의 뚜렷한 관점과 취향에 기반한다는 것. 판매 부수나 저자의 인지도가 서가의 색깔을 좌우하지 않는다. ‘마음에 깊게 와닿아서’, ‘꼭 다른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해서’, ‘기똥찬 콘셉트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책이라서’ 등등 본인만 아는 사사로운 이유가 운영의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의 선명도를 높여 책의 가치를 발견하고 선별하는 곳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 더 쓸데없이, 더 한가롭게 작은 서점을 거닐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2017년부터 땡스북스에 다니기 시작했다. 책이 좋아서 갔다기 보다는 서점이 좋아서 갔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대놓고 ‘동네서점'을 자처하는 이 책방의 목표는 “홍대 앞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방 역할을 하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홍대 앞은 커녕 마포구 언저리에도 살아본 적 없고 당시에는 차로 30분이나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던 나는 어쩌면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이 사랑방을 가끔씩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진짜 홍대 피플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책을 매개로 대화가 통하는 젊은 아티스트를 만나고, 자연스레 그들의 친구들 동료들과 교류하며, 어느새 소위 신(scene)에서 주목하는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힙스터로 자리잡는 거지. 어줍잖은 행복회로를 가동할 만큼 땡스북스는 홍대 앞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에너지를 상징하는 가게이자 에너지는 없어도 허세는 넘치는 힙스터/아티스트 호소인에게 최소한의 품격을 챙겨줄 공간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점을 채우는 이들을 훔쳐보며 ‘와, 간지난다'라는 말만 속으로 몇 번을 외쳤던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지금 무슨 음악 듣고 있어요?” 질문하는 유튜브 영상처럼 당장 다가가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 무슨 책 읽고 있어요?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하세요? 대답이 돌아오면 나는 이렇게 말을 이어갈 테다. 저도 에세이 좋아하거든요. 예술에 관심 많고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진짜 시도해볼 용기는 죽어도 안 나서 그냥 틈틈이 흘깃대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뭐라도 되는 것마냥 가오 잡고 서점을 휘젓고 다녔던 기억은 또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다는 듯 여러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열심히 뒤적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는 내 모습을 썩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서점 관계자와 능숙하게 업무 얘기를 주고 받는 이들만 발견하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좀처럼 거둘 수가 없었으니 옆에서 봤으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단지 땡스북스의 일상적 풍경에 꼽사리 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했다.



지난해 가을, 고객이 아닌 일종의 파트너 신분으로 서점에 방문한 건 꽤나 고무적인 일이다. 에디터로 제작 전반에 참여한 매거진의 발간 기념 전시를 땡스북스에서 진행했던 것이다. 신간을 비롯해 전시 구성의 자잘한 세팅을 체크하기 위해 들렀다. 마침 매장에서 근무하던 매니저님을 만나 소소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에디터님, 이번 호 정말 예쁘게 잘 나왔더라고요~”

“그쵸. 여름 내내 빡세게 작업했는데 이렇게 또 하나 만들었네요.”

“벌써 매거진에 관심 보이는 손님들이 정말 많아요.”

“정말요?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며) 다 매니저님이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을 내가 그대로 구현하고 있을 때의 쾌감은 경험한 사람만 안다. 업무 차 땡스북스에 찾아온 2022년의 나를 하릴없이 여기저기 기웃대러 땡스북스에 놀러온 2017년의 내가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정현이 많이 컸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벌써 아른거린다. 가만 보면 사람 일 참 모르는구나 싶어 기분이 묘하지만 한편으로는 동경했던 것만큼 거창하거나 대단할 게 하나도 없어서 더 묘하다. 





여전히 노란 배경에 검은색 글자가 적힌 땡스북스 사이니지를 보면 내 마음에 은은한 두근거림이 인다. 6년 전과 변함 없이 골목에 생기를 더하는 전시 쇼윈도를 지나 매장으로 들어선다. 오후 볕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창가는 내가 서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 알록달록한 스툴에 앉아 방금 책장에서 꺼낸 소설을 후루룩 넘기는 이의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느릿느릿 큐레이션 매대를 배회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주제로 책들을 한데 그러모았을까. 고른 책 가운데서도 특히 어떤 내용이 인상적이었으려나. 스태프들이 각자의 감상을 적어 놓은 ‘땡스, 페이퍼!’를 두어 개 읽다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뒷면을 펼쳐 작가의 말 인용구나 추천사를 살핀다. 선뜻 사기가 망설여진다면 이끌리듯 여행 코너로 가 베를린이나 도쿄를 다룬 여행기가 있나 확인할 때도 적지 않다. ‘아, 떠나고 싶다'는 부질없는 혼잣말과 함께. 



그럼 이제 계산하고 나가자! 하며 뒤를 돌았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책방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편안해 보인다. 까치발을 한 채로 겨우 책을 꺼내는 남자와 말없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여자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낮은 소리로 낄낄거리는 커플과 흐트러진 진열대를 정리하는 직원까지. 책과 책 사이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 틈에 나도 한 번 섞여 본다. 보란 듯이 잡지를 손에 든 채 똥폼을 잡고 있지는 않지만, 제법 마음에 든다. 자연스럽다. 목적 없이 놀러 다녔을 뿐인데, 여기에 머무는 시간이 즐거웠을 뿐인데 이제는 내가 땡스북스의 풍경에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다. 



앞으로도 심심하면 찾아갈 것이다. 근처에 볼일이 생기면 남는 시간을 이용해 방문할 테다. 책을 살지 말지는 역시나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더 쓸데없이, 더 한가롭게 서점 구석구석을 거닐다 보면 무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 막연한 우연을 기대하는 일이 나는 즐겁다.




땡스북스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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