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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Jan 24. 2024

드디어 온 것인가

프롤로그

24. 1. 24.


새해 첫 월경이 14일 동안 이어지다 겨우 끝났다. 장장 2주! 징글징글했다 정말.


나는 1978년생으로 이제 막 마흔여섯이 되었다. 1991년 월경을 시작한 이후 내 월경 기간은 일주일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3년 전부터 슬금슬금 길어지더니 작년 말엔 열흘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이번에 14일. 살면서 역사를 새로 쓸 일이 많지 않은데 내 ‘월경사’는 달마다 기록 경신 중이다.


사실 기간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주기도 짧아지고 월경통이나 두통, 월경 전 증상, 배출량, 피로감 등 월경과 관련한 모든 게 변하고 있다. 처음엔 몸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는 이게 갱년기 증상과 아주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음, 나한테 갱년기가 왔단 말이지...



갱년기라고 부르는 것의 종착점엔 ‘완경’이 있다. 평소 월경을 무척 귀찮아했고 월경전증후군으로 고생을 많이 한 터라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종종 생각했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 건가! 반가운 마음이 앞서 “환영한다, 어서 와, 완경!”이랬다면 딱 쿨함의 정석이었겠지만. 쿨하기는 무슨. 내리막길에서 급브레이크를 잡은 자전거처럼 마음이 찬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올해 49세인 친언니는 아직 월경 중이고 엄마는 55세에 마지막 월경을 했다. 주위 선배 언니들도 내게 “벌써 갱년기라고? 설마~”했다. 적어도 50살은 되어야 갱년기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듯이. 나는 분명 느끼고 있고, 뭔가를 겪고 있는데. 이걸 몰라주다니.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클럽 문 앞에서 뜻밖에 입장을 거부당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그것도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말이다. 답답하고 서운했다.


그래서 작년 추석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 또래 올케에게 하소연했다. 마침 올케도 나와 비슷한 증상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남동생이 “누나, 절대 아니야. 무슨 조금만 이상하면 다 갱년기래!”라며 나를 타박하는 거다. 이건 나와 올케 두 사람을 동시 겨냥한 일타쌍피 전술이렸다. ‘아니, 월경 한 번 안 해봤으면서 뭘 안다고. 네가 의사야?’ 확 쏘아 주고 싶었는데, 모처럼 해맑게 놀고 있는 조카들을 생각해 꾹 참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선배 언니들과 동생의 그 근거 없는 확신에 찬 말을 믿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아직 이르지. 그냥 체력이 달려서 그런 건지도 몰라.’ 하지만 월경 시기가 돌아올 때면 “완경이 코앞에 와 있다고!”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온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오직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모른 척할 수 없는 그 또렷한 외침.


병원에 가서 상담이라도 해볼까. 병원 가는 게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월경 패턴이 달라지긴 했어도 사그라들고 느려지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변하고 있으니 건강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 (아직)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게 이렇게까지 고민할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경이라는 경험이 모두에게 다 다르듯이 완경으로 가는 과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몸이 충실히 따라야 하는 '완경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건 달이 차고 기울 듯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내게 그 시기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찾아올 수도 있지!


완경. 갱년기.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묘한 느낌이 따라온다. 썩 유쾌하지 않은 이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그것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지금 내 상태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이 시기를 똑바로 바라보고, 변화의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떠밀리지 않고 내 발걸음으로 갱년기를 통과해 ‘찐중년’과 그 이후를 향해 걸어가기 위해서. 나는 직접 공부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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