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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Feb 17. 2024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까

월경 편 (3)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24.2.17.


완경을 공부하려 읽은 거의 모든 책에서 호르몬을 이야기한다. 흠. 호르몬이라…     


호르몬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생물시간이었다. 호르몬 종류와 특성 등 외울 것이 많아 한참 애썼던 기억이 난다. 자세한 건 다 잊었어도 ‘호르몬이란 어떤 것’이라는 어렴풋한 이미지는 남아 있다. 호르몬을 흔히 열쇠에 비유하곤 한다. 호르몬이라는 열쇠는 자신에게 딱 맞는 자물쇠(세포 속 수용체)를 만나길 소망하며 혈액이라는 강물을 타고 세포들 사이를 기웃거린다. 열쇠가 세포 속 자물쇠와 만나면 잠긴 문이 열리고, 호르몬은 세포에게 자신의 고유한 메시지, 즉 사명을 전한다.     


예를 들어, 인슐린 호르몬의 사명은 혈당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밥을 먹으면 췌장에서 즉시 인슐린을 분비하기 시작하고, 인슐린은 방금 먹은 음식을 통해 혈액으로 들어간 당분을 세포 안으로 밀어 넣거나 근육과 간에 저장해 혈당 수치를 내린다. 이로써 미션 완료! 지금까지 밝혀진 호르몬 종류는 80~100개지만 실제로는 3000개에 달할 거라고 한다.     


매달 월경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것도 바로 호르몬이다. 이 역시 학교 수업 ‘생식’ 단원에서 틀림없이 배웠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 이름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월경 관련 호르몬 중 가장 잘 알려진 건 역시 에스트로겐이다. 아마 전체 호르몬을 모아놓고 보더라도 유명하기로는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에스트로겐을 흔히 ‘여성 호르몬’이라 하는데, 사춘기 때 여성의 2차 성징을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에스트로겐은 몸 전체에 수분을 저장하고 뼈 건강을 유지하며 다른 호르몬(세로토닌)을 활성화해 감정과 기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월경 과정에서 에스트로겐이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궁 세포를 증식시켜 자궁벽을 두텁게 만드는 것이다. 혹시라도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탄생할지 모르니 푹신한 침실을 마련해 대비한다. 만일 에스트로겐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난소는 성숙한 난자를 내보내지 않는다. 즉, 배란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에스트로겐은 임신과 월경에 핵심 역할을 한다. (에스트로겐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분비되는지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호르몬은 프로게스테론이다. 프로게스테론은 배란 직후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 호르몬의 미션은 에스트로겐이 만들어 놓은 자궁 점막들을 더 튼튼하게 붙들어 수정란이 착상하기 좋은 안정된 환경을 갖춰놓는 것이다. 프로게스테론이 나오기 시작하면 에스트로겐의 분비량은 줄어든다.     


수정란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내 자궁. 그러나 난자가 정자를 만나 수정란으로 바뀌는 일은 아주아주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해선 자궁의 원상복구가 필요하다. 몸 어딘가에서 이번엔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량을 줄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자궁벽을 견고하게 붙들던 프로게스테론이 사라지니 자궁벽은 허물어지고, 피부같은 내막이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선 피가 나온다. 월경이 시작하는 순간이다.     


난포자극호르몬이나 황체형성호르몬 등 월경 주기에 깊이 관여하는 다른 호르몬들도 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두 가지 호르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았다. 이 호르몬들도 차차 다른 글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호르몬을 이해하는 건 과학에세이로 책을 낸 내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실제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 쓴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복잡했다. 나는 단지 월경 주기와 완경 과정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한 건데, 어떤 책을 펼쳐도 앞쪽엔 호르몬 이야기가 꼭 나왔다. 그것도 잔뜩!     

 

숙제 안 하고 뺀질거리는 아이처럼, 여러 권 쌓아 둔 책을 읽다 말다 하는 사이에 월경은 나를 자꾸 혼란에 빠트렸다. 월경이 길어지거나 돌발 증상이 생겨 불안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 책들이었다. 내 증상과 비슷한 부분을 다급하게 찾아 읽다 보니 더디지만 책장이 넘어갔다. 책에 기댈수록 내용이 조금씩 머리에 들어왔다. ‘오호, 이런 것이었군!’ 암기식 공부가 아닌 실생활용 지식을 익히는 쾌감이 꽤 짜릿했다.


알고 보니, 호르몬은 정말 중요했다. 뒤죽박죽인 월경 주기만이 아니라 왜 갱년기에 배가 나오고 살이 찌는지, 왜 얼굴에 열감이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호르몬 지식은 꼭 필요했다. 월경하는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리고 완경으로 가는 과정에 마주칠 일들을 해석하고 싶어서,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어려워도 매일 조금씩 책을 읽어나가는 중이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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