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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Apr 09. 2024

마감... 마감, 마감!

킹받는 글쓰기 5. 재능보다 중요한 것 (2) 써야 할 이유 만들기



‘오늘은 꼭 써야 하는데...’


하루 종일 ‘오늘 뭐 먹지?’ 다음으로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는 써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10년 전 명함을 만들며 새겨 넣은 직함이 바로 ‘글 쓰는 사람’이다.


그럼 쓰면 되지. 물론 쓸 거리가 없진 않다. 나만의 수제비 반죽 비법(반죽에 생콩가루를 섞는 것이다)이나 얼마 전 읽은 감동적인 그림책 <코코에게>의 감상을 소개할 수도 있다. 지난번에 엄마 이야기를 엮어 책을 냈으니 이번엔 아빠를 탐구해 보자고 진작 마음도 먹었다.


글감을 잡으면 생각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돌아가신 아빠와의 기억을 더듬어 보고 사진 속 아빠의 모습도 떠올려 본다. 솜사탕 기계가 뿜어내는 뿌연 실처럼 아직 선명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붕붕 떠다닌다. 이것들을 붙잡아 한참 뭉치고 다듬는 정성을 들이면 뭉실한 입체감을 지닌 글이 된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책도 세 권 썼는걸.     


그래, 맞아. 그럼 이제 쓰면 되겠네. 그래, 써야지. 쓸 거야.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켰다. 한글 파일을 열고 어제 쓰다만 원고 문서를 불러온다. 그런데 잠깐, 목이 좀 마르네.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고양이 화장실 모래가 으득, 발에 밟힌다. 빗자루로 바닥을 좀 쓸고, 그 김에 고양이 화장실도 청소한다.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탄산수 캔 하나를 꺼내려다가 날이 추우니 옥수수차를 마시기로 한다. 물을 데우고 옥수수차를 찾는데 이런, 다 먹고 새로 사놓는 걸 깜박했나 보다. 핸드폰으로 마트 어플에 들어가 장바구니에 옥수수차를 담는다. 또 뭐 살 게 있었던 거 같은데, 뭐였지...     


아무래도 산만한 것이 문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진득하게 앉아 숙제 하는 걸 힘들어할 만큼 집중력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고도 10년 넘게 글을 써왔다. 지금 달라진 건 딱 하나. 마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2년 전 외부 청탁을 받아 원고를 쓰는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접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원하는 글이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 마음대로 써보고 싶었다. 그동안 글 써 온 구력이 있으니 습관처럼 계속 글을 쓰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웬걸. 이따가, 나중에, 내일, 다음에, 피곤해서, 배불러서, 약속이 있어서, 특별한 날이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 책 읽느라, 수다 떠느라, 감기 기운 때문에, 이가 아파서, 반려묘 검진일이라... 온갖 이유로 미루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나는 MBTI에서 E와 P성향이 90퍼센트에 달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몸과 발이 움직이고 계획은 어기는 맛에 세우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게 내 마음, 내 의지인 듯하다. 바지런히 글 쓰던 몸은 어디로 가고 한껏 늘어진 반백수의 나만 남은 걸까.


아무도 마감을 정해주지 않으니 별수 없다. 스스로 마감을 만드는 수밖에. 방법을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방치했던 ‘브런치 연재를 하기로 했다.   주제와 요일을 정하고,  각오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알렸다. 나를 감시하는 장치를 만들면 마감을  했을  머쓱해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테니 어떻게든 쓰지 않을까. 물론  SNS 지인들이 내가 제때 글을 올렸는지 아무도 확인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비록 일방적이었더라도 타인과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고 혹여 그런 일이 생기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기질에다 P성향까지 있으니 내겐 외부 강제력은 필수다. 다행히 SNS 지인들은  결심을  열렬히 응원해 주었다. 응원도 받고, 감시도 받고 12! 브런치라면  쓰고 싶은 열정이 응집한 곳이니 자극을 받을 수도 있을 거다.


두 달 남짓 해보니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만큼 쫄깃하지는 않아도 마감이 주는 긴장의 맛을 충분히 느끼며 지낸다. 어디서든 글 쓸 주제를 생각하고, 문장이 떠오르면 휴대폰에 메모도 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곳에 글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글쓰기 강의를 듣는 걸 추천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양한 글쓰기 강의가 나온다. 비용은 좀 들겠지만, 강의에 참여해 글도 쓰고 글 쓰는 동료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나도 여러 차례 글쓰기 강의를 들었고, 대부분 만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쓰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마감일과 마감 시간이다. 가끔, 바이라인의 내 이름을 지우고 싶을 만큼 허술하고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송고하며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 마감이 너무 빨리 돌아오는 것 같아 도망가고 싶고 때론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마감일을 넘기지는 않았다. 꿋꿋하게 내게 할당된 지면을 채웠다. 못 쓴 글이라도 계속 쓴 덕분에 글이 남았고, 그중 일부가 책이 되었다.


이제는 브런치라는 느슨한 압박의 공간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쓰고 싶은 마음하나만으론 당최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정신상태를 한탄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와의 약속, 결심? P에게 바랄  바라야지. 아무리 킹받아도 어쩔  없다. 오직 마감만이 나를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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