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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May 02. 2024

몸으로 쓰는 글

킹받는 글쓰기 6. 재능보다 중요한 것 (3) 쓸 힘 키우기

글을 쓰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3년 전, 다리가 아파 고생한 적이 있다. 책과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종일 돌아다니다 밤중에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 있는데, 갑자기 골반 근처에서 심한 통증을 느꼈다. 서 있자니 찌릿한 자극이 이어져 괴롭고, 그렇다고 주저앉자니 민폐가 될 것 같아 전철 손잡이만 꼭 붙든 채 진땀을 흘렸다.


다음날 병원 문 열기를 기다려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가 내 X-ray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고관절을 지나는 신경이 눌리고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갑작스런 진단에 어리둥절한 내게 의사는 직업을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음...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이요.”


그러자 “바로 그게 원인”이라고 했다. 골반이 넓은 데 비해 엉덩이에 살이 별로 없어 고관절이 더 많은 압박을 받았을 거라고.


의사는 고관절에 좋은 몇 가지 동작을 알려 주었고 당분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말라고 했다. 척추에 주삿바늘을 꽂아 약물을 넣는 신경 주사를 두 방이나 맞고 겨우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던 건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런저런 일을 해오다 마흔 살 무렵, 오직 글과 관련한 일만으로 먹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그 무렵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같이 하려니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둘 중 글쓰기를 선택했다. 한 번쯤은 전념해 보고 싶은 일, 그것이 내겐 글쓰기였다. 하루 열 시간 넘게 글 써서 여기저기 원고를 보냈고 다행히 일감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이제 겨우 글 쓰는 삶에 안착하려나 했는데, 몸이 안 좋아지다니. 의자에 오래 앉지 말라는 말은 더 큰 충격이었다. 의자에 앉지 않고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러다 글을 못 쓰게 되면 어쩌나. 아직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온갖 처량하고 불길한 생각이 악몽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고관절로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유튜브에 ‘고관절’을 키워드로 검색해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영상을 보고 또 봤다. 다음날부터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초급 요가도 시작했다. 밤이 되면 고관절을 풀어주는 운동을 하고서 잠을 잤다.


주사를 맞은 날로부터 만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병원에 또 가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고관절이 좋아진 거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바탕 글을 쓴 후엔 허벅지가 저릿하고 가끔 통증도 느껴진다. 그래서 그러기 전에 미리 조심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우선 책상에 앉자마자 핸드폰으로 22분 타이머를 맞춘다. 22분은 현재 내 몸 상태에 맞는 적절한 시간일 뿐, 의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글을 쓰다가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와 목, 어깨를 쭉 편다. 그리고 쿠션이 있는 가벼운 실내화를 신고 방안을 빠르게 3분 동안 걷는다. 3분 알람이 울리면 다시 자리에 앉아 22분 동안 글을 쓰고, 다시 3분 걷고.. 몇 번 반복하다가 서너 시간이 지나면 이제 자세를 완전히 바꾼다. 눈높이에 노트북을, 손 높이에 자판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그곳에서 일어선 채 글을 쓴다. 몸통과 다리를 수시로 움직일 수 있고, 의외로 집중도 잘 된다. 처음부터 서서 글을 쓰지 않는 건, 몸과 마음이 글쓰기 모드로 진입하는 동안만큼은 의자에 앉는 게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서 있다가 힘들면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고 눕는다. 사바아사나(누워서 쉬는 자세) 자세로 눈을 감는다. 천천히 깊게 숨 쉬며 몸 곳곳을 느껴본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드는 부작용도 있지만, 다 몸이 시키는 일인데 뭐 어때, 하면서 가볍게 넘긴다. 이렇게 누워서 보내는 시간도 글 쓰는 과정의 일부로 여긴다.


물론 요가와 걷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몸 곳곳에 근육이 붙고 오래 걸어도 예전만큼 피로를 느끼지 않는 걸 보면 운동의 효과가 있는 듯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가매트가 상했다는 이유로, 정도 요가를 쉰 적이 있는데, 이번엔 손목과 팔꿈치까지 몸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을 쳤다. 못해도 주 2회는 요가를 하려 애쓴다.


글은 몸으로 쓴다. 손과 어깨, 허리, 고관절로 쓴다. 내 생각을 글로 바꿔주는 AI가 나오면 누워서도 글을 쓸 수 있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2024년의 나에게는 글 쓰는 데 가장 중요한 1번은 체력, 2번도 체력이다. 앉고, 서고, 누울 수 있는 몸통, 자판을 경쾌하게 누를 수 있는 손목, 머리 무게를 버텨낼 만큼의 목의 곡선.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천성적으로 갖춰진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획득한 것”이라 말한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수시로 영감이 찾아오고 기발한 창의력으로 날마다 가슴이 뛰더라도 글 써내는 신체가 없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느덧 마흔 후반의 나이가 되었으니 앞으로 아픈 곳이 점점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망가진 관절이라도 살살 달래 의자에 앉히고 수시로 일으켜 세우고 적당한 휴식을 처방하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글 쓰며 사는 게 내 꿈이다. 뭐, 다 방법이 생기겠지. 아픈 몸에도 다 적응해서 살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이런 변화 하나하나에 휘청이지 않을 마음의 여유가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프다고 킹받지 말고 꾸준히 몸 움직이기. 날마다 다짐하는 글쓰기 제1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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