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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Jun 23. 2021

쌀게무침

A는 쌀게무침을 좋아했다. 통째로 게를 튀겨 매콤한 양념으로 버무린 쌀게무침을 ‘아그작’ 소리를 내며 씹어먹을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좋아하던 쌀게무침조차 그의 스트레스를 날려주지 못했다. 당산을 지나 합정으로 향하는 당산철교 위, 전철 창밖으로 한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스쳐 지나던 풍경이 자욱한 안개 뒤로 사라져 있었다.


쌀게 A는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며 해변에 서 있었다. 머리 위로 갈매기가 호시탐탐 그를 낚아챌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쌀게 A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해변 뒤로 단단한 바위가 자리 잡고 있어 그의 평소 순발력 정도라면 갈매기가 달려들어도 바위틈으로 얼마든지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위보다도 그의 옆에 펼쳐진 파라솔이 쌀게 A의 마음을 더욱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파라솔이 만들어준 널찍한 그늘에 들어가면 저 멍청한 갈매기쯤은 쉽게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녹색과 흰색이 교차된 무늬의 파라솔은 쌀게 A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파라솔의 기둥이 해변에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어지간한 비바람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쌀게 A는 앞으로도 영원히 파라솔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 믿었다. 파라솔은 그에게 피신처이면서 안락한 집이었다.     


어느 날, 먼바다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소용돌이는 주변의 습기를 자양분으로 급격히 몸을 불렸다. 그리고 곧 태풍으로 성장했다. 태풍은 서서히 쌀게 A가 살고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태풍이었다. 태풍은 항상 쌀게 A와 비교적 먼 해변으로 지나갔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도가 거칠어졌다. 태풍은 바다 깊은 곳부터 파도를 끌어올려 사정없이 해변을 밀어붙였다.     


당산나무처럼 항상 그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던 파라솔도 이번에는 버틸 수 없었다. 쌀게 A가 믿고 우러러 바라보던 파라솔은 순식간에 뿌리가 뽑혀 하늘로 솟구쳤다. 파라솔은 태풍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쌀게 A는 그제야 파라솔의 기둥뿌리를 볼 수 있었다. 해변에 박혀있던 부분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뽑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덕분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정신없이 휘날리던 파라솔은 애석하게도 쌀게 A의 등껍질 위로 착륙했다. 파라솔의 그늘에 기대어 살던 쌀게 A는 파라솔 기둥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쌀게무침조차 되지 못한 채로.     


A는 안온했다. 50층에 위치한 사무실 창밖으로 여유롭게 남산을 바라보았다. 창립 50주년이 되던 해에 그가 입사한 회사는 어느덧 56년째를 맞았고, 매월 21일이면 그의 통장에 꼬박꼬박 월급을 입금해줬다. 회사는 앞으로 50년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2년 전 신축한 빌딩은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회사의 든든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회사를 향한 그의 생각은 믿음이 되었다. A는 조금 더 먼 미래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두 딸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내 집 마련’이라는 달콤한 꿈이 멀지 않아 보였다.     


어느 날, 뉴스에 A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좋은 내용의 기사는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고 회사 기사에 대통령의 이름이 더해졌다. 기사 내용은 갈수록 나빠졌다. 수많은 방송과 신문들은 이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회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신문만 펼치면, TV만 틀면 그가 일하는 회사 이름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날마다 새로운 내용이 쏟아졌다. 기사는 여론이 되고 여론은 곧 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법은 오래 지나지 않아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탄핵이 결정된 지 며칠 만에 대통령은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A가 일하던 회사, 56년이 된 그 회사도 무너지는 데는 석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직원들이 책상을 정리했다. A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직원들은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정리’당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고 했는데 회사는 부자가 아니었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당산철교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새삼 안락했던 ‘생계’가 ‘생의 경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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