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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May 03. 2021

충남대병원 15호 입원실에서

“아이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     


입원 후 벌써 몇 번이나 저 소리인지 모른다. 멀리서 바라보던 나도 몰래 한숨을 뱉는다.     


갑자기 허리디스크 통증으로 고생스러운 생활을 한지 꼬박 석 달 만에 수술대에 오른 아버지는 병원에서 저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버지가 거동을 못하고 리클라이너에 누워만 계실 때도 수화기 너머로 그렇게 병원에 가 보시라 말을 했지만 당신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객지 산다는 핑계로 불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휴가를 내고 집에 내려가 병원에 모시고 가려했지만 놔두면 좋아질 거라며 버티던 당신이었다. 하지만 7월이 되자 당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직접 병원을 알아보고 의사를 만나 수술 날을 잡았다.  


수속과 수술, 회복까지 길어도 일주일이면 된다는 얘기에 나는 여름휴가를 털어서 충남대병원으로 내려갔다. 동생은 휴가를 쉽게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어머니는 조카를 돌보느라 간호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시댁, 그러니까 내 고향집에 잠시 맡겨둔 후 옷가지와 책 몇 권을 챙겨 입원실로 갔다. 간단한 검사를 받으며 하루를 대기했다. 이튿날인 수요일, 3번과 4번 요추 사이에 문제가 있으며 왼쪽으로 터진 디스크를 제거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들었고 수술이 시작됐다. 두어 시간 지나 아버지가 회복실에 들어갔고 이후 몇 가지 체크를 마치자 입원실로 돌아왔다. 이제 주말이 되면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갈 수 있겠구나 하며 큰 걱정 없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소변통을 비웠다.     


아침이 됐다. 


“큰애야, 의사 좀 불러봐. 어째 반대쪽이 수술 전보다 더 아프다. 움직일 수가 없어”     


밤새 잠을 설친 아버지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나를 깨웠다. 간호사가 왔다 가고, 수련의가 다녀가고, 오후가 되어서야 담당 의사가 찾아왔다. 한참을 면담하고 이런저런 자료를 확인하더니 재수술을 해야겠다는 소리를 한다. 양쪽을 함께 열어서 디스크를 제거해야 할 것 같단다. 당장은 힘들고 내일 오후에, 그러니까 금요일 오후에나 수술일정을 잡을 수 있겠단다. 순간 피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당장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일 분이라도 빨리 일어나셔야 한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깨물며 설명을 들었다.     


“아이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     


그날 밤, 다음날 수술을 앞두고 다시 MRI 촬영을 하며 아버지가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밤늦게 입원실로 담당의가 찾아왔다. 재수술을 하게 된 지금 상황이 본인도 민망했는지 한참이나 아버지의 긴장을 풀어주고, 나를 따로 불러 검진 자료를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을 했다. 다른 환자들 사진도 비교하며 아버지의 요추 구조가 특이해서 미세한 디스크 파열도 신경에 자극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꽤 높은 확률로 나도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우여곡절 끝에 재수술을 마쳤다. 생각보다 수술이 오래 걸리자 어머니도 걱정이 됐는지 조카를 끌어안고 대전까지 내려오셨다. 다행스럽게 재수술은 잘 끝났고, 정말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힘들어하시면서도 금방 몇 걸음씩 걸을 수 있게 됐다. 통증으로 며칠 밤을 잠도 못 이루며 앓던 모습은 사라지고 병문안을 온 친척에게 “나 때문에 큰애가 고생이지 뭐”라고 말하는 여유도 생겼다.     


주말이 되자 동생이 교대를 하기로 해 집으로 차를 몰았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충남대병원 입원실에서 아버지가 두 번의 수술과 통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역설적이게도 내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수술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동안은 내 허리는 괜찮을까? 아이들 디스크는 나중에 괜찮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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