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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Feb 25. 2021

박물관은 재미있다 2

출장과 여행 사이, 빈 - Episode Ⅱ

‘예술의 도시 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술가는 단연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다. 그뿐만 아니라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브람스(Johannes Brahms), 하이든(Franz Joseph Haydn) 그리고 말러(Gustav Mahler)까지, 많은 음악의 거장들이 빈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빈을 음악의 도시라고도 한다. 레전드들은 이제 사라졌지만 현재는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Wiener Philharmoniker)과 빈 소년 합창단(Wiener Sängerknaben)이 그들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빈은 음악 못지않게 미술에서도 꽃을 피운 도시다. 대표적인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로 빈 분리파*의 일원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와 에곤 실레(Egon Schiele)가 있다. 이 둘의 자신들만의 화법으로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이끌었다. 이처럼 과거에도 현재도 예술에만큼은 진심인 빈에는 예술과 관련된 여러 박물관들이 있다. 그중 빈의 미술사를 따라 예술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파리의 루브르(Le musée du Louvre), 마드리드의 프라도(Museo del Prado)와 함께 유럽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이다.

미술사 박물관은 Y상무님 픽이었다. 아무리 유럽 3대니 어쩌니 해도 역시 박물관은 호불호가 강하기 마련. Y상무님의 제안에 K사원과 L대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행히 나는 첫 유럽이었던 스웨덴에서 박물관에 재미를 붙이고 온 터라 박물관을 좋아했다. 하지만 역시 이번 픽은 만큼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아는 하지만 미술사 박물관 말고도 갈 곳이 넘쳐 났기 때문이다. 그 많은 좋은 곳들을 놔두고 하필 박물관이라니... 어쩌겠는가? 우리 말단 미생들에게는 하늘과 같은 존재인 상무님 말씀이시니 그저 조용히 따르는 수밖에.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 : 1897년 구스타프 클림트를 주축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예술가 집단으로, ‘그 시대에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이라는 표어를 내걸며 오랜 역사와 전통의 틀을 벗어나는 예술을 추구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과 빈 자연사 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Wien)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Maria-Theresien-Platz)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중심으로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건물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오른쪽은 빈 자연사 박물관, 왼쪽이 빈 미술사 박물관이다. 티켓을 끊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무전기처럼 생긴 오디오 가이드는 작품에 붙어있는 번호를 누르면 해당 작품의 설명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원하는 작품만 골라서 들을 수 있었다. 반갑게도 한국어가 있었다. 대표 언어인 영어와 독일어에 비해 한국어는 지원되는 작품 수가 적었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어차피 모든 작품을 다 들을 건 아니었으니까. 관람은 각자 자유롭게 하기로 하고 같은 시각에 기념품 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제일 아래층인 0.5층에서부터 1층, 2층까지 차례로 관람을 시작했다. 0.5층에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에서 수집한 골동품들과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티켓 메인 사진으로 담긴 전시품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금으로 되어 있어 단순 장식용 물건인가 했는데 용도가 반전이었다. 소금과 후추를 담는 통이란다. ‘살리에라(Saliera)’라는 이름으로 빈 미술사 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였다. 소금과 후추를 뭘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운 통에 보관하다니, 문득 우리 집에 있는 소금과 후추통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살리에라는 16세기 이탈리아 천재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가 만든 것인데 하마터면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보지 못했을 뻔했다. 바로 2003년에 있었던 도난 사건 때문이다. 그 사건의 전말이 제법 재밌었다. 우선 범인은 50세의 보안설비회사 사장인 로버트 망(Robert Mang)이라는 평범한 오스트리아의 시민이었는데 살리에라 도난 후 박물관 측에 거액을 돈을 요구하며 협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발 지려 겁이 났는지 2년간 깜깜무소식이 되었다가 어쩐 일인지 3년 후인 2006년에 다시 돈을 요구하며 나타났다. 이때 경찰이 핸드폰을 추적해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찍힌 영상을 공개했는데,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영상 속 사람은 나지만 나는 범인이 아닙니다.‘라며 자백 아닌 자백을 해버렸다고. 제 발로 경찰의 의심을 산 그는 결국 덜미를 잡혔고, 그렇게 살리에라를 무사히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왠지 범인에게서 강한 허당의 향기가 풍겼다.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살리에라는 빈 미술사 박물관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티켓에 메인 사진으로 박혀있는 이유가 다 있었다.

빈 미술사 박물관과 티켓 인증^^V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살리에라(Saliera), 왼쪽이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 오른쪽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

빈 미술사 박물관의 사실상 백미는 1층 회화 전시실이다. 사방은 물론 천장까지 온통 그림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하나같이 다 회화 거장들의 명화들이라는데, 그알못(그림을 알지 못하는)인 나에게는 그냥 다 거기서 거기였다. 급격히 흥미가 떨어졌다. 대충 스캔하면서 휙~ 지나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작자도 제목도 모르지만 그림 속 기울어져 가는 탑의 이름과 그림의 내용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바벨탑이었다. 높은 탑을 쌓아올려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이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다양한 언어로 나우어 탑 건설을 막고, 결국 언어 별 사람들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 내 머릿속에서 이런 고급 지식이 있었다니 나도 신기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오디오 가이드님께 물어봤다. 제목은 탑 이름 그대로 ‘바벨탑(THE TOWER OF BABEL)’, 네덜란드 출신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화가인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의 작품이었다. 역시 박물관은 아는 게 있어야 재밌는 법이다. 

마지막 층인 2층에는 동전 컬렉션과 카툰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인상 깊지는 않았다. 2층을 다 둘러보니 어느덧 약속한 시간이 되어 이만 기념품 숍으로 내려갔다.


회화 전시실
유일하게 아는 척 할 수 있었던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의 바벨성(THE TOWER OF BABEL)

Y상무님이 먼저 내려와 쇼핑 중이셨다. 박물관 관람이 제법 재밌으셨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에게 소감을 물으셨다.(ㅎㄷㄷ;;;)


“잘 들 봤어? 뭐가 제일 인상 깊든?”

K사원 : “아... 솔직히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습니다.”

L대리 : “저도 본 건 많긴 한데, 특별히 하나 떠오르는 게 없네요.”

나 : 전 바벨성이요제가 유일하게 아는 거라.”


난 Y상무님께 같은 질문을 되묻고 싶었지만 이 지옥 같은 소감 발표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참았다. 빈 미술사 박물관의 솔직한 소감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빈 미술의 역사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부잣집 금고를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합스부르크가의 왕의 자신의 수집품들을 자랑하고 싶어 개인 보물창고를 개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 빈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많은 회화 작품들도 없어 아쉬웠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층 중앙계단 기둥들 사이의 벽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그 외 유명한 회화 작품들은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이들의 작품은 빈 분리파 전시관(Secession)이라고 따로 있었다. 미술사 박물관은 뽀갰으니, 다음에 빈 미술기행을 하게 된다면 빈 분리파 전시관에 가봐야겠다. 이번에도 역시, 박물관은 재미있었다.

기둥 사이에 있는 여인의 그림들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들이다
위에서 보면 아이언맨 심장 같았던 박물관 내 카페
빈 분리파 전시관, 제첸시온(Sec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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