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볼러 Feb 26. 2021

요놈들을 확! 그냥

출장과 여행 사이, 빈 - Episode Ⅲ

빈에서의 마지막 날. 뜻밖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오전은 각자 알아서 보내고, 체크아웃하고 로비에서 모이는 걸로 합시다!”

“(와우!!!)넵! 알겠습니다!”


체크아웃까지는 앞으로 4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뭘 해야 알차게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고 있는데 L대리가 먼저 제안을 했다.


“같이 시장 구경 안 갈래요? 어디 특별한 곳에 가기에는 시간이 좀 그렇고, 시장은 그냥 슥 한 바퀴 둘러만 보고 와도 되니까.”

“그럴까요? 노점 같은데 있으면 군것질도 좀 하고.”

“저도 좋습니다!”


탕!탕!탕! 만장일치로 통과. 그럼 어떤 시장을 갈 것인가? L대리는 거기까지 다 계획이 있었다. 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장을 알아놨으니 자기만 따라오란다. 그렇게 자신감 충만한 L대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나슈마르크트(Naschmarkt) 시장이다. 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장으로 빈 서민들의 식탁을 책임지는 로컬 재래시장이었다. 고기, 야채, 생선, 치즈, 소시지 등과 같은 식재료들은 물론 인도나 중동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와 식초도 있었다. 또한 오스트리아 로컬 음식을 비롯해 케밥, 카레, 초밥, 쌀국수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어, 장 보다 출출해지면 군것질이나 아예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시간은 너무 아침이라 식재료 가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음식점들은 닫혀 있어 아쉬웠다.

칼스플라츠(Karlsplatz)역에서부터 약 1km 정도에 달하는 시장을 초입에서부터 끝까지 다 돌고 나니 슬슬 배꼽시계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해있는 뱃속의 거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유일하게 딱! 열려있었던 소시지 가게로 향했다. 각자 맥주 한 캔씩 시키고 안주 겸, 요기할 겸 해서 소시지를 시켰다.  거기에 함께 곁들일 빵까지. 오독오독 소시지 한입에, 크으~ 맥주 한 모금. 역시 동유럽 맥주, 역시 맥주엔 소시지다. 빵은 거들뿐.


배를 채우고 있는 사이, 닫혀있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다소 썰렁했던 시장통이 흔히 알고 있는 시장통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맥모닝(햄버거 말고 아침에 마시는 맥주)을 즐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닿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충 초등학교 5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 넷이서 깔깔거리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엔 동양인인 우리가 당연히 신기하겠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이 다가왔다.


"같이 사진 찍어요!"

"응! 그래! 찍어 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NO!!!"


내 대답이 채 끝나기 무섭게 L대리가 정색하며 거절을 했다. 갑자기 단호박이 된 L대리의  상기된 모습에 아이들은 물론 나도 얼음이 됐다. 아니 뭐 자라나는 어린양들에게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할 일인가 이게? 찍기 싫으면 나라도 혼자 찍으면 되는 것을. 아이들이 떠나고 L대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ㅋㅋ사진 찍기 싫으셨어요? 아님 저 혼자라도 찍었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쟤네 하는 짓 좀 봐봐요."


방금 전 시무룩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괴상한 몸짓과 얼굴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추억의 예능 가족오락관의 몸으로 말해요(단어를 말없이 몸으로만 설명하여 맞추는 퀴즈)였다면 문제의 정답은 분명 원숭이였을 것이다. 우리를 보고 원숭이 흉내를 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헐... 지금 사진 안 찍어줬다고 저러는 건가?"

"우리한테 오기 전에도 저러고 있었어요."


아! 그랬구나;;; 우리를 동물 보듯 쳐다봤다니. 아놔, 요놈들을 아주 확! 그냥.

하고 싶은 마음이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교양 있는 여행자이자 어른이로서 꾹 참았다. 어쨌든 아이들이었고, 여기는 빈이니 문화도 다른데 한국에서처럼 괜히 꼰대짓 한번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될 수도 있을까 봐.(사실, 영어도 짧아서 영어로 꼰대짓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 게 인종차별이라는 건가?’


처음 당해본 인종차별. 뭔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직접적인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 억울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도 당할 수 있다니. 예고 없이 찾아온 인종차별 공격에 잘 먹고 있던 소시지와 맥모닝 맛이 뚝 떨어졌다. 물론 저 아이들이 그랬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도 이런 인식이 존재한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순수한 아이들이 그랬다는 게 김 빠진 맥주만큼이나 씁쓸했다. 부디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그러지 않기를, 그냥 단순히 태어나 처음 본 동양인 너무 신기해 그랬던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도 너네! 혹 다음에 또 한 번 걸리면, 그땐 X진다!ㅡㅡ^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던 아침의 나슈마르크트 시장, 맥모닝엔 역시 소시지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조금씩 크기나 모양이 달리 신기했던 야채들과 술인가 싶어 시음해볼랬는데 알고 보니 과일식초;;;


이전 13화 박물관은 재미있다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