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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Nov 20. 2023

시월드와 함께한 포천 여행

1박 2일도 길다

하이텐션 며느리와 무뚝뚝 시엄니, 그 며느리의 남편이자 그 시엄니의 아들인 나, 그리고 내동생까지. 이렇게 넷이서 포천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콘셉트는 펜션 잡고 먹고, 놀고, 또 먹고, 또 놀기. 여행의 목적은 생일을 맞은 엄마의 생애 첫 생파. 무뚝뚝한 시엄니에게 생파라... 엄마를 30년 이상 봐온 나로서는 무리수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하이텐션 며느리는 이미 흥분 상태였다.


"오빠, 두 아들들이 이런 거 안 해줘서 그래. 막상 해보시면 좋아하실 거야."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와 동생은 지금껏 축하의 한 마디와 함께 소정의 선물(머니머니해도 현금이 최고다), 케이크 커팅식 정도만 해왔지 생파랍시고 거창하게 뭘 해본 적은 없었다. 제발 하이텐션 며느리의 기특한 마음이 무뚝뚝한 시엄니의 마음에도 쏙 들기를 바라며, 숲과 물의 도시 포천으로 출바~알!




'엄마의 생애 첫 생파'라는 여행의 목적이 변질되지 않도록 일정을 최대한 가볍게 짰다. 펜션 입실시간을 기준으로 가는 길에 한 군데만 들르고 다음 날 퇴실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한 군데만 들르는 걸로. 엄마의 체력과 며느리의 (멘탈) 체력을 고려한 1박 2일 일정이었다.

1박 2일의 첫 번째 코스는 포천아트밸리. 요 근래 포천을 자주 갔던 나와 아내도 아직 못 가봤던 곳이고 자연을 보며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을 저격한 선택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노레일이 임시운행 중단이란다. 그렇다고 관람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 22도가량 경사진 언덕길을 대략 400m 정도 걸어 올라가야했다. 한 때 '길 따라 걷기' 동호회에서 자칭타칭 돌격대장으로 통했던 엄마지만 망할 놈의 코로나 이후로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과연 오를 수 있을지 걱정과 의문이 교차했다.


"에이~ 괜찮아~ 이 정도는 아직 거뜬해!"


자신감 넘치는 엄마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는 보란 듯이 기꺼이 돌격대장을 자처했다. 우리는 엄마 뒤꽁무니를 쫓아 걸었다. 하지만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걷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구)돌격대장의 체력은 예전만 못했다.(아~ 옛날이여ㅠㅜ) 한 100m쯤 올라갔을 때 벤치를 발견한 엄마는 뭐에 이끌리듯 다가가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하이고~ 잠깐만 쉬었다 가자. 그럼 다시 오를 수 있어."


가쁜 숨을 헐떡이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가슴과 어깨가 동시에 들썩이는 게 활기차게 보여 체력이 예전만 못할 뿐 그래도 아직 건강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혼자 앉아 있는 게 민망할(지도 모를) 엄마를 위해 아내가 옆에 앉고서는 내게 최대한 다정하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라는 미션을 하달했다.(예썰! 롸저댓!) 그런데 며느리와 시엄마의 다정한 컷이라... 그동안 찍어본 사진 중 가장 어려웠다^^;;

다정하게 한 컷 찍고 난 후 급 피로해진 며느리

포천아트밸리의 볼거리는 크게는 세 가지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천주호, 그리고 조각공원과 천문과학관이다. 이중 천문과학관은 모노레일 종점으로 포천아트밸리에서도 가장 위쪽에 있는 데다 우리 중 누구도 천문에 관심이 없기에 패스. 해서 천주호와 조각공원만 둘러보기로 했다. 천주호를 즐기는 방법은 특별한 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한 가지 팁이라 하면 데크에서 한 번 보고 전망대에 올라가서 한 번 보고, 호수공연장이 있는 반대편으로 넘어가 또 한 번 보고. 여기저기서, 요렇게 저렇게 보며 다양한 포인트에서 보고 사진을 찍는 맛이 있다. 하지만 우리 무뚝뚝 여사님께는 어디서 어떻게 보나 다 같은 호수였는지 데크에서 사진 하나 남기고는 다 봤으니 이제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를 재촉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천주호의 풍경이 몹시 궁금했지만 누군가의 블로그로 대리만족을 하기로 하고 이만 조각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아들 부자, 나는 두 여자를 거느린 의자왕(후훗)
이제는 한 가족, 손하트를 못해서 어정쩡하게 손을 모은 엄마ㅋㅋㅋ
1 급수의 호수, 천주호
반대편 호수공연장에서 관람 중인 사람들
관람 데크에서
데크 옆 계단에 올라 바라본 천주호
전망대는 아니었지만 역시 살짝 위에서 바라보는 뷰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천주호 풍경

조각공원에서도 엄마의 작품감상은 거의 패스트푸드였다. 두리번거리며 슥~ 스캔하듯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다 봤단다.


"뭐 볼 것도 없네~"

"ㅎㅎㅎ(그저 웃지요)"


예술에 대한 조예는 나도 깊지 않아 심오하게 작품감상을 해보자는 건 아니고 그냥 재밌어 보이는 작품이 있으면 작품의 콘셉트에 맞춰 재밌는 포즈로 인증숏 정도 찍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치켜들 때마다 "에이~ 됐어!"로 받아치며 돌격대장이 되어 앞서 걸어갔다. 예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나(우리)와는 많이 다른 엄마와의 여행은 항상 내 마음 같지 않다.

조각공원을 걸으며 찍은 유일한 사진

조각공원을 지나 다다른 호수공연장. 이미 볼장 다 본 천주호이기에 엄마는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천주호에는 1도 관심이 없었다.


"나 여기 앉아 있을게 후딱 보고와!"

"그래 오빠, 둘이 다녀와~"


고맙게도 아내가 엄마 옆을 지켜주었다. 이럴 땐 "아니야 괜찮아~ 우리도 안 봐도 돼." 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눈치 없는 남편과 시동생은 기어이 둘이서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왔다. 다 보고 와서야 뜨끔! 했지만 다행히 뒤탈은 없었다는...^^;;

호수공연장에서 바라본 천주호
미디어파사드가 상영되는 호수공연장
나이 들어도 엄마, 나이 먹어도 아들
이제 하산!
조각공원에서 내려다본 포천아트밸리 주변 전경




안내책자에 '전체 관람 시간 약 2시간 소요'라고 쓰여있는 포천아트밸리를 1시간 만에 해치우고는 이번 여행의 메인 스폿이자 메인이벤트가 펼쳐질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은 청계호수에 있었다. 청계산 아래 있어 청계호수인데 과천 청계산 말고 포천에도 청계산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만 몰랐지 '청계유원지'라 해서 포천에서는 이미 유명 관광지였다.

펜션에 도착해 장 봐온 먹을거리들을 정리하고 짐을 풀고는 엄마와 나, 동생은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펜션 주변으로 청계호수 산책길이 있어 한 바퀴 훠이~ 돌고 올 셈. 여기에 아내는 왜 빠졌느냐? 저녁준비를 위해서. 그녀가 자처한 일이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시월드의 생일상을 본인이 직접 차리고 싶은 로망(?) 실현, 부수적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한 충전.(아마도 사실은 후자가 더 크리라^^;;) 그런 아내의 뜻을 알았기에 후다닥 자리를 비켜주었다.

펜션 사장님 피셜 청계호수 한 바퀴 다 도는데 대락 1시간 정도 걸릴 거라 했는데 역시나 우리 발 빠른 돌격대장님과 함께하니 40분 만에 완주했다. 심지어 운동하듯 미친 듯이 걷기만 한 것도 아니고 호숫가 풍경을 감상하며 초가을 감성도 좀 느끼고 중간중간 사진도 찍었는데도 말이다. 예상시간보다 빨리 돌아온 우리를 보고는 아내도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게 아내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대망의 메인이벤트, 엄마의 생파를 시작했다.

초가을의 청계호수
잠시 멈춰 느껴본 초가을 갬성
청명한 하늘, 더 청명한 청계호수

아내가 기획하고 감독한 엄마의 생파는 이랬다. 일단 장소는 펜션 테라스 바베큐장. 벽에 알록이 달록이 HAPPY BIRTHDAY 가랜드를 걸고 고기에 와인 한 잔 하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맨 정신에는 엄마가 됐다며 손사래를 칠 수 있으므로) 나는 생일 케이크를 가져오고 아내는 엄마를 공주님으로 변신, 그다음은 생일축하 노래와 함께 촛불 끄기. 여기서 핵심은 단연 엄마의 공주님 변신이기에 부엌에서 케이크를 가지고 나오며 과연 엄마가 기꺼이 공주님이 되어주셨을까 두근두근하면서도 궁금했다.


"짠~! 엄마 생일축하해~!"

"ㅋㅋ고마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생전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당연히 절대 비웃음이 아니다. 의외의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었을 뿐. 이걸 정말로 하다니, 엄마도 여자구나, 엄마가 무뚝뚝한 이유는 어쩌면 무뚝뚝한 두 아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공주님이 된 엄마는 어딘지 어색해 보였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내심 즐기는 것 같았다. 다만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아직 몰라 어색할 뿐. 쉽사리 볼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이기에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기록했다. 엄마의 첫 생파 대성공! 어색함을 이겨내고 며느리의 기획에 잘 따라준 엄마도, 기획부터 감독까지 도맡아 준 아내에게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엄마의 첫 생파 (공주님 요청에 의해 부끄부끄 스티커로 가면을 씌웠습니다. 신비주의 콘셉트)




생파 후 2차는 실내로 들어와 광란의 고스톱을 즐기고 3차로는 영화 한 편을 봤다. 그리고 맞이한 다음 날 아침. 펜션에서의 아침은 뭐니 뭐니 해도 라면. 해장도 할 겸 뜨근한 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생파의 여운은 남기고, 추억은 가지고 펜션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르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서운동산으로 정했다. 사실 (전날 자연을 실컷 봤음에도) 자연을 보고 싶어 하는 엄마를 위해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에 가려 했으나 예약제로만 갈 수 있어 급하게 결정했다. 국립수목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자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고른 곳인데 이게 웬걸?! 동산임을 간과했다. 애들 천국이다. 애들 노는 놀이터에 으른이 난입한 느낌. 뭔가 잘못됐음이 느껴져 빠르게 한 바퀴 돌아보고 가기로 했다. 참 다행이다. 엄마가 돌격대장 빠른 발이라.

할로윈 단장 중인 서운동산
핑크뮬리는 못참지
서운동산 물의정원
포천 여행 끝!




TRAVEL NOTE


[PLACE]

포천아트밸리

폐채석장의 재탄생. 1960년대부터 화강암을 채석하던 채석장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생산량 감소로 폐채석장이 되었다. 이후 방치되었던 이곳을 친환경 문화 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산 정상의 호수인 천주호는 화강암을 파내려갔던 웅덩이에 샘물과 우수가 유입되어 형성되었다. 1 급수의 맑은 호수와 수려한 기암절벽이 일품. 또한 미디어 파사드, 라이트 조각 작품, 숲과 계곡 홀로그램 설치 등의 야간관광 프로그램도 있다.

[아트밸리 이용시간]
하계(3~10월) 월-목 9AM-19PM / 금,토,공휴일 9AM-22PM / 일요일 9AM-20PM
동계(11~2월) 월-일 9AM-18PM
※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

[아트밸리 입장료(필수)]
어른 5,000원 / 청소년 3,000원 / 어린이 1,500원
※미취학, 만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포천시민 무료 (신분증 확인 필요)

[모노레일 이용시간]
하계(3~10월) 월-목 9AM-18:50PM(하행 막차) / 주말,공휴일 9AM-19:50PM(하행막차)
동계(11~2월) 월-일 9AM-17:50PM
※판매종료 마감시간 50분 전

[모노레일 운임료(선택)]
어른(왕복/편도) 5,300/4,300원 | 청소년(왕복/편도) 4,300/3,300원 | 어린이(왕복/편도) 3,300/2,600원
※포천시민 할인 적용, 미취학 무료

[문의]
포천아트밸리 1668 1035
(주)포천모노레일 031 531 2622


서운동산

대한민국 관광농원 제1호. 1969년부터 조경을 준비한 이래로 지난 40여 년간 죽엽산 아래 5만여 평의 조경과 수림을 이루고 있다. 각종 CF 및 잡지화보, TV드라마 등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했고 최근에는 '사진발이 좋은 여행지 101'에 선정되기도 했다. 각종 편의시설과 놀이시설, 어린이 체험장이 있으며 리모델링한 숙박시설과 바비큐장, 캠프파이어장, 등산로, 산책로, 잔디축구장과 운동시설 등이 있어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한 마디로 가족나들이에서부터 회사 단합대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자연 속 전원휴양지. 사계절 별 풍경이 다 다르니 최소 4번은 방문해 볼 것.

[입장시간]
매일 9AM-일몰시간까지 (매주 화요일 정기휴무)

[입장료]
하절기(4월 1일~11월 30일) 성인(15세이상) 7,000원
동절기(12월 1일~3월 31일) 성인(15세이상) 6,000원
※주차무료

[문의]
031 533 9000


[PENSION]

청계호수자작나무숲펜션

포천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가평군과 경계하고 있는 우람한 수목과 시원한 계곡,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청계호수(기산저수지)에 위치한 풀빌라 펜션. 바로 옆에 청계호수자작나무숲캠핑장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단연 청계호수뷰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비교적 최근 리뉴얼해 시설도 깨끗한 편이다. 개별바비큐장이 있어 프라이빗하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참고 : 카카오맵, 대한민국구석구석,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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